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라는 말이 있다. 가업이 금융업인 가문을 일컫는다. 로스차일드를 비롯해 오펜하임, 로트칠드, 말레, 호팅거, 록펠러, JP모건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산업혁명 이후 수백년간 세대를 이어오며 지금 이 순간도 유럽과 미국, 홍콩 등 글로벌 선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세계금융 1번지 영국 런던에는 이들의 모임인 영국은행가협회(BBA)가 있다. 리보(LIBOR:London Inter-Bank Offered Rates) 금리가 바로 이 협회에서 결정된다. 리보는 런던의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 거래 시 적용되는 금리다. 국제 금융시장 기준금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금융지표다. 영국 재무성이나 중앙은행이 아닌 일개 이익단체에서 이런 기준금리를 정하다니. 관치금융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수백년 이들 은행가 파워에 익숙한 유럽인 눈엔 낯선 광경이 아닌가보다.
1·2차 세계대전의 실질적 군수자금줄, `프리메이슨`으로 대변되는 각종 음모론, 유태계 금융권 전횡 등 이들 은행가를 보는 눈이 늘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선진 금융시스템이 완성됐다. 그 덕에 서구의 산업과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19세기 말 갑신정변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경제개발계획 등으로 한 세기 넘게 근대산업화를 경험해온 우리지만 재벌은 있어도 변변한 은행가는 없다. 왜일까. 관치금융 탓이다.
요즘 금융권에선 `은행원으로 성공하려면 경상도 사투리부터 배워라`는 얘기가 나돈다. KB, 하나, 신한, 농협, 산은 등 6대 금융지주 회장이 전부 PK(부산경남) 관료 출신 일색이다. 여기에 금융위원장과 전국은행연합회장도 모두 PK다보니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나온 것이다.
오는 17일 정치인 출신인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후임엔 역시 관료출신 인사인 홍영만 금융위 상임위원이 유력 거론된다. 대한민국엔 왜 삼성전자 같은 은행이 없는가. 답을 찾는 게 너무 싱겁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