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술평가원이 에너지기술 한류(K-ET) 붐을 일으키는 선봉장 역할을 하겠습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으로 취임한 지 불과 2개월 남짓. 안남성 원장의 말에는 거침없었고 그의 눈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에기평 설립 이후 지난 3년이 에너지기술 R&D를 통한 녹색성장의 노둣돌을 놓는 시기였다면 앞으로 3년은 `시장성 높은 에너지 R&D 정책`을 기치로 걸 계획이다. 한류의 중심에 선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에너지 한류`도 이끌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앞으로 에너지기술 투자는 연구개발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에너지 기술을 상품화하는 쪽으로 투자를 늘릴 계획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개발한 에너지기술을 한류가 한창인 국가에 수출하는 `K-ET(Korea-Energy Technology)`를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안 원장은 필요하면 현지에 연구소를 세우고 국내 연구소와 협조해 기술 개발을 진행할 방침이다. 현지 마케팅을 통해 에너지기술과 상품의 시장성을 확보하는 업무도 추진한다.
“그동안 국제협력이 수입 중심이었는데 앞으로는 수출하는 것으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에너지기술 개발 목표를 수출과 글로벌 마케팅으로 방향을 전환하겠습니다.” 에기평이 에너지기술 수출의 전초기지가 되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매년 에너지기술 R&D에 1조원을 투자하는 만큼 연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산업화·상용화를 고려해야 한다”며 “원자력이나 신재생에너지 분야만 봐도 사실상 기술개발에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므로 이제는 개발된 기술로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개발된 에너지기술을 시장이 선택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에너지 수출은 못해도 에너지기술은 수출하는데 에기평이 일조하겠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기술의 정체성에 도달한 상태에서 기술을 조금 증진시키는 정도에 목메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기술의 상품화에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방향에서 앞으로 국내 기술의 데이터베이스화와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며 원자력 안전에 관한 별도의 과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국내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해 해외 기술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상품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투자 대비 효과가 큰 에너지효율이나 스마트그리드 분야 중소기업들에게 지원을 확대, 기술 상품화·마케팅을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는 수출용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안 원장은 “중소·중견기업에 에너지 R&D 정부지원금 투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2015년까지 투자 비중을 40%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원자력 분야의 안전과 조직문화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한 연구와 에너지 관련 안전시설에 별도 과제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중소기업 지원을 늘리기 위해 `에너지부품·소재 장비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그린에너지 정책과 대기업의 미래 신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주요 핵심부품의 해외 의존율이 높고 핵심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해야 할 중소기업의 역할이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풍력 발전기 대형 블레이드용 탄소섬유, 발전터빈의 초내열 합금강 등 부품·소재 기술개발은 에너지 효율향상과 성능·가격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전략적 기술개발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부품·소재 장비 마스터플랜은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R&D 밸류체인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현 시점에서 에너지분야 부품소재 수입대체 효과가 가장 큰 품목을 우선적으로 도출하고 그린에너지 로드맵과 온실가스 전략 로드맵 분야 중 상대적으로 기술개발 필요성이 높은 분야를 대상으로 품목을 최종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안 원장은 “에너지부품·소재 장비 마스터플랜은 사실상 중소기업들에게 그린에너지 산업에서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로드맵이 될 것”이라며 “R&D 단계별 부품소재 중소기업과 시스템 대기업과의 협력방안까지 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정책 전문가를 자부하는 안 원장은 우리나라에 적합한 에너지믹스에서 `원자력`을 빼놓을 수 없으며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폭을 확대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과거 체르노빌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유가도 높고 중국·인도와 같은 거대 에너지수요가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후변화 이슈가 등장하는 만큼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에너지믹스는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향상 등이 보완적이라는 것을 감안해 척추는 원자력으로 삼고,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을 갈비뼈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비용과 변경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해 원자력을 과도기를 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인터넷기반 사회 시스템과 통신기술은 전력 의존도가 높은데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발전원은 선택할 수 없으므로 해답은 원자력 뿐”이라며 “원자력을 급속도로 확대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비중을 가져가면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적절히 섞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기요금 인상폭에 대해 안 원장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을 많이 올리면 큰 타격이 올 수 있다”며 “전기요금 인상은 한국전력 경영 개선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국가 경제에는 유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전기요금을 10% 가량 올렸는데 또 10% 이상 올리면 제조업이 버티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에너지기술평가원 주요업무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에너지기술혁신을 통한 녹색성장 실현에 필요한 에너지기술 R&D 기획-평가-관리 전담기관으로 전주기적 관리기능을 수행한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은 2008년 제2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 발표 이후 기존 에너지 R&D 관리 전담기관인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전력기반조성센터, 한국에너지자원기술기획평가원 4곳이 통합돼 2009년 5월 출범했다.
설립목적은 에너지기술개발 및 에너지기술혁신 기반조성으로 안정적, 효율적, 환경 친화적인 국가에너지 수급구조의 실현이다.
주요 업무는 에너지기술개발 사업의 중장기 기술 기획 등 관련 정책 수립, 에너지기술 수요조사와 동향분석 및 예측을 통한 기획·평가·관리다. 에너지기술개발 사업 결과의 실증연구와 시범적용 등 사업비 운용·관리와 에너지기술 분야 전문인력 양성도 담당하고 있으며 국제협력과 국제공동연구지원도 핵심 업무다.
에기평은 국내외 산·학·연 전문가들과 함께 국가 중장기 에너지기술개발 전략수립을 위한 로드맵을 도출하고 이와 연계해 기획과제를 추진한다. 또한 가장 훌륭한 제안서를 제출한 전문가가 과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공정한 평가를 진행한다.
최근 에너지기술 분야 글로벌 협력체계가 강화됨에 따라 양자 간 협의체를 구축해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발굴·추진하고 국제에너지기구(IEA), CO₂ 회수저장 리더스포럼(CSLF) 등이 추진하는 다자간 협력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아울러 미래 에너지혁신기술 분야 선도인력을 장기적으로 양성하고 동시에 기업맞춤형 고급인력 배출을 위한 인력양성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최근 기존 3본부 11팀 1센터 체제에서 에너지기술의 상용화와 수출에 힘을 싣기 위해 4본부 12팀 체제로 조직을 개편했다.
아이디어에서 기획단계까지 부드러운 연결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기획본부`에서 기술개발 전략과 기술기획을 일괄 관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연구과제 선정 시 기술성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제품과 기술가격 등)을 고려한 기술개발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또한 `성과확산본부`를 구성하고 성과확산팀, 국제협력팀, 인력양성팀을 배치해 개발된 기술의 상용화와 에너지기술 수출에 주력한다.
◆안남성 원장은...
안남성(58) 원장은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원자력공학 석사, 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전력연구원 안전분석 그룹장과 기술정책팀장, 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미국 중앙전력연구소(EPRI) 수석연구원 등을 거쳤다.
안 원장은 대학에서 원자력공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 에너지정책 전문가라고 자평한다. 원자력보다는 에너지기술과 에너지수급정책 분야에서 주로 일해 왔고 현재도 지식경제부 에너지시설 안전점검 민관합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전 전력연구원 근무 당시 에너지기술 R&D의 정책·기획·평가 업무를 두루 거쳤으며 미국 중앙전력연구원 시절에는 R&D 투자 포트폴리오 분석 연구를 통해 효율적인 R&D 방향을 도출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우송대학교 솔브리지 국제경영대 교수로 재직했다. 안 원장은 에너지산업이 단순히 경제의 일부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적 이슈로 부상했기 때문에 기술개발 없이는 기후변화 대응이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대담=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정리=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