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트업 진흥단지]네덜란드, "창업, 싹부터 기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내려서면서 한국에서 미리 저장해 둔 `9292ov`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대중교통을 확인했다. 지도를 보면서 내가 있는 곳을 익힌다. 그 다음 터치한 앱은 `Tour&Ticket Amsterdam.` 네덜란드국립미술관 앱도 필수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네덜란드 여행은 무리가 없다.

네덜란드 중소기업협회(MKB네덜란드) 롭 볼트하우스 기업재무담당관(왼쪽).
네덜란드 중소기업협회(MKB네덜란드) 롭 볼트하우스 기업재무담당관(왼쪽).

지난 5월 네덜란드 `스타트업랠리2012`에서 한국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비트윈` 운영사 VCNC가 `최고의 모바일 앱(The Best Mobile App)`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로만 알려진 네덜란드에서 세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전문 경진대회가 개최된다는 건 한국인으로서는 생소한 일. 하지만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초고속인터넷·무선인터넷 인프라가 가장 앞선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로존에 속한 유럽연합(EU) 국가가 남유럽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네덜란드도 더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GDP 증가율은 5% 이하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각 주정부는 이를 탈출하기 위해 정보기술(IT)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창업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중소기업연합회(MKB네덜란드) 같은 연합체를 구성해 스타트업에게 창업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95%가 중소기업, 기업가정신 교육이 힘

성장률이 둔화되긴 했지만 네덜란드는 올해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면에서 세계 14위(4만7841달러)를 기록한 부유한 나라다. 한국(2만3679)의 두 배다. 반면 이 나라 면적은 4만1543㎢, 인구는 약 1600만명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각각 절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가 강소국가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부터 창업가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

초등학교부터 교과 과정 내에 기업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기술 기업에 대해 배우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 스스로 회사를 창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롭 볼트하우스 MKB네덜란드 기업재무담당관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술 창업에 대한 기본기를 갖추고 시작하게 돼 창업이 쉽다”며 “최근에는 IT와 문화예술 분야 1인 창업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전체 기업 중 95% 이상이 직원 250명 이하 중소기업이다. 볼트하우스 담당관은 “정책적으로 다양한 산업이 성장하고 창업을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기업에만 돈과 인재가 쏠리는 한국과 판이하다.

현지에서 만난 네덜란드인들은 자국에 대해 `유럽의 관문` 또는 `유럽의 항구`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무역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는 뜻이다. 산업 분야별로는 유통은 물론 농업과 철강 분야에 강점이 있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스키폴공항과 항구 덕분에 유럽 물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1602년 동서양 문화를 주도하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이 나라는 17세기 초반 동인도 회사를 2년 먼저 세운 영국과 전쟁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경쟁 우위를 차지하며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일찌감치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익숙하다. 이 같은 역사 덕분인지 암스테르담과 델프트, 헤이그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업 임원이나 식당 종업원 할 것 없이 영어에 능통했다. 최근에는 IT 창업이 늘어나면서 해외 우수 인력과 협업하는 문화도 자리잡았다. 증강현실 전문회사 레이아의 클레어 분스트라 대표는 “유럽 전체, 또는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창업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개발자도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에 흩어져 있어 영어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단위 창업 지원

중소기업의 나라답게 네덜란드에서는 한 해 회사가 10만곳 이상 설립된다. 지난해에는 13만개로 정점을 찍었고, 올해는 상반기까지 약 12만7000개가 만들어져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델프트, 아인트호벤, 유트레흐트 3개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첨단기술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어서 이 지역 창업 열기가 뜨겁다. 중앙 정부 보다는 지방 정부가 대학과 연계해 창업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있다. 델프트공대는 델프트시와 대기업이 출자한 `YES!델프트`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을 지원한다. 아인트호벤에는 필립스와 아인트호벤 공대를 중심으로 `하이테크 캠퍼스`가 구축돼 있다. 유트레흐트 공대 주변은 과학단지가 조성돼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