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오션포럼]전력예비율, 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최길순 한국전기공사협회장.
최길순 한국전기공사협회장.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전기는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전기의 소중함에 비해 언제나 필요한 만큼 아무런 절제 없이 사용하는 `만만한 에너지`로 낙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 과소비가 생활화하면서 전력예비율이 급감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최근에는 정부와 산업계가 전력공급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연료는 수입이다`라는 표어가 있다. 전기는 석유·석탄·가스 등 수입한 발전연료를 가공해 만드는 고급에너지로 분류된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전기보다 비싼 석유나 가스가 전기로 대체되면서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이것은 마치 수돗물보다 공급원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생수를 세숫물이나 허드렛물로 이용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왜곡된 에너지소비 패턴을 바로잡고 소비자의 자발적 전기절약을 유도함과 동시에 신규 공급설비 투자자금 등을 마련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은 당연한 일이다. 단순하게 점진적 요금 인상보다는 생산원가 이상으로 대폭 현실화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웃나라인 대만에서는 최근 전기요금을 30%대로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일본도 20% 이상 인상을 검토 중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결단이다. 전기요금을 조금씩 조금씩 올리는 건 국민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기요금 현실화는 더 이상 물가안정을 이유로 뒤로 미룰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도 정부와 국민이 함께 전력운영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다함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 구조로 한국전력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했다. 지난해에는 3조3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년간 누적적자만 8조원에 이른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액은 곧 국민의 몫(세금)으로 돌아오게 마련인데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인위적 전기요금 인상 억제는 미래에 발발할지 모르는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한전의 재정 악화로 신규 전력설비 투자와 기존설비의 유지보수 추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유지보수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안정적 전력공급도 장담할 수 없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수요에 상응하는 발전설비 확충과 함께 송배전·변전 설비에 투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우리보다 수년 앞서 대정전 사고를 경험했다. 송전설비 등의 전력설비에 투자를 게을리한 탓에 동북부 전체의 광역정전 사태로 번져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며 전기를 운반하는 전력설비 역시 영구적일 수 없다. 전기를 생산하는 신규 발전소 건설은 지역 이기주의 등으로 확충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절전을 생활화하고 절전형 전기제품을 개발하는 등 체계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나 정치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가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전기요금 현실화의 절박함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국민과 함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최길순 한국전기공사협회장 kschoi@ke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