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 생명연 원장...씨감자의 전설로 남다

정 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이 `씨감자`의 전설로 남게 됐다. 하지만, 그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억측이 무성해 과학기술계를 안타깝게 했다.

지난 6일 오후 발생한 정 원장 사망 순간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살이냐 사고사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날 오후 4시께부터 발견 시간인 6시 20분께까지 정 원장 종적은 생명연 본원 서남쪽에 있는 3층짜리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하 자생단) 건물로 들어가는 CCTV 영상이 전부다.

정 원장은 이날 6시 20분께 자생단 건물에서 1~2m 떨어진 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조사를 맡은 경찰은 자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결과는 부검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황상 자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주위 얘기다.

정 원장을 `사부`라고 불렀다는 한 연구원은 “당시 정황을 꿰 맞춰보고, 몇 가지 추정을 해본 결과 절대 자살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단호히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 원장 자살 근거로 연구소 기업 `보광리소스` 대표 사기사건과 내부 불만제기 등의 스트레스를 꼽고 있으나, 이게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 일단 본인 자신이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진다. 도덕적인 책임은 있을 지라도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가정사도 제기됐다. 효자였던 정 원장 아버지가 생존해 있고, 두 딸 또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특히 정 원장은 이날 아침 늘 애틋하게 여기던 둘째 딸 얼굴도 못 봤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살하는 사람의 통상적인 예후도 전혀 없었다. 정 원장이 늘 자문을 받던 서울대 모 교수와 이날 30분간 통화하면서도 전혀 낌새가 없었다. 가족이나 주위에도 `부탁조`의 전화조차 없었다.

생명연의 한 관계자는 “체력 고갈에 따른 단순 사고사가 가장 신빙성 있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근거로 정 원장의 최근 체력을 예로 들었다. 정 원장은 `보광리소스`사건이 터지면서 체중이 무려 8㎏이 빠졌다는 것. 본래 깡마른 타입이었는데, 사건 이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해 계단 오르기도 버거울 정도로 체력이 바닥이었다.

정 원장의 사람 됨됨이도 뒤늦게 알려졌다

정 원장은 실제 `보광리소스` 사건과 내부 불만 제기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냥 `허허`웃었다고 한다. 표면적인 내용은 고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정 원장이 식사를 못할 정도로 정작 고민했던 사안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정 원장을 믿고 `보광리소스`에 투자했던 투자자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 때문에 아파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엄청 속상해 했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연구소에서 늘 자상한 형님 같았다. 인센티브를 주더라도 계약직까지 모두 챙겨 공평하게 나눠줬다. 체육대회 때는 청소 아주머니까지 참가시켜 모두 가족 같은 느낌을 갖도록 늘 배려했다.

리더십에 문제가 제기 됐을 때도 정 원장은 자존심 상한다는 언급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말 문제 있는 다른 기관장과 함께 비교되는 것 자체에 대해 견딜 수 없어 했다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로 음식을 먹지못해 어지럼증을 상시 유발하는 체력 고갈과 탈진으로 이어졌고, 실험실 씨감자 발육상태를 돌아보러 갔던 정 원장이 2층이나 3층 발코니에서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1층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정혁 원장의 한 지인은 “감자연구를 그렇게 좋아 했는데 차라리 연구나 하지 왜 기관장은 맡아 가지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희범· 윤대원 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