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국제소비가전박람회(IFA)엔 내로라하는 해외 TV 제조사가 총출동했다. 전시장을 취재하면서 마치 육상 경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쟁쟁한 선수들이 동시에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장면이다. 기량이 남달리 뛰어난 선수가 있다면 십중팔구 역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시회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2위를 맹렬히 다투는 주자였다. 반면 세계 3위 수준으로 내려앉은 소니는 벌어진 기술 격차와 시장 입지를 만회라도 하듯 84인치 UD TV를 10대 이상 공격적으로 전시했다. 마치 상용 제품을 전시하듯 집중적으로 배치했지만 정작 양산 시점은 미정이다. 지난해 대대적으로 선보였던 크리스탈 LED TV는 자취를 감췄다.
필립스 TV 사업부를 인수한 중국 TP비전은 과거 유럽 전통 TV 강자인 필립스 브랜드 입지를 지켜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쳤다. 필립스는 마치 OLED TV를 보는 듯한 화질의 새로운 스마트TV 야심작을 공개했다. 1억5000만대 1 명암비를 구현한 46·60인치의 9000시리즈다. 일반 소비자가 봤을 때 OLED TV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O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싶었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전시장에서 만난 일본의 한 TV 기술 전문가는 “비효율적인 제품”이라고 꼬집었다. 결코 OLED TV와 경쟁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파나소닉이 공개한 차세대 TV 디자인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양산중인 삼성·LG 제품과 비교했을 때 이렇다 할 개선점이 보이지 않았다. 10대 남짓한 제품들이 꺼진 상태로 전시된 모습은 `차세대 TV는 죽었다`는 인상까지 풍겼다.
과거 세계 TV 시장을 호령한 샤프는 `저렴한 대형TV`로 눈을 낮춘 모습이다. 이미 80인치대 제품을 경쟁사의 60인치 가격대에 공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90·80·70·60인치 제품을 순서대로 나열해 전시한 모습에서 과거 프리미엄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한국 업체에 선두 자리를 내준 해외 제조사들은 결코 호락호락 지켜만 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치열하게 생존을 모색했다. 그렇지만 레이스는 선수간 격차가 점점 커지는 뻔한 결과를 예상케 했다.
베를린(독일)=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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