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수직계열화 대세론에 금이 가고 있다. 수직계열화를 공언했던 기업들은 특정사업부문에 투자를 집중하거나 수직계열화 작업을 유보하며 당초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원재료 및 가격 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수직계열화의 장점이 업계 불황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수직계열화를 공언했던 태양광 기업의 전략이 바뀌고 있다. 그룹 신수종사업으로 태양광 사업을 지목한 삼성은 계열사인 삼성정밀화학과 MEMC합작으로 울산에 연산 1만톤 규모 폴리실리콘 공장을 설립하고 있지만 잉곳-웨이퍼-셀-모듈 사업분야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폴리실리콘 기반이 아닌 구리·인듐·갈륨·셀레늄(CIGS) 박막태양전지 개발에 주력하며 무주공산인 박막 시장을 선점하기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SDI는 최대 17%에 근접한 효율을 달성했고 지경부가 주관하는 국책과제에 참여해 CIGS양산 장비 개발을 진행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디스플레이 사업 강점을 태양광 분야에 활용하면서 원천기술 보유 기업이 거의 없는 CIGS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전략”이라며 “결정질 사업기반은 소규모로 유지하며 시황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그룹 또한 LG화학이 폴리실리콘 생산공장 설립을 유보한 뒤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LG는 현재 박막형과 결정질 연구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초 LG전자는 내년까지 500㎿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2013년까지 이를 두 배 늘려 1GW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LG실트론 또한 150㎿의 태양광 잉곳·웨이퍼 생산능력을 2013년까지 500㎿ 이상 늘리기로 목표했지만 현재 증설을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두 기업의 전략을 두고 현재 중국업체가 득세하고 있는 잉곳-웨이퍼-셀-모듈분야 진출을 최소화하거나 상황을 관망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하고 있다. 안형근 건국대 교수는 “현재 잉곳-웨이퍼-셀-모듈의 가격 하락이 심해 자사 제품을 써도 생산원가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며 “대다수 기업이 R&D를 유지하면서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전체적인 사업구조를 재조정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사업 초기부터 수직계열화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던 OCI는 아예 잉곳-웨이퍼-셀-모듈사업을 배제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폴리실리콘과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연계,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운영사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규모 발전프로젝트 수주로 셀·모듈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폴리실리콘 수요까지 확보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열린 2분기 기업설명회(IR)에서 “수직계열화는 어느 한 부분만 잘못돼도 전체 사업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던 이우현 OCI 부사장의 발언도 궤를 같이 한다.
국내 기업 중 수직계열화에 가장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한화그룹조차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리스크 분산을 위해 언제든지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은 전체 사업구조에서 폴리실리콘사업규모를 가장 소규모로 추진하는 이른바 `역삼각형` 수직계열화 구조를 선택, 자사 공급물량 비중을 일정 수준 미만으로 제한했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 사업은 신기술에 의해 원재료, 제조기반 등이 한 번에 바뀔 수 있는 위험이 크다”며 “상황에 따라 사업전략을 수정할 수 있도록 리스크를 분산하고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것이 현재 전략”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수직계열화
폴리실리콘을 시작으로 잉곳-웨이퍼-태양전지-모듈-태양광 발전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산업 공급사슬 전 분야의 제조기반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원료 및 가격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사업부문이 부진한 경우 전체 사업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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