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주 한얼테마과학관 가보니...집값 9채들여 100억대 과학사 유물 50만점 보관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도 여주 `한얼테마과학관`은 정리 안 된 보물창고 같았다. 근현대 과학기술사 관련 수집품 50만점이 여주군 옥촌리 폐교 용지 9900㎡ 곳곳에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쌓여있다. 일부 정리해 놓긴 했지만, 보관 상태는 엉망이었다. 오래된 고가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 수백 대가 곳곳에 그냥 널려 있을 정도였다.

이우로 한얼전통문화보존협회장이 지하철 객차내에 전시된 현미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로 한얼전통문화보존협회장이 지하철 객차내에 전시된 현미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들 수집품은 지난 1974년 도입됐다 1998년 퇴출된 지하철 1호선 객차 12량과 우편열차 2량, 컨테이너 박스 34개, 비 새는 폐교 1·2층, 창고 등에 빼곡하다. 나머지는 마당 곳곳에 그냥 쌓아놔 비를 그대로 맞거나 포장으로 덮어놨다.

평생 전 재산을 들여 모은 이우로 한얼전통문화보존협회장(86)은 “자식 같은 수집품이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청소년과 국민을 위해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쉽지 않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말로 방치된 유물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폐교 일부를 체험 과학관으로 지정한 뒤 이 수집품을 테마별로 보여준다면 자라나는 청소년에 훌륭한 과학 체험관이 될 것이라는 제안도 내놨다.

이 회장과 함께 한얼전통문화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고영립 상심리교회 부목사는 “가치 있는 역사적인 수집품이 엄청나다. 의사였던 이 회장 아버지 덕분에 유난히 의료장비가 많고, 이 회장은 체신부 출입기자를 지낸 덕분에 전화기나 전산관련 장비 등이 많다”며 “값을 매길 수는 없지만 100억원대는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수집품을 위해 당시 집 9채 값을 쏟아 부었다고 덧붙였다.

수집 골동품 하나하나에 애환과 비사도 숨어 있다.

이 회장은 “역사를 증언할 유물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들여온 레이저현미경이 퇴출되자 즉시 사들였다”고 회상했다. 이 일은 이 회장이 전 세계 현미경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처음엔 의료기기와 과학기자재 중심으로 모았다.

수집품 가운데는 지난 1998년 퇴출된 지하철 1호선 운행 객차와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 엔진이 장착된 아세아자동차공업(구) 통신용 차량 `복사`, 세계 최초 노트북 컴퓨터, 100년 된 금제 현미경, 일본 후지아 소형 릴 녹음기, 우리나라 최초 병원용 카드 제조기 등이 눈길을 잡았다. 현미경은 전 세계 제품 1200대를 모아 놨다.

지하철 객차는 1974년 8월 15일 개통 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께서 행사에 참석하려다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 일어나 조촐한 개통이 이루어진 비사가 있다. 객차는 일본 히타치가 제작한 것으로 1량에 6억7000만원을 주고 들여왔다. 이 회장은 14량을 구입하는 데 10억원가량을 썼다.

옮기는 데도 애를 먹었다. 객차 1량당 80톤이나 나가다 보니 다리 건너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교통량 때문에 오전 2시부터 4시까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통신용 차량 `복사`는 관리가 어려워 고물상에 팔았다 다시 산 경우다. 자동차 엔진이 국내 최초라는 얘기를 들은 이 회장이 고물상에 가서 사정사정해서 되찾아 왔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교문서 작성에 사용된 영문 타자기와 한국전쟁 때 파견된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남기고 간 수술대, 1927년 제작된 치과 수술기계, 아웅산 폭발사건 때 사망한 장관들의 유품 등 역사적인 유물이 즐비하다.

이 회장은 수집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번듯하게 지어진 전시공간에서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국립중앙과학관(관장 박항식)에 수집품을 수탁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국립중앙과학관 발걸음도 바빠졌다.

박항식 과학관장은 “과학기술사 수집품을 가져다 청소년에 공개하는 특별 전시를 기획 중”이라며 “조만간 수장고를 지어 이 수집품을 정리, 보관하는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