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1980년대 성장 위주의 정보화 환경 속에서 등장한 첫 규제 조치다. 현재는 일반화된 SW 등 컴퓨터 프로그램의 저작권 개념 정립과 함께 무분별한 불법 복제 및 사용 제한으로 진정한 정보통신 강국으로 나아가려는 첫발이었다.
◇선진 IT강국을 향한 첫 규제 도입=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1980년대 우리나라 정보화 도약기에 놓여있던 1986년에 법제화됐다. 애플의 8비트 컴퓨터 등장에 이어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국내 기업의 개인용 컴퓨터(PC) 출시가 잇따르던 시기였다. 이제 막 국가기간전산망 구축 등 정보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던 시기였기에 국내 컴퓨터프로그램 산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기존 저작권법이 있었지만 컴퓨터가 생소한 상황에서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해외 SW업체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 결국에는 국내 SW·프로그램 업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했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의 지식소유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미공업소유권회담(1983년) 등 각종 회의에서 줄기차게 컴퓨터 프로그램의 권리 보호를 요구했다. 무단 복제사용 등 해적 행위를 하는 국가에는 1984년의 미국 통상법 제301조를 근거로 수입규제·관세부과 등 강력한 압력을 가해왔다.
1985년 12월 한미통상협상실무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측 안을 대폭 수용해 1986년 7월 제301조 합의문안을 작성했고, 그 속에는 컴퓨터프로그램 보호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러한 배경과 과정 속에서 1986년 12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제정됐고, 1987년 7월 시행에 들어갔다.
저작권법의 일부로서 컴퓨터프로그램을 보호하던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별도로 입법화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저작권 보호 대세 및 미국 요청에 따르면서 컴퓨터프로그램의 기술적 성격과 장래의 법 발전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기업 및 산업을 일정 정도 보호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기존 저작권법과는 다른 별도 입법화로 보호할 컴퓨터프로그램 종류 및 처벌 수위 등을 규정함으로써 불법 프로그램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국내 기업을 어느 정도 보호하고, 이로써 국내 SW프로그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틈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법안 발의는 정부입법 형식으로, 소관 부처는 과학기술처, 국회 상임위는 경제과학위원회였다.
목적은 컴퓨터프로그램을 저작물로 인정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한 이용을 도모해 관련 산업과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2009년 저작권법으로 통합될 때까지 존속하게 된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SW 개발자 의욕을 고취하고 공정한 이용을 유도해 일정 정도 국내 SW산업 발전의 선순환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해외 SW를 상호주의 원칙에 근거해 보호하면서 통상 마찰을 피하는 방어막 역할도 했다.
◇법 단속강화 불법 SW 꾸준히 감소=법제화 초기 계도 수준의 단속은 1990년대부터 강력한 법 집행으로 바뀌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1998년 개정과 함께 프로그램 심의조정위원회 설치, 2000년 전면 개정, 2001년, 2002년, 2006년 부분 개정 등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크게 강화됐다. 제정 당시 예측하기 어려웠던 디지털·인터넷 시대로 빠르게 변했고, 세계적으로도 이에 대응해 지식재산법 규정, 특히 저작권 규정이 크게 강화되는 추세가 반영됐다. 이에 새로이 전송권 신설과 기술조치, 권리관리정보의 보호규정 등이 포함된다.
1993년의 한 통계에 따르면 그해 지식재산권 침해로 입건된 사람은 1만1679명이고, 이 중 구속된 사람은 842명에 달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 사범은 전년 대비 600% 이상 늘어난 629명이었고, 이 중 66명이 구속됐다. 구속자 수만 전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1990년대부터 위반 사범과 구속자 수가 급증한 것은 컴퓨터 대중화로 PC 보급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강력한 단속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통상압력도 계속됐다.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버젓이 이뤄졌던 프로그램 불법 복제 및 해적판 판매는 이러한 노력 속에서 2000년대 들면서 표면상으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00년에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PC 대중화와 인터넷 시대 개막에 맞춰 전면 개정된다. 기존 경찰력의 한계를 넘어 상시단속반에 사법 경찰권을 부여하는 극단적인 제도도 이때 생겨났다. 단속 처벌과 동시에 법적 분쟁과 조정 사례도 대폭 늘어나게 된다.
반면에 강화된 법과 단속에 따라 우리나라 불법 복제 사용은 꾸준히 감소했다.
미국에서 나온 해외 불법복제 프로그램 사용률 통계에서 한때 70%에 이르렀던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계속 낮아져 2010년께에는 4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불법 복제프로그램 우선감시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한 사례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도입과 강력한 집행이 거둔 효과로 얘기되고 있다.
◇시대 변화, 제트스트리밍 사건=200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제트스트리밍 분쟁은 컴퓨터프로그램의 공정 이용의 범위와 한계, 이용자 권리보호, IT산업 발전이라는 다양한 범위에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스트리밍은 말 그대로 콘텐츠를 서버에 두고 내려받아 사용하는 방식이다. 스트리밍 솔루션을 깔면 일반 패키지 SW의 원본을 서버에 저장해 놓고 연결된 클라이언트 PC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네트워크만 연결돼 있으며 일일이 개별 PC에 필요한 SW를 깔지 않아도 된다.
제트스트리밍 분쟁은 한글과컴퓨터 등 주요 SW업체들이 지방 소재 한 전문대학을 고소하면서 시작했다. 2003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한컴 등 주요 SW 저작권자들은 한국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를 통해 이 제품의 사용자들에게 스트리밍방식의 SW 사용이 저작권을 위반한 것이라는 취지의 경고서한을 보냈고, 2004년 4월 이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는 대학을 고소했다. SW업체들은 자신들의 허락 없이 클라이언트용 프로그램을 서버에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으로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사용한 행위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는 `스트리밍 방식 자체가 불법이 아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SW업계에는 `스트리밍 판결`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 사건은 인터넷 시대라는 환경 변화에 맞춰 프로그램보호법의 적용에 사용자 중심의 저작권 개념을 반영한 사례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컴퓨터프로그램의 이용자 권리와 공익을 고려한 `프로그램 공정이용`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
◇저작권법에 프로그램보호법 통합=2009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저작권법 개정을 거쳐 저작권법에 통합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별도의 프로그램보호법 체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많아졌고, 해외에서도 프로그램보호법을 별도로 두고 운영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MB정부 들어 정통부가 해체되면서 프로그램보호법을 떠안게 된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존 저작권법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하나의 배경이다.
불법복제물 전송에 대한 온라인 사업자 및 이용자 규제 강화,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 보호업무 통합 등을 골자로 한 개정 저작권법 역시 저작권 위반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불법복제품의 제작·유포자와 사용자를 직접 침해와 침해 간주로 구분한 것도 특징이다. 침해 간주자는 불법 SW를 직접 설치하거나 복제하지는 않고 단순히 사용만 한 사람으로, 개정안에 따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을 면할 수 있게 했다.
개정 저작권법에는 온라인상 불법복제 방지대책 강화안이 신설됐고, 문화부 장관은 불법복제물을 자주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에 최장 6개월까지 서비스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불법저작물을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이른바 헤비 업로더의 개인 계정도 정지할 수 있게 했다.
관련 실무 기구인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 또한 저작권위원회로 통합돼 한국저작권위원회로 새로이 출범했다.
[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개정에서 통합까지
임동식 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