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법원 배심원 평결이 내려진 다음날 26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신종균 무선사업부장(사장), 이돈주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 부사장은 오전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잇따라 출근했다. 전날 미국에서 애플에 완패를 당한 뒤여서 임원들의 얼굴엔 굳은 표정이 역력했다. 평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기자가 주요 임원에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회의중`이라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삼성전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배심원단 평결에 이의(평결불복법률심리, JMOL)를 제기하고, 만약 패소할 경우 항소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만 내놓았다.
미국 소송에서 완패한 삼성은 향후 다른 나라 소송전에서도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 경영진은 이에 대해 향후 대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대응카드는 공세 수위에 따라 3가지로 예상된다.
◇항소에 올인…법정 명예회복=삼성전자가 공식 입장으로 내놓은 카드다. 우선 배심원 평결에 이의를 제기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항소하는 방법이다. 배심원 평결 이후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리기전까지 재판부를 상대로 설득작업도 이어가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법적·절차적 하자가 없으면 배심원 평결이 재판장의 판결로 이어지는만큼 항소에 올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항소심은 가처분결과와 1심결과에 대한 절차와 법리를 따진다.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1심때 중요한 증거가 채택되지 않은 점을 부각하는 등 절차상 문제를 걸고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법정에서 채택되지 않은 증거를 보도자료로 뿌리며 이미 항소심을 염두에 둔 `여론전`을 준비해왔다. 법적·절차상 문제 부각에 성공하면 1심 판결이 무효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효가 되지 않더라도 배상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항소 후 애플과 물밑 타결=삼성전자가 항소하면 애플도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특허에 대해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에서도 치열한 법리 논쟁이 불가피하다. 지리한 공방이 계속되는동안 유럽·아시아 등 다른 나라 본안소송 결과도 속속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들 재판 결과를 보면서 법적 다툼과 별도로 애플과 물밑 협상을 통한 화해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의 최대 고객이어서 이 카드는 얼마든지 유효하다. 이미 이재용 사장, 최지성 부회장 등 최고 경영진이 애플 팀 쿡과 여러차례 공식·비공식적으로 만나 협상을 한 상황이어서 상대의 요구 조건도 파악된 상황이다.
다만 이번 미국 평결에서 삼성이 완패하면서 협상시 삼성은 이전보다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향후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서 판결에서 삼성이 승소한다면 협상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항소 결과는 삼성이든 애플이든 되돌릴 수 없는 승부여서 판결전 협상 타결 가능성은 1심보다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허 소송 대부분이 항소 판결전 물밑 합의로 종료된 사례도 많다. 관건은 삼성과 애플이 주고 받을 로열티 규모다.
◇추가 소송·부품 단가 인상 등 총공세=부품 최대 고객인 애플에 다소 방어적으로 대했던 기존 전략을 완전히 바꾸는 카드다. 미국에서 완패한 뒤 삼성의 `캐시카우`인 스마트폰 사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삼성전자내 강경론자의 입김도 강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통신 특허만 1만1500여건에 달한다. 1000건 미만에 그치는 애플과 비교하면 게임이 안된다. 삼성이 대공세로 전환하면 얼마든지 추가 소송이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뉴아이패드에 이어 아이폰5에 롱텀에벌루션(LTE)가 채택되면 LTE 특허가 많은 삼성전자의 반격카드는 더욱 많아진다. 또 다른 소송전이 시작되면서 시장보다 법정에서 스마트폰 강자가 가려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애플에 공급하는 부품 가격을 인상하거나 공급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의 두뇌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를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서 제조해 공급받고 있다. 스마트폰 LCD 물량도 상당수 삼성에 의존하고 있다. AP의 경우 삼성 이외에 아직 품질을 보장해줄만한 업체가 없어 삼성이 단가 인상 등을 단행한다면 애플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삼성은 주요 거래선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적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이 카드는 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