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은 IBM PC 호환기종이 국내에 본격 도입되면서 개인용컴퓨터(PC) 시대의 포문을 연 시기다. IBM PC 호환기종이란 현재도 흔히 쓰이는 PC, 즉 대부분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PC를 일컫는 개념이다. 정확하게는 PC/AT 아키텍처에 기반을 둔 컴퓨터다. 인텔 x86 기술 기반의 CPU 및 다양한 기능 확장 장치,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체계(OS)를 기본 탑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당시 IBM에서 직접 제조하는 PC에 비해 다른 제조사의 IBM 호환 PC가 훨씬 더 많이 팔리기도 했다. 제조사들이 단순히 IBM PC를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IBM PC를 능가하는 성능과 기능을 가진 IBM 호환 PC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PC 대중화 시대를 연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PC를 생산했던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TG삼보컴퓨터)도 1984년 `트라이젬88`을 선보이며 국내 PC 대중화를 앞당겼다.
당시엔 IBM PC와 IBM PC 호환 기종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국산 PC의 선전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의 PC 형태는 아니지만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은 국내 최초 마이크로컴퓨터 `SE-8001`을 1981년 1월 개발했다. 이 제품은 전용 모니터도 없는 8비트 컴퓨터였다. 이 제품은 출시하자마자 그해 캐나다에 수출하는 등 쾌거를 올렸다. 워드프로세스 기능과 함께 통계작업과 작성된 자료를 바탕으로 그래프 작업 등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은 이에 탄력받아 계속적으로 PC를 개발·생산, 국내 대표 컴퓨터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TG20` `트라이젬88`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국산 PC 대중화 시대를 이끌었다.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은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7명이 1000만원의 자금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작은 벤처기업에서 컴퓨터를 만들어 수출까지 이뤄내자 앞다퉈 창업 붐이 일어났다. 이후 한국마이컴·희망전자·석영전자·골든벨 등 신생 PC조립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 또한 PC 대중화 시대를 가속화시켰다.
우리나라는 뒤늦은 산업화로 선진국 대열에 오르기 쉽지 않았다. 자원의 상대적 빈곤과 함께 뒤늦은 산업화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로 정보화 산업이 대두됐다. 이에 정부에서 `정보산업 육성방안`의 일환으로 교육용 PC 보급에 나서면서 PC 5000대를 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PC 시장 진출을 앞당겼다.
동양나이론·대우전자 등이 뒤늦게 PC 생산에 합류했다.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은 카세트데크가 내장돼 있어 별도의 기억장치가 필요 없는 `SPC-1000`을 개발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금성(현 LG전자)은 `마이티`라는 8비트 컴퓨터를 개발해 미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PC 생산에 나섰던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이 단연 주목받았다. `컴퓨터월드`라는 미국 최대 세일즈네트워크에서 자체 브랜드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도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이 다른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으로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일부 물량을 공급하다 IBM과 컴퓨터월드 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면서 OEM 비즈니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PC 대중화는 1984년 시작됐지만 PC의 탄생은 훨씬 이전부터다. 사실상 최초의 PC는 IBM 제품 `PC 5150`이다. 이 제품은 1981년 8월 처음 선보였으며, 기존처럼 대형 기계라 아니라 지금처럼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PC 대중화의 기반을 만들었던 셈이다. 하지만 가격은 개인용으로 살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당시 소형 자동차 한 대 가격인 1565달러에 출시됐다.
1984년은 IBM의 PC 호환기종들이 국내에 도입되는 것과 동시에 국내 PC 제조업체들이 개인용 PC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PC 대중화 시대의 불을 댕겼다. 이처럼 본격적인 PC 대중화 시대를 열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빠르게 디지털 사회로 진입했다. 수작업으로 하던 문서 작업들을 PC로 하나씩 옮겨 갔다. 지금은 PC가 없으면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PC를 통해 지난 30년간 우리의 업무 효율성은 300만배 이상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 이용태 TG삼보컴퓨터 명예회장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보다 더 일찍 우리나라에서 개인용 컴퓨터(PC)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이용태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TG삼보컴퓨터) 회장이다.
그는 미국 유타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과정을 취득하면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됐고, 이후 1970년 첫 직장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산실에서 근무했다. 1970년은 인텔이 설립 이후 세계 최초로 DRAM을 출시한 해다. 이 회장은 당시 이 제품으로 국내에서 컴퓨터를 만들면 국내 정보화 산업을 선진국 대열로 이끌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당시엔 IBM이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컴퓨팅 업계 거물급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고, 디지털이퀴프먼트코퍼레이션(DEC)이 미니컴퓨터 `PDP`를 만들던 때다.
이 회장은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한국이 먼저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나선다면 시장을 이끌 수 있겠다 싶어 줄기차게 정부와 기업을 설득했다”면서 “엔지니어 100명을 3년간 지원해 주면 세계 최고의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지만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한다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 회장의 주장을 정부에서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흑백TV를 만들어 조립하던 시기였다. 컬러TV는 1977년 생산됐다.
이 회장은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0년 뒤인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직접 PC 제조업체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그의 주장이 현실적인 벽을 뛰어넘지 못하자 직접 산업 전선에 뛰어든 셈이다.
7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이 작은 회사는 미국, 중국, 일본, 멕시코 등 글로벌 현지 생산공장을 설립해 한때 세계 최고 PC 생산시설을 갖춘 글로벌 컴퓨터 제조업체로 급성장했다.
특히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은 `500달러` PC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판매한 기업이다. 이 회장은 아직도 `500달러` PC 출시 발표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스페인 국제회의에서 빌 게이츠에 앞서 연설을 하게 된 그는 컬러 모니터가 달린 500달러 PC를 출시하겠다고 선포하자마자 전 세계 기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제품 출시 이후 실제로 미국 개인 사용자 시장에서 6개월 만에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트라이젬 88`을 출시해 미 실리콘밸리에 광고를 냈을 때의 짜릿한 기분도 그는 잊지 못했다.
그는 두루넷 설립으로 우리나라를 브로드밴드(광대역) 인터넷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스닥에 상장했던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모회사였던 삼보컴퓨터에까지 회복 불가능한 결정적인 타격을 주면서 큰 아픔을 겪게 됐다.
이 회장은 아쉬움이 많다. 그는 “정보화 전도사 노릇을 하지 말고 컴퓨터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삼보가 오늘의 `애플`처럼 글로벌 기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우리나라 정보화 산업에 더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보화 산업이 성장하는 데는 정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보전자엔지니어링과 같은 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쿄대 졸업생이 소니에 들어가면 평생 직장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하고 삼성에 취직하면 언제 자기 회사를 차릴지부터 생각할 정도로 근성 자체가 진취적”이라며 “모험심, 독립심이 강한 나라기 때문에 환경만 제대로 갖춰지면 굉장히 잘될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