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는 우리나라 인구의 5% 정도인 약 250만명이 살고 있다. 실리콘밸리 상위 150대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6600억달러, 순이익은 1100억달러, 주식 시가총액은 1조900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을 능가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는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생태계, 특히 소프트웨어(SW) 생태계에 기인한다.
옥스퍼드사전은 생태계를 `서로 영향을 주는 유기체와 그 주변 환경`으로 정의했다. 자연 생태계는 식물, 동물, 미생물, 물, 토양, 기후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며 어느 한 요소가 균형을 잃으면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거나 절멸하게 된다.
SW 생태계는 자연 생태계와 흡사하면서도 매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의 많은 SW 관련 기관이 대기업 하도급구조 개선, 용역대가 기준 조정, 신제안요청서(RFP) 작성 방법 보급 등 매우 지엽적인 내용을 SW 생태계로 오해하고 있다. 건강한 SW 생태계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필요하다.
첫째, 독창적이고 우수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이를 상업화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둘째, 기업의 인력 수요에 맞춰 고급 SW 두뇌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인력 탄력성이 필요하다. 셋째, 아이디어와 함께 자본(돈)은 사업 성공의 주요 요소다. 자유로운 자본 흐름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의 자립을 돕는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이 많이 생겨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우리 기업인이 미국·유럽·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국제 네트워크는 각종 법적, 제도적 협력도 포함한다. 다섯째, 창업을 돕는 전문 법률가, 전문 회계법인, 전문 인력관리기업 등도 SW 생태계의 주요 요소다. 마지막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들 수 있다. 시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고, 설사 사업 도중 실패하더라도 그를 낙오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가 언제든지 다시 시장에 재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가는 기업가정신이 투철하다.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험정신이 있고, 일을 추진하는 열정과 추진력도 대단하다. 그러나 실패자도 언제든지 다시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어야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보다 강한 기업이 출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 SW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지인 채용, 인수합병(M&A) 등 현지화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SW 기업이 세계적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할 수 있도록 건강한 SW 생태계 조성에 높은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단형 한국SW기술진흥협회장 danl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