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특집1-ICT한류] 인도 지하철 `한국 기술`로

삼성SDS는 AFC 시스템뿐만 아니라 티켓을 발매하는 부스 전체를 설계 및 시공했다. 사진은 삼성SDS가 설치한 `센트럴 세크리터리어트`역 티켓 부스.
삼성SDS는 AFC 시스템뿐만 아니라 티켓을 발매하는 부스 전체를 설계 및 시공했다. 사진은 삼성SDS가 설치한 `센트럴 세크리터리어트`역 티켓 부스.

아침 7시. 다양한 경적소리가 뉴델리의 중심가를 깨운다. 아직 백미러를 기본 장착이 아닌 옵션으로 여기는 인도의 운전자 중 많은 수는 창밖 시야와 소리로 주변을 파악한다. 경적을 더 잦게 울리는 습관이 몸에 배일 수밖에 없고 불규칙한 운전 문화로 사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알려진 인도의 도로다. 거리 곳곳에 즐비해 있는 출근 차량과 버스, 삼륜택시까지 가담한 이곳 델리의 도로는 다른 나라 수도 이상으로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 각종 차량들이 내뿜는 대기 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같은 도심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와 델리시가 50%씩 출자해 `델리메트로철도회사(DMRC)`를 설립해 인도 정부 역사상 최대 금액을 투자해 대대적 지하철 건설에 처음 나선 것은 14년 전인 1998년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공격적 증축에 나섰던 델리의 지하철이 시민의 본격적인 `발` 역할을 하게 되면서 현재 190km 구간 142개 역사가 운영 중이다.

한국의 IT서비스 기업이 지하철의 역무자동화(AFC) 시스템을 빛낸 것은 2000년대 후반 들어서다. 2008년 델리시 AFC 사업에 참여하면서 첫발을 디딘 삼성SDS는 프랑스·스위스 기업 등을 제치고 올해 인도 내 3개 도시에 AFC 시스템을 구축한 최대 사업자로 등극했다.

◇`강자` 독점 시장 뚫고…인도 IT서비스 시장 진출

기자가 찾은 뉴델리 `센트럴 세크리터리어트(Central Secretariat)`역은 뉴델리의 역사적 유물인 `인디아 게이트`에 가장 인접해 있다. 퇴근 시간 많은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대표적 지하철역이다. 요겐드라 카필(Yogendra Kapil) DMRC 과장은 “3개의 호선이 달리는 델리메트로의 하루 평균 지하철 이용객은 이달 기준 200만명에 이르며 이 역에만 하루에도 약 10만명의 시민 이용객이 오간다”고 설명했다.

인디아 게이트는 영국의 인도 지배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9만명의 인도인 병사 이름이 새겨진 역사적 추모 건축물이다. 세계적 관광지이면서 인도 시민들의 대표적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센트럴 세크리터리어트역에도 삼성SDS가 구축한 AFC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지하철 이용수단은 토큰과 스마트카드가 있으며, 삼성SDS는 DMRC와 스마트카드를 통한 지하철-셔틀버스 환승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지하철 이용수단은 토큰과 스마트카드가 있으며, 삼성SDS는 DMRC와 스마트카드를 통한 지하철-셔틀버스 환승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2000년 초까지 델리의 지하철에서는 검표원이 직접 돈을 받고 종이로 된 표를 끊어줬다. 불편함과 비효율을 느낀 델리시는 2003년 처음 비접촉식 자동 개표 시스템 즉 AFC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AFC 시스템 구축 사업자는 이 분야 유명 기업인 프랑스의 탈레스였다. AFC 시장을 선점한 기업으로 국내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사실상 독점 시장을 깨고 한국 IT서비스 기업인 삼성SDS가 델리 지하철 AFC시스템 구축 사업을 처음 수주해 낸 것은 2008년이다. 1단계 사업자였던 탈레스를 제치고 2단계 사업을 손에 넣은 것이다. 삼성SDS가 중국 광저우에 구축하던 AFC 시스템을 본 인도 정부 관계자들이 러브콜을 보낸 것이 첫 인연의 발단이었다. DMRC는 1~2단계 사업 이후 3단계 사업을 앞두고 있다.

이어 삼성SDS는 2009년 뱅갈루루, 2012년 자이푸르시 지하철 AFC시스템을 연이어 구축하면서 인도 내 최다 도시에 AFC시스템을 구축한 사업자로 올라섰다. 인도 지하철 IT서비스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지 5년 만의 성과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 등 각종 교통관련 신기술도 삼성SDS의 손으로 빚어내고 있다.

또 지하철 카드로 버스까지 환승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시범 사업도 지난 7월 완료해 가동했다. 이 시스템은 인도 전역 가운데 델리에서 처음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인도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까다롭고 공정한 입찰 경쟁…세계 기업이 놀란 기술력

까다롭기로 알려진 인도 공공 IT 프로젝트 수주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인도의 공공 프로젝트는 입찰참가사전자격심사(PQ, Pre-Qualification)를 통과한 업체를 대상으로 공공기관이 제안요청서(RFP)를 낸 이후 `기술 제안`과 `가격 제안` 과정을 거친다. 제안서 제출을 통해 기술 제안을 통과한 업체끼리 가격 제안서를 한 자리에서 공개해 그 중 가장 낮은 가격을 낸 업체가 그 자리에서 낙찰되는 방식이다. 일명 최저가 낙찰제다.

밀봉된 봉투에서 가격 제안서를 꺼내 모두가 보는 데서 동시에 가격을 공개하기 때문에, 일단 수주전에 돌입하면 로비가 개입할 여지가 사실상 없어 공정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만 진입이 가능하다. 프레샨 라오 DMRC 시그널&통신 책임자는 “PQ를 통해 기술 및 가격 경쟁을 거치는 정식 프로세스를 거쳐 삼성SDS를 선정한 것”면서 “경험이 있는 로컬 기업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건축 공사를 포함한 시스템 구축 과정도 쉽지 않았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역사에서 24시간 작업해야 하는데 이용할 화장실조차 없었다는 것이 참여했던 작업자들의 전언이다. 현지 업체인 `칼린디`와 협업해 개표 시설 및 구조물 설치와 하드웨어 인프라 등 일체 설비를 구축했으며, SW 공급은 프로젝트관리자(PM)인 삼성SDS가 맡았다.

사실상 삼성SDS가 맡아 수주하는 지하철 AFC 사업의 자금 출처는 대부분 일본 공적원조(ODA) 자금인 자이카(JAICA) 사업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도인들의 특성상 인도 정부는 `일본에서 빌린 돈이지만 쓰는 것은 우리의 뜻`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기술로 경쟁해 이긴 한국 기업에 일감을 주고 있다. 심지어 일본 기업이 PQ 심사 등에서 자국 업체에 유리하도록 사전 작업을 하려해도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말이다. 삼성SDS 인도법인 관계자는 “기술 심사와 가격 선정 과정을 봤을 때 비리가 개입할 틈이 없는 공정한 시장”이라며 “한국인들의 열정과 기술력이 이룬 성과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뉴델리(인도)=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