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 오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국회 본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 저지에도 불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 한미 FTA 이행에 필요한 14개 부수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협상 타결 이후 4년 5개월을 끌어온 한미 FTA 비준안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한미 FTA, 공식 발효=한미 FTA는 이듬해인 2012년 3월 15일 0시를 기해 공식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이에 따라 2011년 7월 유럽연합(EU)에 이어 거대 경제권 두 곳과 모두 FTA를 발효한 첫 아시아 국가가 됐다.
한미 FTA 발효로 우리나라는 수입물품 9061개 관세를 즉시 철폐했다. 미국은 8628개 품목 관세를 없앴다.
미국 관세율 인하·철폐로 우리 기업의 자동차 부품, 섬유, 전기·기계 등의 가격 경쟁력 개선이 기대됐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의 미국 관세는 0~17% 수준으로 제조업 평균관세보다 높은 수준이므로 관세철폐는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에 장기적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방송 등 서비스업은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산 영화 쿼터가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 쿼터가 35%에서 30%로 각각 5%p씩 축소, 국내 영화·애니메이션 업체의 매출감소가 우려된다.
협정 발효일 3년 후부터 방송 채널사용사업자(PP) 지분 100%까지 외국인 간접투자를 허용하며, 지식재산권 보호기간이 현행 50년에서 70년으로 20년 연장, 할리우드 기업의 영향력 확대가 예상된다.
통신시장도 외국인 진입이 확대된다. 통신 분야는 협정 발효 2년 내에 기간통신사업자(KT와 SK텔레콤 제외) 지분의 100%까지 외국인 간접투자를 허용한다. 미국 통신사업자와 투자자의 한국 통신시장 진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미 FTA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독소조항이라며 FTA 폐기를 주장해왔다. 거대 경제권과 FTA가 기업 또는 계층 간 양극화 확대, 선진국 경제와 동조화, 경쟁력 취약한 산업기반 붕괴 등도 여전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중소기업, FTA 효과 제대로 받으려면 보완 필수=발효 5개월이 지나면서 점차 가시적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준경을 미국에 수출하면서 14.9%라는 높은 관세로 중국 제품과 가격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던 수옵틱스는 한미 FTA 발효로 관세가 철폐된 후 수출 경쟁력이 향상됐다. FTA 발효 전 대비 수출이 20%가량 증가했다. 수옵틱스는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인력을 두 배 이상 증원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대미 중기 수출은 15%가량 늘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이긴 하나,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강정희 에이펙스 변호사는 “한미 FTA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 정부가 지정 독점과 공기업을 통해 추진해온 중소기업 보호 육성 정책이 상당히 제한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향후 기술 및 품질, 서비스 경쟁에서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시장 압력에 의한 구조 조정과 도태가 늘어날 수 있어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IT, FTA 시대에도 영향력 발휘=한미 FTA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하지만 이 역시 `IT`의 지원 사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장 문제시되는 부분은 `원산지 확인`이다.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원산지가 한국임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중소 협력사 대부분이 정보화 체계를 갖추지 못해 `원산지 확인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제약 등 FTA 혜택이 기대되는 전 산업에서 나타날 수 있다.
확인서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거나 서류 내용이 허위로 판명나면 해당 기업은 관세 혜택분 환불은 물론이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만도, 한라공조 등 관련 대기업은 해당 IT컨설팅 및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한국타이어도 삼일회계법인과 컨설팅에 착수한 상태다.
한미 FTA 공식 발효를 계기로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에 따른 후폭풍 역시 우려되는 사안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가 국방부를 상대로 2100억원의 불법 SW 사용 피해액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협상이 결렬되면 MS 측이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도 한미 FTA 규정을 들어 한국 기업에 상계관세 등의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창우 한국 FTA산업협회장은 “이번 MS-국방부 간 불법SW 피해액 요구 사건은 비단 SW분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한미 FTA는 흡사 양날의 칼과 같아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준비하는지에 따라 득실이 극명하게 나뉜다”고 강조했다.
◆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
신묘오적, 매국노, FTA 검투사. 김종훈 현 새누리당 의원 앞에 붙는 대표 수식어다. 그만큼 인간 김종훈을 논할 때 FTA, 특히 한미 FTA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 국회의원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결국 FTA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여당과 본인의 소신에서 출발했다.
“통상은 우리 경제에 중요한 성장동력으로서 키워나갈 필요가 있고 복지문제 때문에 성장전략을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은 답이 아닙니다.”
FTA에 관한 한 자신은 `확신범`이라고 강조하는 김 의원은 FTA 협상 당시 통상관료로서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을 진두지휘했다.
김 의원은 “우리 경제의 비중이 큰 통상부문은 절대적인 성장동력”이라며 “이에 따른 부가가치가 특정 경제주체에 쏠리는 것을 막아야만 성숙사회이자 사회통합을 이뤄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07년 8월부터 4년여간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한미 FTA와 한·EU FTA, 한·페루 FTA 등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주요 FTA 협정 체결과 비준 절차를 책임졌다.
그는 FTA를 추진하면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고 FTA 무용론 주장에 온몸으로 맞서 저항하기도 했다. 김 의원을 FTA 검투사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매국노라는 반대파의 비난까지 들었던 그다. 이처럼 평가가 극과 극인 인물도 드물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그 말(매국노)을 처음 들은 건 공직에 있을 때였다. 언행이 조심스러워야할 자리여서 맞대응을 않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잣대로 본다면 대한민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출전선에 기여했던 분들, 산업역군 전부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 반대에 앞장섰던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나 미국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를 주도한 박원석 통합진보당 당선자 등이 입성해 있는 19대 국회 역시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미 발효된 FTA의 효과를 어떻게 최대화할 것인지를 협의한다면 좋은 일이고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지만, 총선 때처럼 폐기를 주장한다면 도저히 수용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전자·IT 업종은 이번 한미 FTA 발효로 당장 큰 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김 의원의 전망이다.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에는 한미 FTA 발효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휴대폰은 이미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는데다 대부분 북미 현지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협정이 본격 가동되면 교역량이 더욱 증가할 수 있어 수출 기반을 다지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를 처음 맡았다. 이후 2007년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 올라 한미 FTA를 마무리했다. 1974년 외무고시(8회)에 합격해 외무관료의 길을 걸어온 그는 지난 총선에 서울 강남을에 출마,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국회에 입성, 새누리당 19대 전반기 국회 상임위 위원 배정에서 `정무위원회`로 배치받았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