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30] 한글코드 2바이트 조합형 추가 <1992년 10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은 1443년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의 말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로 한때 언문·언서 등으로 낮춰 불리기도 했다. 문자체계의 특징은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는 음소문자면서 음절단위로 적는 음절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체계는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으나 오늘날에는 24자만 쓰인다. 간단한 조합만으로도 소리나는 모든 말들을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야말로 지극히 과학적인 문자임에 틀림없다.

[100대 사건_030] 한글코드 2바이트 조합형 추가 <1992년 10월>

한글코드 표준화 문제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 지속된 논란거리였다. 결국 1992년 2바이트 조합형 코드가 복수 표준이 된다.
한글코드 표준화 문제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 지속된 논란거리였다. 결국 1992년 2바이트 조합형 코드가 복수 표준이 된다.

◇표준화 문제 논란 가속화=한글은 최근 들어 컴퓨터 등 IT와 접목되면서 편의성과 우수성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받았다.

논란도 있다. 한글코드의 표준화 문제다. 1967년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 지속된 논란거리였다. 표준이 없는 상태에서 각사가 임의의 코드로 한글을 처리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1974년 처음으로 한글 자모 51개 코드를 정한 한국공업규격 KSC5601-1974를 제정했다. 1977년에는 한자 7200자 코드를 정한 KSC 5714-1977를 마련했다. 자모에 의한 코드가 한계를 노출하자 1982년 완성형(KSC5619-1982)과 2바이트 조합형(KSC5601-1982) 코드가 새롭게 개발된다.

컴퓨터 회사들이 각각 완성형과 조합형으로 나눠 사용하면서 표준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 가운데 정부가 1987년 개발한 완성형 코드(KSC5601-1987)가 모든 행정업무에 쓰이게 됐다. 2년 후에는 이 코드와 연계한 보조코드까지 표준화하면서 사실상 표준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완성형 코드의 치명적인 약점인 한글의 조합원리를 무시했다는 점이 학계의 쟁점으로 제기되면서 조합형코드표준화 운동이 펼쳐졌다.

정부의 컴퓨터 한글·한자코드 표준화정책에 대해 학계, 출판계 등 각계에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1990년도 주요업무계획의 하나로 언어 표준화사업을 벌이고 있는 문화부가 컴퓨터 한글·한자코드 표준화문제에 관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국어학자, 컴퓨터학자, 출판인 등 각계 인사들은 현행 표준코드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한편 정부가 앞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표준코드 확장사업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기존 표준코드는 한국표준연구소에서 지난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시안을 개발해 1987년 한국공업표준심의회 심의를 거쳐 `정보교환용 부호에 관한 한글공업규격`으로 제정된 것이다. 이는 2바이트 완성형 한글·한자코드로 사용빈도가 높은 한글 2350자, 한자 4888자, 특수문자 987자 등 총 8255자로 구성돼 있다.

이 표준코드는 정부가 추진해온 행정전산망용 표준코드로 채택되는 한편 교육용 컴퓨터의 표준화 방안에도 포함됐다. 그러나 정부의 표준한글코드 확장계획에 학계, 출판계 등에서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처음 표준코드가 제정됐을 때 조합형이 아닌 완성형의 코드가 채택됐다는 점이다.

완성형 한글코드는 한글조직의 기본원리에 어긋나고 빠진 글자가 많아 국어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다. 또 음소분석이 불가능해 한글의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활용이 어려울 뿐 아니라 등록된 글자를 화면에 나타내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까지 있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한글 표준코드 변경 요청 쇄도=당시 전문가들은 코드표준화정책을 개선하려면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근본 문제란 표준코드가 채택하고 있는 완성형 코드를 말하는데 정부는 새로운 표준코드도 완성형으로 해 한글자모로 조합가능한 모든 한글(1만1172자)과 고어를 수용하고 한자 중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글자를 늘려 현행 한글·한자코드에 1만7000자를 추가할 계획이었다.

정부는 1987년 제정된 이래 비합리적 구성과 한글을 완벽히 나타낼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줄곧 비난을 받아온 부호체계 개선에 적극 나섰다.

한국전자출판연구회는 한글·한자코드 표준화정책에 관한 개선 건의문을 채택하고 “우리말과 우리글의 특성을 살린 코드 표준화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완성형으로 되어 있는 표준코드를 조합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어전산학회에서도 국어학회, 한글학회, 국어국문학회 등 어문계열 학회의 의견을 수렴, 정부의 표준코드정책 개선과 관련 건의안을 내놓았다. 한국어전산학회는 교육용 컴퓨터의 표준규격에서 KSC-5601 완성형 코드와 함께 잠정적으로 기존의 조합형을 함께 지원하도록 규격을 보완할 것을 요청했다. 또 현행 완성형 코드가 국제표준화 기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부득이 필요하다면 완성형 규격과는 별도로 학술, 출판, 교육용의 조합형 KS 규격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1992년 10월 조합형 한글코드가 표준 컴퓨터 한글코드로 공식 채택됐다. 이로써 지난 1987년 표준 컴퓨터 한글코드를 완성형으로 제정한 이래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돼왔던 컴퓨터 한글코드 문제가 일단락됐다.

컴퓨터 한글코드 문제는 한글 정보화·과학화 사업의 기초를 이루는 사안으로 문화부는 2년여에 걸친 연구와 여론 수렴 끝에 컴퓨터 한글코드 개선안을 공업진흥청에 제안하고 이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표준화 주무부서인 공진청도 문자코드연구분과위원회 등 10여 차례에 걸쳐 각급 위원회를 개최, 업계와 학계 등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지난 6일 최종 공청회를 거쳐 조합형을 KS규격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개인용 컴퓨터(KSC5601)에서 사용 코드체계를 완성형 또는 조합형으로 동등하게 규정하고 있다.

조합형 한글코드의 표준화는 컴퓨터에 의해 제약 받아오던 우리의 말과 글이 이제는 한글의 특성에 맞게 컴퓨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미국식이 아닌 우리식 컴퓨터 문화를 가꾸는 시발점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한국어 정보처리 등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한글 처리를 쉽게 함으로써 정보화시대에 한글문화를 꽃피울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유니코드 2.0으로 한글코드 논쟁 끝내=한글은 지난 20여년간 조합형, 완성형, 확장완성형, 유니코드를 비롯해 다양한 처리방식으로 경쟁해왔다. 조합형의 강점은 한글로 표현되는 모든 문자조합을 모두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요하면 고어도 가능하다. 반면에 완성형은 한글 한글자의 음소의 조합으로 보지 않고 통으로 하나의 글자를 인식한다. 하지만 초기의 완성형은 2350자만을 표현할 수 있어 문제가 됐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MS는 1995년 확장 완성형 코드를 선보였다. 기존 완성형 코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기존 완성형 코드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한글 8822자를 새로운 영역에 추가시킨 것이다. 이제는 확장 완성형이나 조합형 대신 유니코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유니코드는 전세계 문자코드의 표준화를 위해 업계가 함께 만든 것이다. 유니코드는 완성형 방식을 따르면서도 조합형의 장점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니코드 2.0을 표준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나긴 한글코드 논쟁을 종결했다.


◆인간의 언어가 서로 다른 까닭?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견고한 도시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이름을 떨치려 했다. 인간의 힘으로 하늘까지 닿는 탑으로 신들과 어깨를 견주겠다는 의도에서다.

이에 하느님은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더 이상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 작업 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결국 그 탑은 완성되지 못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흩어졌으며 이후 사용하는 말과 언어가 저마다 달라 소통에 애를 먹게 됐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대홍수 후 바빌로니아 땅에 세워졌다는 건축물이다. 바벨탑은 인간의 언어가 여러 가지인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소개되곤 한다.

[표] 한글코드 표준화 관련 주요일지


서인주기자 si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