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지난 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렸던 퀄컴의 모바일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청중은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 및 협력사 관계자들이 대다수였다. 퀄컴은 행사 내내 자사가 제공하는 응용프로그램개발키트(SDK) 및 플랫폼을 이용해 어떻게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 다양한 예시와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얼핏 의아한 풍경이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설계 기업인 퀄컴이 B2C 콘텐츠 `산파`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퀄컴 플랫폼으로 `카카오톡`에 비견될 좋은 앱을 만들어 내면 해당 앱이 가장 최적화되는 환경인 퀄컴의 칩세트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더욱 잘 팔릴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회사는 실제로 증강현실, P2P 등의 플랫폼뿐 아니라 모바일 헬스케어, 저전력 배터리 등의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오래전부터 투자해 왔다. 더 이상 반도체만 만드는 게 아니라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선언이다.
플랫폼 전쟁에 뛰어든 건 퀄컴뿐만이 아니다. 이미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하드웨어 기업들이 플랫폼 투자를 통해 자사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제2의 주도권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치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애플이 주도권을 쥐었듯, 이번에는 헬스케어 등 개인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까지 가져가는 제2의 모바일 생태계 주도권을 누가 쥐는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전쟁에 국내 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SK텔레콤은 어떻게 된 거죠?” 콘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블룸버그통신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의 말인즉슨, 한때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SK텔레콤의 주가가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 기자는 주가 급락의 이유를 “혹시 하이닉스 인수 때문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닉스 인수는 SK텔레콤에 호재였다는 게 중론이다.
급변하는 IT업계에서 남보다 빠르게 변신하는 순발력은 주도권 경쟁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20~3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변신과 투자를 거듭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