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일어난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은 녹색연합에서 지난 1999년 `19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 중 1위로 선정했을 정도로 당시 큰 충격을 안겨줬다. 영남 지역을 넘어 전국을 식수 공포로 떨게 한 사상 최악의 환경오염 사건이다.
이 일로 당시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해 환경처(지금의 환경부) 장차관이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페놀유출 사건은 식수오염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낙동강의 수난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8년 김천 코오롱유화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페놀이 유출됐으며 이듬해에는 낙동강 본류 왜관철교 지점에서 기준치 이상의 일사다이옥산이 검출돼 정수장 가동이 정지되기도 했다.
◇어떻게 발생했나=발단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되는 파이프가 파열돼 페놀원액이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30톤의 페놀원액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페놀은 전자기판을 만드는 수지의 원료로 금속과 접촉하면 가연성인 수소가스를 생성하는 물질이다. 눈·코·목에 자극적이며 피부와 접촉하면 빠르게 흡수돼 침투성 독성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흡입하면 폐염증이나 폐부종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페놀에 오염된 물을 섭취하면 설사를 하거나 입에 통증·화상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놀원액은 14일 22시께부터 15일 6시까지 약 8시간 새어나왔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았지만 다사취수장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다사취수장을 오염시킨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가 밀양·함안·칠서 수원지 등에서도 잇따라 검출됐다. 부산·마산을 비롯한 영남 전 지역이 페놀 오염 공포에 시달렸다. 페놀 30톤 누출로 수돗물의 페놀 수치가 0.11ppm까지 올라간 지역도 있었다. 이는 당시 허용치인 0.005ppm의 22배, 세계보건기구의 허용치인 0.001ppm의 1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식수에 대한 공포로 약수터는 북새통을 이뤘으며, 생수는 품귀현상을 보였다.
평민당과 4개 민간 환경단체로 구성한 합동조사단은 3월 25일 두산전자를 방문해 페놀 원액 재고관리가 허술해 누출을 제때 알지 못했고 안전장치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16일 16시께 두산전자가 누출 사실을 발견하고도 21일까지 관계당국에 알리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음을 밝혀냈다.
◇뒤늦은 수습…사고 재발=사고 해결을 위해 정수장 수질시험이 강화됐으며 비상정수대책이 실시됐다. 냄새·맛·페놀검사를 20~30분 간격으로 실시했으며 페놀이 검출되면 염소처리를 중단하고 활성탄, 오존, 이산화염소 처리를 수행했다.
상류지역 수질조사반(4개 조 8명)을 파견해 11개 지점에서 매 시간 수질조사를 벌였다. 수자원공사에 유량조절 협조를 요청해 안동·남강·합천댐 방류량을 늘렸으며, 하구둑 수문개방도 확대했다.
정부 차원의 장단기 대책도 수립했다. 단기 대책으로 낙동강 연안 주요지점에 수질 자동측정망을 설치했으며 환경부(당시 환경처)는 광역행정협의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낙동강 수계 폐수 배출 감시경보 체계를 확립했으며, 낙동강 유역 공해배출업소 단속을 강화했다. 장기대책으로 6600억원을 투입해 광역상수도 사업을 조기 실시했다. 또 김해 등 4군 3읍을 취수장주변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사고로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총 13명이 구속됐다.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됐고, 국회에서는 진상 조사위원회를 열었다. 시민단체들은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했으며, 대기업의 부도덕에 대한 비난으로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두산전자는 조업정치 처분을 받았으며, 페놀원액 공급 라인 중 지하배관 폐쇄와 지상배관 수리·보강 등의 조치를 취했다. 전자업계 부품수급 차질을 이유로 정부가 조업재개 결정을 내려 4월 18일 설비 가동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4월 22일 페놀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가 파열돼 페놀원액 약 1.3톤이 다시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차 사고에 따라 조업정지 후 4월 12일 시운전을 거쳐 설비를 정상 가동하던 중 일어난 사건이다. 1톤은 수거됐지만 나머지는 낙동강으로 유입돼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대구시는 22일 14시 30분부터 다사·강정취수장과 성주·왜관 네 곳에서 시간마다 수질검사를 실시했다. 상수도 수원지에서 페놀이 검출되면 이산화염소와 분말활성탄으로 정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업재개 8일 만에 사건이 터지면서 두산그룹은 김준경 두산유리 사장 등을 현지에 급파해 수습에 나섰다. 본사에서는 박용곤 회장을 비롯해 그룹 사장단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으며 환경처 장차관이 인책 경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낙동강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8년 김천 코오롱유화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페놀이 유출돼 경북 구미·칠곡·김천 일대 주민 40만여명의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낙동강 본류 왜관철교 지점에서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를 넘는 일사 다이옥산이 검출돼 대구 두류정수장 가동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다.
◆페놀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수질문제와 먹는 물의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인식이 높아졌으며 사회적으로 환경보호 중요성이 강조됐다.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으로 음용수 검사항목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으며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특별조치법은 사람의 생명·신체·상수원·자연생태계 등에 유해한 환경오염이나 환경훼손을 초래하는 행위를 가중처벌하고, 관련 행정처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악취방지법 △토양환경보전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자연환경보전법 △자연공원법 △수질환경보전법 △수로업무법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하수도법에 반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행위 등 광범위하게 단속 대상을 설정했다.
1991년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지도 단속을 강화했지만 환경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형사처벌의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오염물질 불법배출로 얻은 이익을 국가에 환수하도록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1999년 전문을 개정했다. 이후 2004년 2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환경처는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 이후 1993년 `맑은 물 공급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는 환경처가 건설부 등 8개 관련부처와 합동으로 국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수립한 범부처 수질개선대책으로, 5년에 걸쳐 15조원을 투자해 31개 사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1994년 초 `낙동강 유기용제 오염사고`가 발생해 낙동강 하류지역 주민의 중상류지역을 향한 불신이 불거졌다.
문제 대처를 위해 정부는 물관리 업무를 환경처 중심으로 다룰 수 있도록 당시 건설부가 담당하던 상하수도업무와 보건사회부가 담당하던 음용수관리 업무를 환경처로 이관했다. 물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일원화한다는 취지에서 1994년 환경처는 환경부로 격상됐다.
수질보전은 1980~1990년대에 걸친 환경행정의 중심 과제다. 범정부 차원에서 물관리종합대책(1986년), 4대 강 물관리종합대책(1998~2005년) 등의 대책을 추진했으며 30조원 이상을 수질개선에 투자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수질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역관리 정책을 본격화했다. 수질·수량은 물론이고 자연환경과 국토이용을 물환경 보전에 통합하는 정책의 틀을 도입했다. 수생태계 환경기준과 통합생태독성 등 새로운 물관리 제도를 채택하기도 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