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20] 전자올림픽이 된 88서울올림픽 <1988년 9월>

1981년 9월 30일 오후 2시 독일 바덴바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 투표가 시작됐다. 결과는 52 대 27.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세울~` 한마디에 TV를 지켜보던 온 국민이 환호했다.

1988년 9월 17일 열린 서울올림픽 잠실 주경기장.
1988년 9월 17일 열린 서울올림픽 잠실 주경기장.

발표 하루 전까지도 개최가 가장 유력했던 일본 나고야를 제친 쾌거였다. 제24회 올림픽은 호주 멜버른, 일본 나고야, 그리스 아테네를 비롯해 서울까지 총 4개 도시가 유치 경쟁을 벌였다. 오스트리아, 그리스가 먼저 포기했고 한국과 일본 대결로 압축된 상태였다.

일본이 일찍 승리를 예감한 것과 달리 절대적인 열세였던 한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한 명씩 공략해 나가는 등 막판까지 총력을 기울였다.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돌입한 `바덴바덴 10일 작전`은 우리 스포츠 외교의 가장 큰 성과로 기록된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현대사에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겪은 보잘것없는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던 한국은 그렇게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1988년 9월 17일부터 16일간 세계 160개국 9000여명이 참가해 지구촌 가장 큰 축제를 치렀다. 경기운영, 안전, 기술 면에서도 어느 대회보다 훌륭한 대회로 평가받았다. 특히 독자기술로 개발한 경기운영시스템, 종합정보망서비스, 대회 관련 지원시스템 등 전산화를 통해 체계인 정보제공과 생생한 경기장면을 세계 각국에 신속하고 완벽하게 생중계하며 한국의 통신·방송·전산 등 정보통신 기술을 세계적으로 과시했다. 결국 서울 올림픽은 `전자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다.

◇통신·전산 최대 난제를 만나다=역대 최고의 전자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준비과정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30여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었다. 특히 경기 진행과 TV중계에 필수인 전산망, 통신망 등의 준비는 더 크게 부족했다.

역대 올림픽도 통신이나 전산 분야 준비소홀로 진행이 엉망이 되거나 국제 TV회선 수요 판단 잘못으로 각국 보도진의 맹비난을 받은 사례가 많았다. 개발도상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올림픽인 만큼 첨단 기술이 필요한 통신에 대한 우려는 더 컸다. 정보통신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나라에 방송통신지원계획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올림픽 이전에 열리는 1984년 LA올림픽을 세계 최고 수준 통신과 컴퓨터 기술을 가진 최강대국 미국이 개최한다는 점도 우리에게 부담이었다. 당시 우리는 국산 전자식교환기(TDX) 국산화로 통신기술의 진일보를 일궈냈지만 데이터통신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체신부를 중심으로 한국통신, 한국전기통신연구소(ETRI), 데이콤 등 통신과 컴퓨터 관련 기관과 사업자를 총동원해 준비에 들어갔다.

이전 개최국 통신지원계획과 정보 입수부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회 통신·전산운영 기본계획 수립과 추진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LA올림픽 조사단 파견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었다.

당시 체신부는 1984년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오명 차관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조사단을 LA에 파견했다. LA올림픽의 통신과 컴퓨터 시설을 면밀히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상복 한국통신 부장, 양승택 ETRI 선임연구부장, 김대규 데이콤 기획관리실장과 서영길 체신부 사무관 등이 참여했다. 이들 조사단이 펴낸 보고서 `LA 올림픽과 통신`은 서울 올림픽의 통신·전산 준비에 크게 활용됐다.

LA올림픽 기간에 파견된 대규모 조사단에도 50여명 규모의 통신·방송·전산 분야 대책반이 포함됐다. 석호익 체신부 사무관을 반장으로 통신공사·KBS·데이콤·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의 전문가로 구성했다.

경기장 확보대책과 경기 운용대책부터 호텔 등 숙박시설, 경호, 식품 위생, 관광 등 분야별로 구성된 1000여명의 대책반에서 통신·방송·전산은 처음에는 미미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조사단 회의를 거듭할수록 역할이 강조됐다.

TV중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전자분야는 올림픽 성공 개최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됐다. IOC 수입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TV 중계권료 때문이었다. 박세직 위원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관계자들도 현지에서 통신·방송·전산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후 88 서울올림픽은 물론이고 86 아시아경기대회 때부터 새로운 통신기술을 개발·실용화하기 위한 계획 수립을 목적으로 방송·통신·전산을 담당할 부단장급 조직이 신설됐다.

◇민관 총력전에 나서다=체신부는 제24회 서울올림픽의 효율적인 통신지원을 위해 1986년 2월 체신부 장관을 지원 위원장으로, 체신부 차관을 전산운영협의회 의장으로 올림픽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아울러 산하에 지원 실무위원회(위원장 체신부 기획관리실장)를 두고 그 산하조직으로 86·88대회 통신지원상황실을 설치했다. 이들은 체육부·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등 대외기관과의 업무 협조 및 통신·전산업무 전반에 걸친 지원업무를 수행했다.

한국통신은 아시안게임 및 서울올림픽 통신지원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82년 5월 올림픽통신실무반을 편성하고 반장 밑에 종합계획담당·선수촌 및 경기장 담당·보도통신담당 등을 두고 대회를 준비했다. 1984년 11월에는 기존 대회준비조직을 올림픽통신지원본부로 개편해 조직을 보강했다. 지원본부는 올림픽 통신지원계획 종합 관리, 통신시설 설비 및 건설계획 종합 조정, 통신수요 종합 관리, 서비스계획·전화번호부 발행·임시취급소 및 안내센터 설치에 관한 사항 등을 담당했다.

대회 전산시스템은 경기운영시스템(GIONS), 종합정보망서비스(WINS), 대회 관련 지원시스템(SUPPORT)으로 구분됐다. GIONS는 한국과학기술원과 시스템공학센터, WINS는 한국데이타통신, SUPPORT는 쌍용컴퓨터와 한국전산이 각각 담당했다. 전체적인 시스템 개발 및 운용은 한국과학기술원이 담당했다. 체신부는 통신·전산실무대책소위원회를 통해 대회 전산운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정부의 지원 역할을 담당했다.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열린 주경기장에 마련된 기자들 업무공간인 프레스석.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열린 주경기장에 마련된 기자들 업무공간인 프레스석.

◇전자올림픽 `퍼펙트 골드`를 쏘다=올림픽이 요구하는 통신과 전산기능은 명확했다. 대회 기간 국제통신망의 중심점으로 짧은 기간에 생산되는 방대한 정보를 원활히 처리하는 것이다. 1984년 LA 올림픽은 첨단과학 올림픽이란 평가를 받았다. 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시설과 운영이 비약적인 경기기록 수립에 이바지했다. 서울올림픽도 이에 못지않은 평가를 받았다.

완벽한 통신 운용으로 서울올림픽은 세계의 축제가 됐다. 대회를 전후한 1개월여 짧은 기간 동안 폭주하는 올림픽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진행과 대회운영을 위해 2만여 회선의 통신회선이 공급돼 모든 경기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올림픽 진행상황과 경기 결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전 세계에 바로 전달하기 위해 텔레비전·라디오·신문과 잡지의 기사송고에 필요한 방송보도용으로 1만4000여 회선을 공급했다. 아울러 경기에 참가한 선수와 임원·관람객들이 불편 없이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4000여 회선의 공중용 통신을 운용했다.

방송중계 시설도 대회 사상 최대였다. 모든 경기 내용을 세계 각국에 생생하게 중계할 수 있도록 2673회선(TV 208회선·음성방송 2465회선)을 공급했다. 직접 경기장에 가지 않고 경기장의 경기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는 CATV모니터를 IOC호텔·올림픽회관·경기장·행사장·중계석 등에 모두 2650대를 설치했고, 30개 경기장에 1175조의 방송중계석을 설치해 방송중계 편의를 도모했다.

대회 통신 운용 중 가장 중요한 국제 TV회선은 대회 사상 최대 규모인 27회선을 확보했다. 방송중계 시간은 9200시간, LA 올림픽의 3배로 사상 최장이었다. 세계 50억 인구가 서울올림픽 실황을 안방에서 생생하게 시청할 수 있었다.

올림픽은 우리의 통신기술이 세계 선진국 수준임을 입증했다.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인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는 선진 통신사업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음 올림픽대회 개최국인 스페인·프랑스·중국 등으로부터 통신운용 기술협력을 요청받기도 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