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 혜택, 고효율 차량 보급 등을 담은 `고유가 대응을 위한 석유소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공급 측면에서의 기름값 낮추기였다면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수요 측면에서의 대책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필요한 대책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공급 측면이다.
정부가 지난 달 내놓은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방안`의 요점은 크게 세 가지다. 삼성토탈의 석유제품 공급업체 참여와 알뜰주유소 확대를 위한 지원 확대, 전자상거래 활성화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삼성토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막대한 인센티브에도 증가세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전자상거래는 지난 3월 30일 개장 이후 거래 물량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공급 대책이 한마디로 약발이 먹히고 있지 않은 셈이다. 정부의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들여다봤다.
◇삼성토탈, 석유제품 공급 불투명=정유업계에 따르면 `제5의 정유사`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삼성토탈이 국내에 휘발유를 공급할지 미지수다. 삼성토탈이 현재 일본에 수출하는 것보다 내수시장에 판매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삼성토탈 입장에서도 일본에 고급 휘발유용으로 수출하지만 국내에는 알뜰주유소 물량이라 높은 가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정부의 요청을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라 일정 부분 공급할 수는 있다.
석유공사에서는 “가격이 안 맞으면 공급이 어렵겠지만 삼성토탈의 휘발유 사업이 사업손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공급하기가) 괜찮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신학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장은 “현재 품질 검사 중이고 삼성토탈과 가격, 공급 방식 등을 논의하는 과정”이라며 “6월 중 내수시장에 공급한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공급을 한다 해도 가격이 문제다. 석유제품 생산 비용이 국내 정유사보다 높기 때문에 관세 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정유사에 비해 싸게 공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 형태라 석유공사 서산기지 내에서 국내 기준에 맞게 추가 가공해야 하는 상황이라 제품 가격을 낮추기는 더욱 어렵다.
전문가들은 삼성토탈이 국내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토탈이 현재 생산하는 휘발유는 연간 10만톤 정도다. 국내 휘발유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게다가 원유가 아닌 석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로 합성수지와 유분·화성제품(베이스케미칼), 석유제품류 등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이마저도 국내 휘발유 품질 기준에 맞추려면 추가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삼성토탈의 정유사 진입은 기존 정유사들의 경쟁구도 형성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며 “과거 정유5사(유공·호남정유·경인에너지·쌍용정유·극동석유) 과점체제가 있었던 사례만 봐도 삼성토탈의 진입이 특별한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휘발유는 추가 공정이 필요해 오히려 더 비싸기 때문에 화학기업이 휘발유를 파는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며 “정부가 관세 감면 혜택을 줘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삼성토탈이 국내 시장에 휘발유를 공급한다는 것은 추가 혜택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알뜰주유소의 한계=31일 기준으로 서울시내 알뜰주유소는 모두 6개다. 4월 19일 정부 대책 이후 3개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신청과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하면 미미한 실정이다.
정부가 소득세와 법인세, 지방세를 감면해주고 알뜰주유소 전환 사업자에 매입·임차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온적이다.
정부 의도대로 가격 인하 효과는 분명 있다. 알뜰주유소 인근 기름값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인근 주유소들이 기름값을 알뜰주유소 수준으로 맞추거나 더 낮춘 경우도 있다. 비록 리터당 몇 십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알뜰주유소의 가장 큰 맹점은 주유소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존 상표주유소 시절에는 정유사들의 유치 전략으로 나름 `대접`을 받았다. 사업장 관리나 판촉 등도 정유사가 도와줬다. 가격 외에도 서비스로 특화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뜰주유소는 무조건 가격이 싸야 한다. 덕분에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없다. 알뜰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싸게 공급받는 만큼 주유소 사업자에게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주변 주유소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가격도 알뜰주유소라고 무조건 싼 게 아니다. 실제 서울시 금천구 독산로 일대 SK에너지 주유소와 에쓰오일 주유소는 휘발유 판매가격이 29일 기준으로 리터당 1997~1998원인 반면에 알뜰주유소는 2049원이다. 이들 주유소의 차이는 세차장과 경정비 카센터 보유 여부다. 알뜰주유소도 세차장과 카센터를 갖추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에서 하반기에 알뜰주유소 수익성을 검토할 예정이어서 주유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정부가 장부를 뒤진다는 얘기다.
이미지 타격도 입었다. 지난 4월 전남 순천에 있는 알뜰주유소가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됐다. 정부의 품질 보증을 믿을 수 없게 됐다. 덕분에 정부의 감시가 더 매서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주유소 업계 한 관계자는 “알뜰주유소로 전향하는 사업자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낮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다”며 “마치 알뜰주유소가 떼돈을 벌어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알뜰주유소라는 이유로 주변 주유소의 견제와 경쟁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뜰주유소는 어차피 주유소 사업자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어 보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개점휴업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 합리화를 위해 문을 연 전자상거래 시장도 개점휴업이다. 참가자수나 매매건수 모두 최저 수준이다. 월말에 거래가 몰리는 석유제품 시장이지만 최근 10일 내 3건의 거래만 성사됐다. 물량도 기본 단위 물량인 2만리터에서 4만리터가 대부분이다. 개점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석유거래소는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를 전자상거래 참여에 따른 혜택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현재 정유사들이 시장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0.3%의 세액 감면이다. 기존 유통망을 전자상거래로 옮겨오는 데 동기가 부족한 셈이다.
정유사가 관망하는 이유다. 지사에서 거래소의 주문 관리 시스템과 정유사 자체 시스템의 호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입사들의 참여도 적다. 정부는 수입사들이 전자상거래에 참여할 경우 수입부과금 16원을 전액 환급하고 할당관세 3%를 감면한다. 비축 의무기간도 줄여준다. 리터당 50원 정도 인하 혜택이 있지만 수입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정유사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저렴해 정부 지원을 받아도 싸게 공급하기 어렵다. 인하분이 수입사 수익이 아닌 석유제품 가격인하로 연결되도록 조치해서다.
석유거래소에서는 7월 이후를 기대하고 있다. 정유사에 대한 세액 공제 비율이 0.5%로 높아지고 정유사와 주유소 간 전량 구매계약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정유사는 세액 공제효과가 커지고 주유소는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전자상거래로 가격을 비교해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석유거래소 관계자는 “수입사 참여가 늘어나고 혼합판매가 확대되면 가격 인하효과가 분명 나타날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 효과가 작을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1조원이 넘는 기름값 인하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한달간 휘발유 전자상거래 내역
자료:한국거래소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