하나로통신(4) ADSL첫 상용화
국민의 정부 출범 2주년이 지난 1999년 4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통부에서 남궁석 장관(16대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역임. 작고)으로부터 국정개혁보고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이어 하나로통신의 영상시내 전화사업 시작을 기념해 신윤식 사장(체신부 차관, 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과 영상통화를 했다.
이날 정통부 입구에는 금속 검색대가 설치됐고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이 나와 출입자 신분을 일일이 확인했다. 비표를 발급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이 금지됐다.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는 각 부처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다. 그해 추진할 정책을 보고하고 대통령의 평가를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 정부가 해온 대통령 업무보고를 국정개혁보고로 명칭을 변경했다. 지시 위주에서 토론식으로 진행방식을 바꾸고 부처별로 20분 업무보고, 20분 토론, 20분 대통령 지시로 1시간가량 진행했다.
오전 10시.
김 대통령은 남궁석 장관 안내를 받아 정통부에 도착했다. 남궁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지식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정보인프라 구축과 전자상거래, 정보화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을 중심으로 주요 정책을 20분가량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정보화사회를 맞아 정보인프라를 구축해 세계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특히 전 국민이 컴퓨터를 가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 교육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전자상거래는 시대적인 추세이며 고용창출에 도움을 주고 경제 활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만큼 철저한 준비를 할 것과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세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품목을 개발해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남궁석 장관과 이계철 한국통신 사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방송통신위원장),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김효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민주당 원내 대표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20분간 일문일답을 했다.
김 대통령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많은 낙오자가 생기고 이들이 좌절과 자포자기, 타락, 범죄에 빠지기 쉽다”면서 “이들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와 산업사회에서 퇴출되는 인력을 흡수하기 위한 대책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남궁석 장관은 “현재 전국 200만명의 장애인에게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이 컴퓨터로 무장되면 더 이상 정보화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남궁 장관은 “장애인에 대해 전화요금 할인을 계속 유지하고 농어촌과 산간오지지역에도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 환경을 구축해 내년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산업사회의 퇴출인에 대해서도 컴퓨터교육을 실시해 이들을 신지식인으로 만드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얼굴을 마주 하지 않고 거래하는 전자상거래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안전한지 여부”를 물었다.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은 “당분간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공인인증기관을 통해 인증을 받도록 해 소비자들이 인증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답변했다.
김 대통령은 “국민생활 전 분야에서 고부가가치와 고효율, 고생산성을 갖춘 신지식인이 나와야 하며 이를 발전시킬 방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효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사회 각 계층에서 600명의 신지식인을 발굴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아울러 신지식인의 출현을 위해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여건을 바꾸고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 대통령은 국정개혁보고가 끝나자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과 영상전화를 했다.
김 대통령은 11시 10분부터 영상전화로 신 사장과 8분간 대화를 나눴다. 김 대통령의 영상전화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김 대통령은 “새로운 통신역사의 장을 열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하나로통신이 앞장 서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여보세요. 하나로 통신의 서비스 개통을 축하합니다.
△신 사장=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나로통신 사장 신윤식입니다. 저희 회사가 오늘부터 시내전화 상용서비스를 시작함을 보고드립니다.
▲김 대통령=우리나라의 시내전화 시장에도 이제 경쟁이 도입되어 새로운 통신 역사의 장을 열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합니다.
△신 사장=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의 깊은 관심과 국민의 성원 덕분에 하나로통신이 큰 어려움 없이 오늘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김 대통령=화면이 깨끗하게 잘 보이는 것을 보니 영상전화가 조만간 일반 대중에게 보편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상전화가 널리 보급되려면 전화기 가격과 이용요금이 저렴해야 될텐데 일반전화에 비해 가격은 어떤지요?
△신 사장=전화기 가격은 초기에 77만원 수준으로 보급할 예정이지만 가입자 수가 50만명으로 늘어나면 30만∼40만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음성과 영상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영상전화의 통화료가 일반전화와 같은 가격인 3분에 45원이므로 영상전화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김 대통령=성능이 좋고 싼 가격의 영상전화가 널리 보급된다면 통신산업의 발전 뿐 아니라 국민의 통신서비스 이용수준이 크게 향상되리라 기대합니다.
△신 사장=영상전화의 대중화를 위하여 품질향상과 다양한 서비스 개발에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이번 서비스 개통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 건설에 하나로통신이 앞장서 주기를 바랍니다.
△신 사장=잘 알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21세기 지식기반 국가건설을 위해 정보통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코리아21 계획에 적극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통신망의 고도화, 고속화 작업을 통해 일반 국민과 기업에게 초고속 인터넷 등 첨단통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제고하는데 일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 대통령=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인터넷이 일반적인 통신은 물론 경제활동의 핵심수단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국민들과 기업들이 편리하고 저렴하게 인터넷 등의 첨단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고 하루 빨리 세계 유수의 통신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회사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신 사장=대통령께서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격려를 해 주신 덕분에 저희 정보통신업계가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로통신 임직원은 한마음으로 우리나라 정보통신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 대통령=하나로통신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수고하세요.
△신 사장=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신윤식 사장은 고건 서울시장(국무총리 두 번, 대통령 권한대행 역임. 현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과도 영상전화를 했다. 고 시장은 정보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재임시절 인터넷 민원처리 온라인공개시스템을 개발해 부패를 막는데 활용했다. 이 시스템은 고 시장이 프로그램개발자를 데려다 직접 개발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과 신 사장 간 영상통화는 하나로통신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는 최고의 홍보수단이었다.
이와 관련한 신 사장의 증언.
“처음 2월경 정통부에 대통령 행사로 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무산됐습니다. 그러다 다시 추진해 성사됐지요. 당초 김 대통령 일정은 4월 1일 외무부를 순시해 국정개혁보고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하나로통신 ADSL 첫 상용화를 기념해 일정을 변경한 것으로 압니다. 대통령 행사가 안될 것에 대비해 고건 서울시장과 영상통화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고 시장과는 김 대통령과 통화 후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대통령과 영상통화를 앞두고 하나로통신 기술팀은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이인행 기술기획이사(하나로통신 대표 역임. 현 에어텍 회장)의 회고.
“초비상이었습니다. ADSL 상용화 후 대통령과 첫 영상통화인데 만약 실패라도 해 보세요. 보통 일이 아닙니다. 교환기와 광장비는 삼성과 LG에서 만든 최신 국산장비를 설치했습니다. 영상전화기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업기업인 욱성전자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욱성전자 박배욱 사장은 ETRI출신이었습니다.”
신 사장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뒤에 있는 동작국사 교환기 앞에 대기했다. 기술팀은 서대문 국사를 거쳐 정통부와 서울시청을 연결해 영상전화기를 설치했다.
이 작업에는 고진웅 무선사업부장(현 씨엠앤 부사장)과 이승석 부장(현 SK브로드밴드 부문장), 배동화(현 에어텍 부사장), 손상찬(현 한국정보통신기능대학 방송통신설비학과장)등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이인행 이사의 계속된 증언.
“기술진은 전날부터 날밤을 세웠습니다. 저는 동작국사에 침대를 갖다 놓고 잤고 각자 역할을 분담해 일부는 정통부에서 대기했습니다. 전날 시험통화 중 중단되는 일이 발생해 기술진들이 비상이었어요. 새벽 5시경 리셋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어요. 국정개혁보고가 끝나 영상통화를 위해 신호를 보냈는데 정통부 회의실에 설치한 영상전화를 안 받는 겁니다. 등에 진땀이 났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신호를 보냈더니 전화가 연결됐습니다.”
초고속인터넷 강국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