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트업 진흥단지] 미국에 부는 창업 열기

지난 6월23일 일요일 오전 10시. 스탠포드대 대학원 기숙사촌 거리는 너무나 황량했다. 방학이 시작해 대부분 학생이 자리를 비어서일까. 아니다. 기숙사 거의 대부분은 차 있다. 일부 고향으로 떠난 학생의 자리(방)는 외부에서 채웠다. 늦은 아침시간 조용한 것은 입주자 상당수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서다. 일부는 진지하게, 일부는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가늠해보고 있는 것이다. 스탠포드대 컴퓨터사이언스학과 재학중인 데니스 원 스타트업 오프너 멤버는 “학과 동기 중에 몇 명이나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 없다”며 “엔젤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거나 다른 메이저 벤처의 인수 소식이 언론에 나온 후 안다”고 말했다.

바이오 스타트업이 보스턴으로 몰려들고 있다. 고종성 대표가 보스턴에 설립한 제네스코 연구원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바이오 스타트업이 보스턴으로 몰려들고 있다. 고종성 대표가 보스턴에 설립한 제네스코 연구원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미국 실리콘밸리가 다시 힘차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반도체, 인터넷에 이어 스마트혁명이 계기를 제공했다. `MBS가 뜬다`란 말도 들린다. `모바일(Mobile)` `빅데이타(Big data)` `소셜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의 이니셜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기술·서비스다. 이들을 3대 축으로 스타트업 창업이 무섭게 일어나고 있다. 창업자는 제2, 제3의 스티브 잡스(전 애플 CEO)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CEO)를 꿈꾼다.

분위기는 동부 보스턴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IT`라는 단어가 아닌 `바이오기술(BT)`이다. 바이오·헬스케어 등 BT산업이 급팽창중이다. 대형 제약사가 신약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게 요인이다. 보스턴에 바이오업체 제노스코(Genosco) R&D센터를 설립한 고종성 CTO는 “메이저 제약사는 조직이 너무 커서 스스로 혁신을 못한다”며 “대안(신약 개발)으로 외부에서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이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대략 8조원이 필요하다.

반면 스타트업·벤처를 인수한다면 그 가치가 8분의 1인, 1조원으로 하락한다. 이는 BT시장 인수합병(M&A) 활성화로 이어졌다. 잠재력 있는 신약이나 서비스·기기를 개발하면 대형 제약사가 앞 다퉈 인수전에 뛰어든다. 그런 논의의 장이 의료가 강점인 보스턴에서 이뤄졌다. 보스턴 BT 분야에서 네트워크는 곧 기업 경쟁력으로 표현된다. 대형 제약사 주도로 우수 신약을 확보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여기에는 대학·병원·벤처캐피털이 참여한다. 매사추세츠 바이오기술협회(MassBio)는 산업 발전을 위해 모임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수많은 네트워크가 활동하고 있다. 가입이 쉽지는 않다. 기존 멤버 이외에는 절차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다. 등록비는 1500달러에서 많게는 5000달러다. 고종성 CTO는 “회원에 가입해야 최신 신약 개발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정기·비정기로 열리는 세미나에서는 원하는 이슈의 토론을 펼칠 수 있는데 이런 자리가 개발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바이오 벤처캐피털업체 옥스퍼드 바이오사이언스 크리스토퍼 킴 파트너는 “네트워크 자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투자처)와 인수합병(M&A) 대상을 언급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투자처와 M&A대상이 결정된다”며 “이곳만의 독특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보스턴에는 최근 바이오업계에 종사하는 한국계 미국인 중심으로 `KABIC`이라는 네트워크 조직도 만들었다.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속에서 정보 소외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미국 스타트업 시장 특징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게 `실패에 대한 관대함`이다. 선의의 실패는 과감한 도전에 대한 소중한 경험으로 인정한다. `2~3번 실패한 사람이 스타트업 사업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이유다.

미국만의 특징이 있다면 스타트업 사업 실패 시점이 초기 단계부터 이뤄진다. 투자자를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엔젤·벤처캐피털 시장이 활발한 미국에서 투자자금을 전혀 유치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디어·기획·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럼에도 거기에 투입한 노력은 인정한다. 실패했지만 경험은 다음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서다. 사람 평가에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이는 기업 채용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대학 재학중 한두 차례 창업한 사람이 오히려 지역 IT대기업 입사가 쉽다고 말한다.

최근 페이스북 주가 폭락과 함께 제2 벤처 버블(거품)에 대한 우려가 높다. 하지만 이것이 괜한 걱정이란 목소리도 많다. 첫 번째 이유로 과거 시행착오를 꼽는다. 지역 스타트업·벤처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10여년 전부터 활동해,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거품이 크게 생겨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 중인 벤처캐피털 트랜스링크캐피탈 음재훈 대표는 “닷컴 붐 시절에는 인터넷 페이지뷰, 유저수로 기업을 평가했다면 지금은 결제 솔루션과 광고 기법의 진화로 미래가치를 정확히 추정한다”며 지난 닷컴 버블과 유사한 형태의 버블이 생겨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일정 규모의 거품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것은 `관심`이고 그래야 `돈(자금)`이 흘러 들온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혹자는 조그마한 거품이 생겼다가 터지고 있으며 그것은 산업이 고도성장하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손쉬운 창업, 활발한 대기업 인수(M&A), 실패에 대한 관대함 그리고 집중적이 관심(작은 거품). 완벽한 스타트업 생태계다. 스타트업 강국 미국의 힘이 느껴진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