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26] `주전산기Ⅱ`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 <1991년 7월>

1984년 청와대에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논의가 시작됐다. 국가기간 5대 전산망은 망별로 추진 전담기관이 있었는데 가장 핵심인 행정전산망 사업은 옛 데이콤이 담당하게 됐다. 다른 전산망들은 외산 컴퓨터로 전산망을 구성해 업무 전산화만 하려 했는데, 데이콤은 행정전산화에 쓰일 컴퓨터까지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하려는 당찬 계획을 추진했다.

[100대 사건_026] `주전산기Ⅱ`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 <1991년 7월>

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이때가 옛 전자기술연구소(KIET)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으로 통합될 때였다. ETRI는 32비트 유닉스 컴퓨터를 개발, 상용화에 성공한 상태여서 데이콤 계획이 실현되면 ETRI 입장이 곤란했다. 그래서 행정전산망 주전산기 개발을 놓고 데이콤의 기술도입 방안과 ETRI의 독자개발 방안이 맞서게 됐다. 1986년 12월 옛 정보통신부는 ETRI 컴퓨터연구부가 행정전산망 주전산기를 개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담당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ETRI는 즉시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개발 계획을 작성, 1987년 2월에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당시 ETRI가 마련한 개발 계획에 따르면, 개발목표는 슈퍼미니급 컴퓨터로 다중처리기술과 유닉스 운용체제를 채택했다.

기술도입 기종(주전산기Ⅰ)은 1년 만인 1988년까지 생산해 행정전산망 사업에 쓰게 했다. 독자모델(주전산기Ⅱ) 개발은 4년 걸려 1991년까지 완성하는 것이다. 총개발비는 두 사업 합쳐 4년간 335억원이고 인력은 연인원 930명이었다. 기업체 파견 연구원 100명, ETRI 연구원 150명을 매년 투입시키는 대형 사업이었다. 당시 참여했던 기업체는 삼성전자, 금성사, 대우통신, 현대전자 등이었다. 이들은 연구비의 70%인 235억원을 냈다.

주전산기Ⅰ에 적용할 기술도입 기종 선정을 위해 200만달러 미만의 원천기술과 생산·판매권까지 넘겨줄 곳을 찾아야 했다. 데이콤은 톨러런트라는 회사가 제격이라고 판단, 이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기술도입 계약이 끝나자 톨러런트가 보낸 기술문서는 트럭 한 대 분량이 될 만큼 많았다.

주전산기 1차연도 사업이 종료될 무렵인 1988년 5월 기술도입 기종으로 국민연금 관리업무를 전산처리하는 중 운용체제 및 관련 소프트웨어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기술도입 기종 국산화 과정에서 예정에는 없었던 도입기종 안정화 문제가 시급하게 대두됐다. 더 큰 문제는 언론과 국회에서 기술도입 기종의 장애를 빌미로 행정전산망 사업을 정보산업계 5공화국 비리로 몰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도입 기종 안정화에 인력과 예산을 대거 투입했다. 당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5공 비리 여론을 막을 수 있었고 톨러런트가 망한 후에도 제품 생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1991년 11월 8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열린 주전산기Ⅱ 개발보고회. 왼쪽부터 경상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송언종 체신부 장관, 정원식 국무총리, 이대엽 국회교통체신위원장, 이해욱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신윤식 데이콤 사장.
1991년 11월 8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열린 주전산기Ⅱ 개발보고회. 왼쪽부터 경상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송언종 체신부 장관, 정원식 국무총리, 이대엽 국회교통체신위원장, 이해욱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신윤식 데이콤 사장.

1988년 10월 주전산기Ⅰ 발표회를 개최하고 12월에는 데이콤과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1차 수요분 29대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1991년 7월에는 주전산기Ⅰ 161대, PC 1만3000대, 통신기기 1만3000대를 설치해 행정전산망 1단계 사업을 완성했다. 1985년부터 2단계 행정전산망 사업이 끝난 1995년까지 10여년 동안 주전산기 283대, PC 2만7924대, 전문인력 2830명, 예산 7607억원이 들었다.

주전산기Ⅱ 사업은 1987년 6월 시작해 4년에 걸쳐 연인원 714명과 228억원을 투입해 1991년 7월 15일 완료됐다. ETRI 연구진에 의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해 기술도입 기종을 대체한 것이다. 주전산기Ⅱ는 20개의 CPU칩을 하나로 묶는 밀결합 구조로 80MIPS 정도의 성능을 보장했다. 당시 VAX-8800에 대항할 정도로 경쟁력 있는 강력한 중형급 컴퓨터였다.

주전산기Ⅱ 이름은 타이컴(TICOM)이라고 정했다. Tightly Coupled Multiprocess의 약자로 ETRI가 개발하고자 하는 컴퓨터 특성을 잘 나타냈다. 또 당시가 1988년 서울올림픽 대회 준비기간이라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상징하는 호돌이 컴퓨터(Tiger Computer)라는 의미도 있었다.

ETRI에서 개발하는 독자모델에 의구심이 많았다. 결국 미국 IDC에 기술성과 시장성을 검토하는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1991년 사양으로 경쟁력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와 기술적으로도 무난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대형사업인 TDX나 4M DRAM 사업은 정부가 연구비를 전액 부담해 연구소가 참여업체를 지원하면서 사업을 한 반면에 주전산기 사업은 기업체가 예산 70%를 부담했다. 그래서 컴퓨터연구조합을 형성한 기업체 간섭이 심해 연구책임자들이 어려워했다.

이후 참여업체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KAIST, 서울대 등이 유사사업을 진행했지만 모두 중단되고 타이컴만 개발돼 1000여대나 보급됐다. 이때 참여한 기업에서 파견됐던 연구원들이 컴퓨터 관련 핵심 회사들을 창업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주전산기Ⅰ과 주전산기Ⅱ로 전자정부가 완성됐다. 지금도 전자정부는 진화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제일가는 전자정부를 국산 PC와 국산 중형컴퓨터로 구축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 오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국가 대형 사업들은 늘 그렇지만 참 어렵다. 주전산기Ⅱ 국산 기술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됨에 따라 우리나라 정보화 발전에 큰 기폭제가 됐다.”

1991년 행정전산망 주전산기Ⅱ를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할 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컴퓨터연구부장으로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오길록 전 ETRI 원장의 말이다. 오 전 원장은 주전산기 Ⅱ 국산 기술 개발 사업은 초기에는 바윗돌을 깨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오 전 원장은 “당시에는 시간이 적게 들고 검증된 해외 기술 도입 기반으로 컴퓨터를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컸다”면서 “순수 국산기술로 독자개발을 하는 데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순수 국산기술 개발이 4년 걸리는 반면에 기술도입은 2년 만에 완료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제품개발이 빨리 완료되는 기술도입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오 전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에서 국내 정보산업과 연계해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서 “이 지시는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고 전했다. 순수 국산 기술 개발과 기술도입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 역시 사업을 힘들게 한 배경이었다. 오 전 원장은 “기술도입 기종과 독자모델 개발이라는 의미가 다른 두 사업을 같이 수행한다는 것은 어려웠다”면서 “기업은 기술도입 기종만 관심이 있고, ETRI 연구원들은 독자모델 개발만 관심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오 전 원장은 무엇보다 이러한 상반된 양측을 잘 조율해야 했다.

오 전 원장은 개발 계획서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작성했다. 계획서만 명확하고 구체적이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문제나 잡음이 발생해도 기준이 명확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서다. 오 전 원장은 “당시 작성된 계획서에는 24개 부처 차관급이 모두 서명을 했다”면서 “이후 이 계획서는 발생된 모든 문제의 해결 기준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 한 번 계획서 내용을 무시하고 프로젝트 진행을 변경한 사례가 있다. 바로 기종 도입으로 개발, 공급된 주전산기Ⅰ이 장애를 일으켰을 때다. 당시는 1988년도로 정권이 교체됐을 시기고 직전 5공화국의 비리가 세상에 공개될 때였다. 주전산기Ⅰ사업도 5공비리로 엮여 언론과 국회에서 심한 질타를 받았다. 오 전 원장은 “당시로서는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면서 “계획서를 수정, 상당수의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장애문제를 극복했다”고 회상했다. 이 결과 5공비리 연루 주장은 사라졌고, 다시 프로젝트가 안정화됐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성공한 행정전산망 주전산기Ⅱ 국산 기술 개발 사업은 훗날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강국이 된 기틀이 됐다.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 보급된 중대형 컴퓨터가 전국 곳곳 공공기관에 공급되면서 행정 전산화가 급속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오 전 원장은 “대형 사업은 어느 것이든 항상 여러 말들이 나온다”면서 “때로는 이를 감싸주면서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표] 행정전산망 주전산기Ⅱ 국산 기술 개발 일정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