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나라를 얕잡아보려 애썼다. 그 뿌리도 깊다. 누구나 그러하듯 우호적인 상대는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는 폄훼하려 애쓴다. 우리나라를 낮춰 평가하려는 중국 성향은 약 1800년 전 편찬된 삼국지위지동이전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은 중국과 우호관계이던 부여를 “성격이 강하고 용감하고, 근엄하고, 후덕하고, 다른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거나 노략질하지 않는다”고 기술했다. 반면 영토확장으로 중국을 턱 밑에서 위협하던 고구려에 대해서는 “국민 성격이 흉악하면서 급하고, 침략과 노략질을 즐긴다”고 묘사했다.
여기서 ‘선장양(善臧釀)’이란 문구가 나온다. 해석하면 “장을 잘 빚는다”는 의미다. 요즘 우리는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고려취(高麗臭)’란 말을 흔히 인용한다. 과거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고려라 불렀고, 장을 잘 만드는 고구려인에게서 특유의 향기가 난다고 했다며 자랑 삼아 꺼내는 단어다. 선장양과 고려취를 연결해 우리의 장점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하지만 고려취의 진짜 속뜻은 그렇지 않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그 점을 지적했다. 책 속에는 고북구(만리장성의 예전 북쪽 관문) 밖에서 들은 이야기 60여종을 정리한 ‘구외이문’이 있다. 여기서 연암은 여음리(麗音離)란 제목의 글로 고려취의 오용을 꼬집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역졸이나 구종군 따위가 배운 중국말은 그릇됨이 많았다. 그들의 말뜻도 모르고 그대로 쓴다. 냄새가 고약한 것을 고려취라 한다. 이는 고려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아 발에서 나는 땀내가 몹시 나쁜 까닭이다. 우리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나쁜 냄새가 나면 고려취(고린내)가 난다고 한다.”
연암의 글 제목이 여음리인 것은 ‘려’를 ‘리’로 발음한다는 의미다. ‘취’는 ‘냄새’를 뜻하는 ‘내’로 사용되니 이를 종합하면 고린내의 어원이 된다. 연암의 설명대로라면 우리나라 사람을 비하한 중국의 말을 영문도 모른 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셈이다.
최근 대만 궈타이밍 팍스콘 회장이 ‘가오리방쯔(高麗棒子)’란 말로 우리 감정을 자극했다. 그는 “일본인은 절대 뒤에서 칼을 꽂지 않지만 가오리방쯔는 다르다”고 했다. 대만과 우리 언론은 그의 말을 앞 다퉈 소개했다. 일본 언론도 ‘한국인을 경멸하는 호칭’이라는 설명까지 달아 보도했다. 그 덕에 한자어권 국가에서는 한국인의 멸칭(蔑稱)을 하나 더 공부하게 됐다.
이 말 역시 한국을 시기하는 마음에서 나왔겠지만 반감의 이유를 우리가 제공했다는 점에서 고려취 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뿌리 깊은 중국의 반한 정서가 아닌 불과 20년 사이 대만에서 생겨난 반한감정이 원인이다. 대만 입장에서 과거 혈맹이던 한국은 1992년 중국 수교를 빌미로 돌연 단교를 선언했던 황당한 친구다. 대통령 취임식에 사절단을 보낸대도 중국 눈치 보며 거절하는 어이없는 친구다.
2010년 내려진 유럽연합 LCD 패널 가격담합 결정으로 반한감정은 산업계로 번졌다. 대만 기업에겐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우리나라 한 대기업은 부과대상에서 제외됐다. 담합을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 대상에서 빼주는 리니언시 제도 덕이다. 그래서 짬만 나면 궈타이밍은 우리 기업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다. 그래도 민족성향까지 들먹이는 막말은 참을 수 없다. 하지만 민족과 나라가 비난받을 만한 원인을 우리가 제공하고 있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혐한 발언에 격앙될 게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됐는지 우리 스스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