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95>하나로통신 그 이후(5) 빛과 그림자.

하나로통신은 세계 최초로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마(魔)의 늪인 자금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하나로통신은 소멸이라는 무대에 서야 했다. 하나로통신은 대주주가 바뀌면서 사명을 하나로텔레콤으로 바꾸고 다시 SK브로드밴드로 변경했다. 빛과 그림자는 흥망(興亡)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하나로텔레콤은 2007년 9월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내빈과 전·현직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하나로텔레콤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했다. 당시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과 신윤식, 윤창번 전 사장(왼쪽부터)<전자신문 DB>
하나로텔레콤은 2007년 9월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내빈과 전·현직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하나로텔레콤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했다. 당시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과 신윤식, 윤창번 전 사장(왼쪽부터)<전자신문 DB>

과거 일이지만 하나로통신이 SK브로드밴드로 바뀌기까지 흔적을 따라가 보자.

1999년 4월 1일 김대중 대통령과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체신부 차관, 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 간 영상통화는 하나로통신에 천군만마였다. 그것은 빛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인터넷이 일반적인 통신은 물론 경제활동의 핵심수단으로 등장할 것”이라며 “국민과 기업이 편리하고 저렴하게 인터넷 등의 첨단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고 하루 빨리 세계 유수의 통신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회사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과 신 사장 간 영상통화 장면은 국내 언론매체에서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이 바람에 정통부 업무보고 내용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 정통부는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냐`며 하나로통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나로통신은 이런 오해를 해명하느라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하나로통신은 이런 일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신윤식 사장의 회고.

“한국통신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하나로통신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비장한 각오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어요. 소비자 반응이 예상을 뛰어 넘었습니다.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나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나중에 `너무 빨리 일을 진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로통신은 서울과 부산, 인천, 울산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12월 대구, 광주, 대전, 수원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다.

당시 인터넷은 전화모뎀 위주였다. 한국통신(현 KT)은 1993년부터 데이터통신이 가능한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내놓고 인터넷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하나로통신이 이런 시장에 기존 전화모뎀보다 속도가 100배 빠른 ADSL서비스를 내놓자 소비자들의 눈길이 이 서비스로 확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나로통신은 300가구 이상 아파트단지 새마을부녀회와 주민을 대상으로 시장개척에 나섰다. 인기 가수 유승준을 모델로 내세워 `뛰는 ISDN 나는 ADSL`이란 공격적인 광고를 시작했다.

그해 8월에는 ADSL라이프를 출시했다. 초고속인터넷과 전화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사용료가 월 2만9000원이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마치 봇물이 터진 듯 했다.

하나로통신 통신망구축팀은 1일 3교대로 일을 했다. 그래도 일손이 모자랐다. 12월이 되자 장비가 없어 공급을 할 수 없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왜 우리 아파트에 ADSL을 설치해 주지 않느냐”며 항의 전화를 해 왔다.

이승석 하나로통신 전송망계획실 부장(현 SK브로드밴드 부문장)의 증언.

“생산업체인 벨기에 알카텔이 필요한 모뎀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물량수주 전쟁이 벌어진 것이죠. 비상이 걸려 그해 2월 제가 벨기에 알카텔로 날아가 생산라인을 지켰습니다. 2주간 머물면서 생산 물량을 모두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 당시 하나로통신이 세계 모뎀의 80% 정도를 소모했습니다.

그해 7월 하나로통신은 3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권택민 하나로통신 경영기획실장(현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의 말.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해 7월 27일 유상증자를 실시해 6000억원을 확보했습니다. 자본금을 1조200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증자한 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2000년 5월 가입자가 50만을 돌파했다. 그해 12월 156만 가입자를 확보했다. 처음 목표는 100만이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ADSL돌풍에 비상이 걸린 한국통신은 ISDN 대신 ADSL서비스로 사업방향을 수정했다. 두 업체 간 경쟁으로 한국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ADSL 가입자는 급증했지만 하나로통신 경영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2000년 38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2월 1억달러 규모의 해외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이어 10월 3000억원의 자산담보주 증권을 발행했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11월 사업다각화를 위해 최고속인터넷업체인 드림라인 지분 32.18%를 매입했다. 2001년 매출은 8254억원, 경상손실은 2441억원을 기록했다.

하나로통신 부채가 1조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투자비용과 차입금 만기로 자금 유동성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시련의 먹구름이 하나로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10월 24일.

하나로통신은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경영진을 교체했다. 이사회는 신윤식 사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는 11월 1일 파워컴 지분인수를 위해 AIG, 뉴브리지캐피털 등 해외 투자자로부터 제3자 배정방식 신주발행과 신디케이트 방식의 외자유치 계획을 승인했다.

2002년 하나로통신은 1조2539억원의 매출과 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첫 흑자 기록이었다. 시장 점유율도 27%로 확대했다.

신윤식 회장은 2003년 3월 2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해 8월 5일 2대 대표이사로 윤창번 사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이 취임했다.

윤 사장은 그해 9월 9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뉴브리지-AIG투자 컨소시엄과 총 11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계약을 체결했다. 이중 5억달러(5850억원)는 신주발행을 통한 직접투자 방식이고 나머지는 신디케이트론 방식이었다.

2004년 7월 1일.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하나로통신은 사명을 하나로텔레콤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혁신작업에 착수했다. 임직원을 직급별로 3개 과정으로 나눠 학습교육을 실시하고 동시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반발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노사는 갈등에 휘말렸다.

2005년 2월 4일 하나로텔레콤은 두루넷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8월 16일 윤창번 사장이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사임했다. 그는 비상근 회장으로 추대됐고 권순엽 경영총괄 부사장이 사장대행으로 선임됐다.

그해 12월 29일 정통부는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오연천) 심의를 거쳐 하나로텔레콤과 두두넷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2006년 3월 27일 하나로텔레콤 3대 사장에 박병무 뉴브리지캐피털한국 대표가 취임했다. 그는 조직을 4부문 3본부 12실 8지사 82팀을 2총괄 8본부 15실 8지사 85팀으로 재편했다. 그해 7월부터 하나TV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셀런TV 지분 65%를 25억원에 인수했다. 2007년 매출은 1조8683억원, 영업이익은 809억원 가량이었다.

그해 12월 3일.

SK텔레콤(대표 김신배)이 하나로텔레콤 대주주인 AIG-뉴브리지캐피털의 지분 9140만6249주(38.89%)를 한 주당 1만1900원인 1조877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정부 인가 조건부 계약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은 12월 17일 정통부에 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기간통신사업자 주식을 15% 이상 취득하거나 최대주주가 되려면 정통부 장관 허가를 받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2008년 2월 20일 정보통신정책위원회(위원장 오연천)를 열어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조건부로 허가했다. 통신시장 공정경쟁, 이용자 이익보호, 네트워크 고도화 등이 허가 조건이었다.

이기주 정통부 통신전파방송정책본부장(현 김앤장 고문)의 당시 설명.

“ 국내 유무선 통신시장이 KT 진영과 SK텔레콤 진영 간 대결구도로 집중될 수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인가조건을 부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

AIG-뉴브리지캐피탈은 3년여 사이에 527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경영권을 SK텔레콤에 넘겼다. 이를 놓고 외국자본의 먹튀 논란과 정책 실패하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기존 하나로텔레콤 지분 4.70%와 새로 인수한 지분 38.89%를 더해 모두 43.59%를 갖게 돼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확보했다.

하나로텔레콤은 2007년 9월 20일 여의도 소재 본사 10층 강당에서 배순훈(현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남궁석 전 정통부 장관(작고)과 신윤식, 윤창번 전 대표이사 등 내외 인사 및 임직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2008년 3월 31일.

하나로텔레콤 4대 사장에 조신 SK텔레콤 전무(현 지경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분과 투자관리자)가 취임했다. 그는 곧바로 기업변신에 착수했다.

조신 사장은 그해 9월 22일 회사 이름은 SK브로드밴드로 변경하고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하나로텔레콤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이같이 의결하고 고객과 임직원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CI선포식을 가졌다.

2009년 12월 조신 사장이 물러나고 박인식 SK텔링크 사장이 새 사장으로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3월 임원과 팀장들과 도로 맨홀 안에 들어가 현장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