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트업 진흥단지]태동하는 국내 창업 생태계

[글로벌 스타트업 진흥단지]태동하는 국내 창업 생태계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과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신설 법인 수는 5만855개다. 지난해에는 6만5110개로 늘었다. 약 20% 증가한 셈이다. `닷컴 버블`이 가라앉은 후 우리나라는 10년간 창업 불모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창업 하려는 사람도, 자금을 투자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스마트기기가 등장하고 이동통신망이 고도화 되면서 창업 시장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미국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창업 선순환 생태계가 한국에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터넷 벤처 1세대를 주축으로 엔젤 투자그룹이 생겨났다. 기업 고용 감소로 청년 실업 문제가 나타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창업자를 지원하면서 창업하려는 젊은층도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멘토링, 법률·회계나 홍보·마케팅을 돕는 후원자가 등장하면서 틀이 갖춰졌다. 아직은 웹·모바일 서비스에 쏠려 있지만 이를 계기로 제조업이나 유관 산업에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타트업 네트워크 행사 풍성=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서울 세종로 KT올레스퀘어에서는 어김없이 `고벤처 포럼`이 열린다. 2008년 고영하 전 하나TV 회장 주도로 젊은 벤처인 7명이 모이던 행사는 4년을 넘기면서 250명~3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성장했다.

행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닷컴 버블이 가라앉은 후 정보기술(IT)창업이 침체돼 있을 때 만들어져 이후 창업 열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고 회장을 비롯한 엔젤투자자가 고벤처포럼에서 발표하거나 참석한 회사에 투자하고 초기 창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멘토링이나 법률, 회계 자문을 해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던 파티 문화를 들여와 네트워킹 장(場)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벤처포럼 이외에 아예 `고벤처파티`를 신설해 더욱 활발하게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고영화 회장은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혁신이 필요한데 대기업에서는 힘들다”며 “창업 문화를 활성화 시켜 스타트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2008년,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사(VC)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가 거의 유일했다. 대기업이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기 위해 운영하는 경진대회나 창업 프로그램 외에 소프트뱅크에서 운영하는 `리트머스 프로젝트`라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가 지원해 자금과 멘토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좁은 문이었다. 네오위즈인터넷이 운영하는 네오플라이가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몇 안되는 사업팀 중 하나였다.

2010년부터는 프라이머가 `엔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인큐베이팅 이전에 아예 사업 아이템 선정 단계부터 창업 교육을 하겠다는 것. 이른바 창업 인턴십이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도 `청년기업가 창업경진대회`에서 투자할 회사를 뽑고 쿨리지코너 사무실에 입주시켜 멘토링 및 각종 지원을 한다.

포스코, 아산나눔재단, 삼성SDS, KT 등 대기업도 사회적 기여,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창업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경진대회를 운영한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사업 개발 대회 `스타트업위크엔드(Weekend)`도 국내에 들어왔다. 최근에는 대학생 사이에서도 창업 대회를 만드는 경우가 생겼다. 8일 열린 `트리핵(TriHack)`은 한국·미국·중국·일본 대학생이 공조해 만든 창업 대회다.

◇투자자도 급증= 2010년 설립된 본엔젤스는 엔써즈·매드스마트를 각각 KT·SK플래닛에 매각하며 인수합병(M&A) 성공사례를 일궈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쿨리지코너인베스트 역시 초기 기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올해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출자한 케이큐브벤처스까지 가세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해외 자금도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흘러들어 온다. 중국 텐센트는 캡스톤파트너스에 출자했고, IDG벤처스코리아는 미국 IDG 자회사다. 최근에는 포메이션8 같은 미국 기반 펀드도 한국에 선보였다.

◇싹트는 스타트업 생태계= 사람, 자금, 교육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스타트업 붐`이 일어났다. 창업 형태도 다양해져, 큰 규모 자금을 운용하면서 창업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기획형 인큐베이터도 생겼다. 독일 로켓인터넷과 팀유럽, 국내 패스트트랙아시아가 그 예다. 넉넉한 투자금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사업하는 사례도 다수 생기고 있다. M&A 사례도 지속적으로 보고돼 전망을 밝게 한다. 전체적으로 창업 시장은 확대되고 있지만 역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진대회가 중구난방으로 열리니까 같은 얼굴들을 여러 대회에서 보게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늘고 모태펀드가 1조 넘는 규모로 커지면서 엔젤투자 명목으로 지원금을 타려는 움직임도 일부 감지된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정부 `엔젤투자매칭펀드` 신청 승인율은 50% 가량으로, 투자적격 심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탈락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 그 중에서도 온라인·모바일, 게임에만 각종 지원책이 몰리는 쏠림현상도 발생하고 있어서 제조업이나 그밖의 직군 창업은 활성화 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