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코리아가 수입 중형차 시장의 새 라운드를 알리는 신형 파사트를 출시했다. 7세대에 해당하는 이번 파사트는 미국 중형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럽 시장용 모델과 분리된 미국 시장용 모델을 별도로 개발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유럽 시장용 7세대 파사트가 기존 모델을 일부 개량한 형태로 판매되는 것에 비해, 미국 시장용 모델은 차체가 대폭 커졌고 이전과 달리 현지에서 생산되어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국내에 수입되는 것이 바로 이 미국 버전이다. 지난해 5월 준공된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한국 사양으로 생산된다. `오리지널 저먼`을 강조하는 차가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브랜드의 국적과 실제 생산지가 다른 것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침, 파사트의 주요 경쟁 모델 중 하나인 도요타 캠리 역시 올해 초 모델 체인지와 함께 국내 수입 물량이 일본산에서 미국산으로 전환된 상태이다. 이들과 시장 다툼을 벌일 닛산 알티마와 혼다 어코드의 새 모델들도 국내 시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국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 올인 하다시피 개발된 중형 세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쏘나타의 경쟁 모델이지만 국내에서는 가격과 수입차라는 프리미엄으로 인해 그랜저의 경쟁 모델이 된다.
이런 구도에서 덩치를 키우고 나타난 새 파사트는 전장이 4870㎜, 휠베이스는 2803㎜로 이전 모델보다 10㎝ 내외로 커져, 쏘나타(4820㎜, 2795㎜)와 그랜저(4910㎜, 2845㎜)의 사이에 들어간다. 눈이 시원할 정도로 넓은 느낌을 주는 뒷좌석과 `골프백 4개`로 대변되는 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패밀리카 구매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하다. 아울러, 폴크스바겐의 대형 세단인 페이톤을 줄여 놓은 듯 보수적이면서도 간결한 외관 디자인은 비록 한눈에 잡아끄는 매력은 없어도 쉽게 싫증나지 않을 무난한 선택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실내 역시 넓은 공간을 바탕으로 복잡하지 않은 구성을 택했다. 기본적으로는 다른 폴크스바겐 차들에서 익숙해진 디자인이고, 화려함은 없지만 사용은 편리하다. 다만, 값 싸 보이는 소재들로 인해 아쉬운 부분들은 있다. 한국형 내비게이션과 하드디스크, USB입력단자, 시동버튼, 전동 조절 메모리 시트, 좌우독립 온도 조절 기능 등을 갖추었지만 뒷좌석용 에어컨 송풍구가 없는 등 경쟁모델, 혹은 기존 모델 대비 사양이 부족해진 것도 약점이다.
미국산으로 바뀌었음에도 주요 경쟁 모델들에게는 없는 2.0리터 디젤 엔진을 갖춘 것은 차 가격보다 연비에 더 민감한 구매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복합연비는 14.6㎞/l이고, 국도 위주로 100㎞를 달린 이번 시승에서는 13㎞내외의 연비를 얻을 수 있었다. 140마력, 32.6㎏·m의 힘은 요즘 기준으로 대단치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커진 덩치를 움직이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며, DSG 변속기와 결합돼 좋은 효율을 보여준다. 엔진 소음과 진동은 커진 차체만큼 나아진 인상이고 가감속도 매끄럽다. 100㎞/h 정속 주행 시의 엔진 회전수는 1800rpm이하. 하체는 긴장을 완전히 풀지 않았지만 승차감은 부드럽고 안정감 있다. 묵직하게 여닫히는 문짝에서 느껴지듯이, 독일 중형 세단을 탄다는 만족감을 얻는 데는 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시승한 폴크스바겐 파사트 2.0 TDI의 가격은 4050만원으로, 이전 모델보다 500만원 가까이 저렴해졌다. 10월에 출시될 2.5리터 5기통 가솔린 모델은 3790만원으로 더 싸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