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100] 엔씨소프트, 넥슨 품으로 <2012년 6월>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품에 안았다.

넥슨 일본법인은 2012년 6월 7일 엔씨소프트의 설립자인 김택진 대표로부터 회사 총주식의 14.7%에 해당하는 321만8091주를 주당 25만원에 취득했다고 밝혔다. 인수금액은 약 8045억원이다. 8일 종가 기준 엔씨소프트 거래액은 26만8000원이었다. 넥슨은 2011년 일본 증시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의 절반 이상을 엔씨소프트 지분 확보에 투자했다.

넥슨 CI
넥슨 CI

◇게임 산업 최대의 충격=국내 게임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지분 인수였다. 넥슨은 이번 투자로 지분 14.7%를 가진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가 됐다. 김택진 대표는 9.9%의 지분으로 2대 주주로 물러났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인수 배경에 대해 “두 회사가 힘을 합쳐야 세계 게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양사의 파트너십으로 엔씨소프트가 가진 개발력과 넥슨의 글로벌 퍼블리싱 플랫폼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인수는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의 담판으로 이뤄졌다. 김정주 대표는 넥슨 일본법인을 포함한 넥슨 그룹의 실질적인 소유주다.

두 사람은 서울대 공대 출신 선후배로 평소 돈독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택진 대표가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이고, 김정주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학과 86학번이다. 학생시절부터 창업에 뛰어들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게임업계 최고라는 목표는 같지만 성격이나 경영 방식은 달랐다. 김택진 대표는 목표를 향한 집념이 강하고, 개발과 경영을 직접 챙기는 `현장형 CEO`다. 카리스마가 강해 김택진 대표를 따르는 게임업계 사람들도 많다.

김정주 대표는 판을 읽는 눈과 통 큰 투자로 유명하다. 소탈한 인간적 면모와 동물적 사업 판단이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지주사 및 개발 스튜디오 개편 이후 직접 경영보다 인수할 만한 업체와 콘텐츠를 물색하고 큰 그림을 짜는 데 몰두했다.

NC소프트 본사
NC소프트 본사

◇한국 게임 산업을 이끌어온 넥슨과 엔씨소프트=양사는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1, 2위 기업이다. 넥슨은 2011년 1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엔씨소프트는 6089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넥슨이 훨씬 많이 벌었지만 기술은 엔씨소프트가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와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의 인기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을 흥행 반열에 올렸다. 엔씨소프트는 대작 게임이, 넥슨은 캐주얼 게임이 강했다. 양사가 걸어온 길은 그만큼 달랐다.

김택진 대표는 1991년 현대전자에서 국내 최초 인터넷 서비스인 `아미넷(신비로)` 개발팀장을 맡았다. 인터넷이 단순 정보망 역할에서 나아가 엔터테인먼트로 다양하게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 김택진 대표는 13명의 직원들과 함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엔씨소프트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다 리니지가 1998년 9월 상용화에 성공한다. 리니지는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자리 잡는다. 수만명의 동시 접속이 가능한 온라인 서버 운영 기술과 쉬운 이용자 인터페이스, 간단한 게임 플레이는 이용자를 사로잡았다. 게임 내 강력한 커뮤니티 시스템은 온라인 게임의 성공 방정식이 된다.

엔씨소프트는 우리나라 게임 개발력을 대표하는 회사다. 리니지2는 화려한 그래픽으로 국내 게임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온은 획기적인 게임 내 비행 플레이를 도입했다. 블록버스터 게임 개발문화는 국내에서 게임이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산업으로 재평가받는 역할을 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 산업의 선두기업이었다. 게임사로서 처음으로 1000억원대 매출 고지를 밟았다. 엔씨소프트 성공 역사는 2011년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 야구단 창단에 성공하면서 정점에 올랐다. 프로야구 30년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넥슨은 그동안 네오플, 게임하이, JCE 등 게임사를 인수하며 게임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넥슨의 고속 성장 기반에는 탁월한 인수합병이 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

넥슨은 좋은 업체를 사서 최고로 만들어왔다. 넥슨 매출 트로이카로 불리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은 모두 인수로 얻은 게임이다. 국내 게임 매출 정상을 다툰다.

2007년까지 넥슨과 엔씨소프트 연간 매출액 규모는 3000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결정적 차이가 벌어진 시기는 2008년부터다. 넥슨은 총 3800억원에 이르는 금액으로 던전앤파이터 개발사인 네오플 지분을 전량 인수한다. `너무 비싼 가격`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결과는 탁월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넥슨은 지난해 네오플 매출로만 3000억원을 벌어들였다.

넥슨은 부분유료화 기반 비즈니스 모델에 인수로 확보한 최고의 콘텐츠를 올렸다. 인수된 업체는 콘텐츠와 마케팅 양쪽으로 `넥슨화(化)`를 거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개발과 사업이 하나의 조직으로 묶이고 콘텐츠 업데이트가 신속히 이뤄졌다. 국내 게임사 최초로 1조원 매출도 달성했다. 해외 매출 비중은 국내를 앞지른다.

넥슨 본사 건물
넥슨 본사 건물

◇글로벌 1위를 꿈꾼다=두 회사의 결합은 글로벌 경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다. 중견게임사의 몰락, 중국게임의 진출, 북미 대작 게임의 시장 점령으로 이어진 최근 3년간의 변화다. 2009년부터 중견 게임사 위주로 매출이 악화되면서 잇달아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주력 게임 타이틀의 매출이 하락세를 겪고, 신작 게임이 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게임과몰입 문제로 중복규제가 시행된다.

김택진 대표는 넥슨과 손을 잡은 배경에 대해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해 양사가 손을 잡아야 했다고 전했다. 국내 게임업계가 위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많은 국내 게임사가 L자형 부진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엔씨소프트는 6월 중순 창사 이래 최대 조직개편을 시행했다 웹, 모바일, 음악, 신규 사업이 대거 중단됐다. 400명 이상의 인력이 회사를 떠났다.

전문가들은 최대주주 프리미엄이 고려되지 않은 거래액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평소 경영철학이 뚜렷한 김택진 대표로서 의외의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500억원을 투자한 엔씨소프트의 대작 게임 `블레이드&소울` 공개서비스를 앞두고 있었다.

신작 블레이드&소울은 시장에서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디아블로3를 제쳤다. 전작 아이온보다 높은 동시접속자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김택진 대표는 확보한 자금을 넥슨과 향후 더욱 큰 도전을 위한 협력 사업에 쓰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사가 피를 섞었다. 엔씨소프트는 대작 게임 위주 개발력이 우수하다. 넥슨은 해외 사업 노하우가 탄탄하다. 서로 다른 양사의 경쟁력은 단순한 지분 투자 이외에 글로벌 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게임업계의 경쟁구도가 무너지고 넥슨에 균형 추가 쏠렸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 `바람의 나라`가 문을 열었던 국내 온라인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표] 엔씨소프트 주요 연혁

1997 엔씨소프트 창립

1998 리니지 상용화 서비스

2000 코스닥 등록

2003 유가증권 시장 이전 상장

2003 리니지2 상용화 서비스

2005 길드워 상용화 서비스

2008 아이온 상용화 서비스

2012 프로야구매니저 개발사 엔트리브 인수

[표] 넥슨 주요 연혁

1994 넥슨 창립

1996 바람의나라 정식 서비스 실시

2002 넥슨 일본법인 설립

2004 넥슨 카트라이더 상용화

2003 메이플스토리 정식서비스 실시

2004 메이플스토리 개발사 위젯 인수

2005 넥슨모바일(옛 엔텔리젼트) 인수

2008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 인수

2009 텐비 개발사 시메트릭스페이스 인수

2010 아틀란티카 개발사 엔도어즈 인수, 서든어택 개발사 게임하이인수

2011 프리스타일 개발사 JCE 인수

2011 넥슨 일본법인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표] 넥슨 주요 인수 합병 사례

2008년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 인수

총인수금액 3852억원

2010년 아틀란티카 개발사 엔도어즈 인수

총인수금액 1200억원

서든어택 개발사 게임하이 인수

총인수금액 2000억원(추정)

2011년 프리스타일 개발사 JCE 인수

총인수금액 896억원

2012년 엔씨소프트 지분 인수

총인수금액 8045억원

[표] 엔씨소프트 연간 매출 추이

2007년 매출 3297억원

2008년 매출 3468억원

2009년 매출 6347억원

2010년 매출 6497억원

2011년 매출 6089억원

[표] 넥슨 연간 매출 추이

2007년 매출 3020억원

2008년 매출 4509억원

2009년 매출 7037억원

2010년 매출 9343억원

2011년 매출 1조2117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