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망중립성과 기술혁신

전화선 시대에 팩시밀리 등장은 혁신이었다. 음성통화만 가능했던 전화선이 그림, 문자, 도표 등 이미지도 전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화선 사업자가 팩시밀리를 전화선에 붙이지 못하게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팩시밀리 제조업자에 무임승차를 이유로 망 사용료를 물렸다면 아마 기술혁신이 지연됐을 것이다.

카카오는 최근 베타서비스를 진행 중이던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보이스톡`을 해외 전체로 확대 적용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 서비스 대상 국가에서 제외됐다. 이동통신사들이 m-VoIP 확산에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망 사업자인 KT는 삼성전자 스마트TV 서비스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며 차단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KT는 한발 더 나아가 콘텐츠 속성까지 파악해 트래픽을 관리하는 패킷감청 솔루션인 `DPI(Deep Packet Inspection)`를 도입하기로 했다.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를 방치하면 통신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DPI가 특정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하드웨어를 감시해 접근권을 제한할 것으로 우려한다. 망 사업자가 접근권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통제시스템으로 인터넷을 막아버리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길이 막힌다. 소비자 서비스 선택권도 제한된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신생 분야의 혁신이 기존 분야의 지배적 힘에 억눌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망중립성 정책을 펴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난해 트래픽 혼잡 대처, 안전성 확보, 스팸 차단, 법률 또는 판결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망 사업자의 트래픽 관리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혁신은 플랫폼이 중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활기를 띤다. 혁신을 자극하는 망중립성 정책과 상생하는 사업자 간 합의를 기대한다.

권상희 경제금융부 차장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