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통 없이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우주선, 사막을 초원으로 바꾸는 거대 담수플랜트. 영화 `백 투 더 퓨쳐 3`에서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기차. 이들은 단지 상상력의 소산물이 아니다.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이들은 현실이다. 바로 작고도 강력한 새로운 에너지원이 그것이다. 원자력 이 후 미래를 책임질 에너지로 주목받는 것이 `핵융합 에너지`다. 태양을 모방한 에너지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다각적으로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게 통념이다. 반면 상온에서도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있다. 20여 년간 학계에서 외면 받아 온 이들의 주장이 바로 `상온핵융합`이다.
상온핵융합은 1989년 발표 이래 많은 논쟁이 불러 일으켰다. 최근에는 저에너지핵반응(LENR)으로도 불려진다. 여전히 세계적으로 물리·핵융합 분야 주류 학계에서는 이를 과학적 결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23년간 상온핵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많은 실험결과들이 발표됐다.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성 에너지가 높고 핵반응에 따른 원자입자도 검출됐다. 핵이 깨지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원소가 생기는 것도 이들 실험결과가 핵융합의 산물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특히 미국과 그리스 업체는 이를 상용화해 메가와트급 열 발생 장치를 올해나 내년 초 출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상온에서 발생하는 핵융합= 1989년 3월. 유타대학 연구팀은 상온에서 중수(D2O)로부터 전기분해된 중수소(D2)를 팔라듐(Pd)에 흡수시키는 실험 중 화학반응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잉에너지 생성을 관측한다. 발표 즉시 전 세계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성이 이 실험에 대해 부정적 결론을 내린 후 실험결과는 관련 연구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여러 국가 연구자에 의해 이 분야 연구는 지속됐다. 상온핵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잉여에너지 발생, 원소변환, 핵입자의 측정 등에 관한 실험 결과도 발표됐다.
상온핵융합의 또 다른 연구 분야로 니켈(Ni)과 수소(H2)를 이용하는 연구도 진행됐다. 1994년에는 이탈리아 연구팀이 니켈(Ni)금속봉에 수소(H2)를 흡수, 가열하는 실험에서 과잉에너지가 발생되는 것을 발견했다. 올해 초 MIT에서는 나노구조 퀀텀 전자장치로부터 잉여에너지 발생 시연을 진행했다. 미국의 한 업체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면서 발생시키는 열을 이용한 열 발생 장치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1989년 이래 상온핵융합과 관련해 3000편의 발표 논문이 존재한다.
◇국내 연구도 진행= 국내에서는 1989년 4월부터 12월까지 화학연구원, KIST, 대학 등에서 관련분야 연구가 진행됐다. 정부는 1989년 17개 과제에 2억5000만원, 1990년에는 12개 과제에 대해 1억 3300만원을 지원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지원은 지난 2010년 1개 과제에 5000만원을 끝으로 중단됐다. 정부를 비롯해 주류 학계가 상온핵융합에 대한 이론과 실험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수 과학자는 연구를 지속했고 이에 대한 공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제17차 국제 상온핵융합 학술대회가 12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다. 대회에서는 세계 관련 전문가 25명이 참석해 상온핵융합의 기술적 발전상황을 제시한다. 박원선 조직위원장(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은 “상온핵융합 현황을 검증해볼 수 있는 자리”라며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해 제시된 실험데이터와 이론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판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상온핵융합 실험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학계는 이를 외면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상온핵융합 구현 시 밀려올 에너지업계의 파장과 관련 학계의 이권도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외면 받는 이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상온핵융합을 바라보는 주류학계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한마디로 검증 안 된 과학적 이단으로 평가한다. 한 핵융합 전문가는 “상온핵융합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법칙에 어긋나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도 대량 에너지를 얻지는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밝혀진 물리법칙에 따르면 상온 핵융합 현상은 일회성에 그치며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또 실험이 과학이 되려면 재현이 돼야 하는데 아직 공식적 재현은 없다는 지적이다. 상온핵융합이 일어난다고 해도 메가와트나 기가와트 수준의 대용량 에너지를 생산할 수도 없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국의 KSTAR나 해외 ITER 등 초고온 핵융합장치는 기술이 검증됐고 현재 투입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실용화 단계를 진행 중”이라며 “상온핵융합이 정말 가능하다면 정통 학술지에 논문을 제시하고 현실적으로 재현되는 실험 장치를 직접 보여 달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핵융합: 태양의 중심은 1억도 이상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 이 상태에서는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 핵융합반응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되며 이것이 핵융합 에너지다. 반면 상온핵융합은 실내온도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과학적 사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2006년 미국과 일본에서 상온 핵융합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은 고온 핵융합만 연구 중이다. 초고온핵융합은 태양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핵융합 에너지를 얻는 기술. 이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장이나 레이저를 이용해 태양과 같은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핵융합로가 필요하다. 한국의 KSTAR와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가 대표적이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