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은 불신으로 갈라선 `남`이 아니라 정직과 신뢰로 맺어진 `님`이다. 나 아닌 상대방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나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서로가 서로를 `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라는 무리 속에 편견과 아집이 스며들면 `우리`가 아닌 `그들`은 모두 `남`이 되고 만다.
`남`은 불신의 싹에서 자라고 `님`은 정직과 신뢰의 뿌리에서 자란다. `우리`라는 공동체는 수많은 `남`이 모여 시작되지만 조직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 아래 굳건한 믿음으로 연결된 다양한 `님`으로 뭉쳐지면 그 관계의 끈 속에서 더욱 튼실한 공동체의 싹이 자란다. 나에게 음으로 양으로 행복을 제공해주는 사람은 모두 나와 관계없는 `남`이 아니라 나와 관계 있는 `님`이다. 점 하나의 차이가 불신을 먹고 자라는 적대적 관계를 신뢰를 기반으로 맺어지는 우호적 또는 호혜적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기존 범주에 의존한다. 내가 어떤 범주로 이해 대상을 분류하는지에 따라 대상 이해의 폭과 깊이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우리-그들의 코드가 당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코드를 지배한다. 이 세상에 어떤 부류가 존재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부류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오랜 불행은 그 불행을 떠받치고 있는 확신이 꺾이기 전에는 치유되지 않는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내가 구분한 나의 인위적 범주 속에서 자란다. 한 번 형성된 범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막거나 색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주범이다. 그 범주나 틀을 깨지 않고서는 새로운 신뢰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상대방을 믿어야 하고 내가 믿음직스러운 언행을 해야 한다. 신뢰는 약속을 이행하는 가운데 자란다. 지키지 않는 약속은 불신을 조장하고 믿음의 그릇을 깨뜨린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부정적 생각을 잉태하는 생각벌레를 잡아내지 않고서는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