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리더] 이귀로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 초대 회장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나노팹이 모두 6개입니다. 각 팹 시설 활성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귀로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 초대 회장(KAIST 부설 나노종합팹센터 소장)은 “대전 나노종합팹과 수원 나노기술원, 포항·전북·광주 나노집적센터 등 6개 나노팹이 이용료 수입이 적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며 “노후화할 장비 교체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리더] 이귀로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 초대 회장

이 회장은 전국 각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나노장비 관련 시설 6곳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역할이다. “해외에선 공공성을 강조한 사용자 중심시설과 수익성을 따지는 사업 중심시설로 구분해 운영하지만 우리는 공공성과 수익성(자립화)을 동시에 충족시켜야하는 모순된 정체성에 빠져 있습니다.” 6개 팹들이 자립화 계획에 발목을 잡혀 버렸다고 진단했다.

나름의 처방전도 내놨다. 10년이 넘어가는 나노 관련 시설의 업그레이드 예산을 총 장비 투자비의 10%선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형 나노인프라 모델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는 얘기도 꺼내 놨다. 팹을 공공성 중심으로 혹은 수익성 중심으로 가져 갈 것인지 명확히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KAIST교수로 있지만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금성반도체에 4년 있으면서, 반도체 기획과 공장 건설, 반도체 제작 공정 개발까지 CEO 빼고는 다 해봤습니다.” 이를 두고 `행운아`라는 표현을 썼다. 사업 전체를 보는 눈을 이때 키웠다는 것이다.

“나노팹 소장을 맡으니 여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연구원을 이끌고 한참 가다 뒤돌아보니, 뒤에 아무도 없습니다. 기업과 달리 출연기관 속성상 조직원이 다소 느슨한 면도 있지만, 다들 경험이 없다보니 자기분야와 전공만 알뿐 폭넓게 전체를 보는 시각이 부족했습니다.”

이 회장은 우수 인력 선발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KAIST 등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이 좋은 인력을 많이 배출하지만, 나노팹 같은 출연기관보다는 특정 기업 한 곳에 집중되는 경향이 너무 강해 문제라는 지적이다.

과학 정책에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기술정책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교과부 인력양성은 사이언스 측면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말도 했다. 기술 기업가나 기업가 정신 개념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는 표현도 썼다. 구조 자체가 창업자를 많이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덕특구에도 매년 3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지만, 딱히 실적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방안은 간단합니다. 대덕은 지리적인 특성상 고객으로부터 다소 거리가 있는 과제를 해야 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 사이언스에 가까운 것이 적합합니다. 고객 밀착 과제는 수도권과 경쟁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회장은 대덕의 경우 생명과학이나 화학 등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이귀로 회장은 1952년 경기 출신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땄다. 금성반도체에 들어가 CMOS238를 자체 개발했다. 마이크로 미세 정보시스템도 독자 구상해 처음 반도체 칩에 심은 일화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96년엔 USN(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용 칩 개념을 세계 처음 만들었다. 2002년엔 컵이나 화분 등 사물에 붙이는 USN칩을 만들어 유비쿼터스의 실체를 내놓기도 했다. 삼성종합기술원과 삼성전기 기술자문, LG전자기술원장(부사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첨단융복합 전문위원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