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이러니

1915년 일제 경성부(현 서울시)는 늘어나는 수탈 세원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부 공식 금고 역할을 할 은행을 선정한다.

그때부터 지금껏 98년간 금고지기는 이름만 조선상업은행에서 상업은행, 한빛은행, 우리은행으로 바뀌었을 뿐 변함이 없다.

시 금고는 서울시와 25개 구청의 한 해 예산 39조원을 운용한다. 하루 평균 잔액만 3조원이다. 무엇보다 신용도 높은 서울시 공무원 1만명과 시 산하기관 및 구청 직원 1만5000명을 우량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우리은행은 시 청사는 물론이고 25개 구청에 단독 입점해 공무원과 민원인 금융 거래를 독식한다.

지난 2010년 행정안전부가 서울시와 25개 산하 구청 금고 선정 관련 규칙을 제정·운영토록 하자 시는 향후 4년간 시 금고 역할을 할 은행을 공모했다. 이때도 우리은행은 다른 은행을 모두 제치고 서울시와의 연을 이어갔다.

시가 그저 과거의 정리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은 한 세기 가까이 서울시 금고를 맡으며 `지방세 납부시스템`을 구축했다. 다른 은행이 새 금고지기가 되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재산세는 시세와 구세가 동시 연동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돼 시·구 금고가 다르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다. 우리은행의 기존 `e텍스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새 은행의 새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까지 `수기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게 당시 서울시 판단이었다.

우리은행 역시 그간 시 전용 시스템 개발과 운영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서울시 금고로 재선정됐을 때도 1500억원을 시에 출연했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시와 금고지기 간 한 세기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은행 금고 독점이 깨졌다.

우리은행이 자신들의 텃밭을 뺏긴 이유가 바로 100년 수성을 가능하게 했던 `차세대 금융시스템`과 `스마트 금융` 때문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류경동 경제금융부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