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76]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 인수 <2007년 12월>

2007년 8월, 하나로텔레콤은 매각 추진을 공식화했다. 당시 실적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하나로텔레콤 관계자는 “매각 입찰에 10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절반을 걸러내 5개사 실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나로텔레콤이 SK그룹에 인수된 후 사명을 SK브로드밴드로 바꾸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2008년 9월 22일 조신 SK브로드밴드 사장이 'CI 선포식'에서 새 사기를 흔들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이 SK그룹에 인수된 후 사명을 SK브로드밴드로 바꾸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2008년 9월 22일 조신 SK브로드밴드 사장이 'CI 선포식'에서 새 사기를 흔들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1997년 9월 설립됐다. ADSL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설비투자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해 재정난을 겪다가 2003년 10월 외국계 사모펀드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에 대주주 지분이 매각됐었다.

2007년 당시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박병무 뉴브리지캐피털한국 대표. 하나로텔레콤 세 번째 사장이다. 해외 자본을 등에 업고 2006년 취임한 박 사장은 4부문 3본부 12실 8지사 82팀이던 하나로텔레콤 조직을 2총괄 8본부 15실 8지사 85팀으로 재편했다. 하나TV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융합서비스에도 열의를 보였다. 2007년 매출 1조8683억원과 영업이익 809억원을 내며 체질을 개선했다.

같은 해 12월 3일.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 대주주인 AIG-뉴브리지캐피털 지분 9140만6249주(38.89%)를 한 주당 1만1900원인 1조877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건 11월 13일, 입찰 마감일 오후였다. 그만큼 극비리에 이뤄졌다. 경쟁사가 인수 의도를 가지지 않고 입찰에 참가해 하나로텔레콤의 `몸값`을 높이는 일종의 `방해공작`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단독입찰에 성공한 SK텔레콤은 이튿날인 11월 14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같은 달 30일 열린 이사회에선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관련된 사항을 김신배 당시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에 위임했다. 12월 3일, SK텔레콤은 타 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결정을 공시했다. 4.7%던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지분율은 43.59%가 됐다.

SK텔레콤은 12월 17일 정보통신부에 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기간통신사업자 주식을 15% 이상 취득하거나 최대주주가 되려면 정보통신부 장관 허가를 받도록 돼 있었다.

정통부는 2008년 2월 20일 정보통신정책위원회(위원장 오연천)를 열어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조건부로 허가했다. 통신시장 공정경쟁, 이용자 이익보호, 네트워크 고도화 등이 허가 조건이었다. 이기주 당시 정통부 통신전파방송정책본부장(현 김앤장 고문)은 “국내 유무선 통신시장이 KT 진영과 SK텔레콤 진영 간 대결구도로 집중될 수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인가조건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통부가 `조건부 인가`를 밝힐 때까지 과정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KT와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등 경쟁사 의견을 받아들였다. 특히 SK텔레콤이 가진 800㎒ 주파수 대역을 로밍으로 개방하라는 LG텔레콤의 요구를 조건을 적극 반영했다.

하지만 정통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정위의 주파수에 관련된 권고 및 시정조치를 이번 인가 건과 연관짓지 않음으로써 주파수가 정통부 고유 권한이자 공정위 결정이 월권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공정위와 정통부의 힘 겨루기에서 정통부가 승리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정통부가 유효경쟁 정책 대신 시장경쟁 정책기조를 재차 확인하는 동시에 유무선 결합 시장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도 풀이됐다.

정통부가 제시한 내용 중 공정위가 제출한 인수 조건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조치라면 재판매 상품 출시 권한을 타사에 먼저 제공한다는 정도다. 또 무선인터넷 시장의 공정 경쟁을 위한 이행조건이 첨가됐다.

이 밖에 오는 2012년까지 전국 농어촌 지역 광대역통신망(BcN) 구축 위한 계획을 정통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는 그간 KT에만 집중돼온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SK텔레콤에도 확대한다는 의미다. 이번 하나로 인수로 인한 시장경쟁제한성 문제나 지배력 전이 문제를 직접 규제하지 않은 대신, 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한 셈이다.

하나로텔레콤이 SK그룹에 인수된 후 사명을 SK브로드밴드로 바꾸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2008년 9월 22일 조신 SK브로드밴드 사장이 'CI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이 SK그룹에 인수된 후 사명을 SK브로드밴드로 바꾸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2008년 9월 22일 조신 SK브로드밴드 사장이 'CI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08년 3월 31일, 하나로텔레콤 4대 사장에 조신 SK텔레콤 전무(현 지경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분과 투자관리자)가 취임했다. 그는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에 착수했다. 우선 사명을 지금의 SK브로드밴드로 바꿨다. 2009년 12월에는 조신 사장이 물러나고 박인식 SK텔링크 사장이 새 사장으로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는 무선분야 1위 통신사업자가 유선 시장에 진입하며 본격적인 통신시장 `3사(SK·KT·LG)` 시대를 개막했다는 의미가 있다. 또 유·무선 결합상품 시장의 뜨거운 경쟁을 알린 신호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통신 복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표] SK텔레콤-하나로텔레콤 인수 일지

2007년 11월 13일

- SK텔레콤, 인수의향서 제출

2007년 11월 14일

- SK텔레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 15일부터 약 3주간 하나로텔레콤 자산 실사

2007년 11월 30일

- SK텔레콤, 이사회 개최

- 대표이사에 하나로 인수 관련 의사결정 위임

2007년 12월 1일

- 조건부 계약 체결

2007년 12월 3일

- SK텔레콤,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결정 공시

- 취득 주식 수 : 91,406,249주

- 취득금액 : 1조877억원

- 주당 1만1900원

- 취득 후 지분율 38.89%+4..7%=43.59%

2008년 2월 15일

- 공정위, 조건부 인가 승인 결정

2008년 2월 20일

- 정보통신정책심의위 최종 조건부 인가 승인 결정

2008년 3월 28일

- 하나로텔레콤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 개최

- 최대주주 변경

- 조신 대표 이사 선임

- SK텔레콤 자회사로 편입 완료

김신배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
김신배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

◆<인터뷰> 김신배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

“당시만 해도 초고속인터넷 모뎀 장비는 알카텔에서 실험용으로 몇 천대 정도 생산하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100만대를 주문한다고 하니 믿지를 않았다죠.”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김신배 SK그룹 부회장(당시 SK텔레콤 사장)은 질문이 나오자마자 하나로텔레콤의 경쟁력부터 설명했다. 전화모뎀으로 구현했던 저속 인터넷을 100배나 빠른 초고속인터넷으로 바꾸겠다고 한 그 과감한 발상을 높이샀다.

김 부회장도 신화의 주역이었던 하나로텔레콤이 위기를 겪고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2002~2003년만 해도 유·무선 통합이나 컨버전스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SK텔레콤은 유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개념과 시장이 확실치 않다면 ‘중립적’으로 하나로텔레콤을 놔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자본 투자는 그나마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고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외자의 특성상 투자 확대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비용을 줄이며 이익을 확대해 나갔다. 결국 김 부회장도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2006년부터 인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정은 내렸지만 인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배적 기간통신사업자의 위치였기 때문에 공정 경쟁과 이용자 이익보호 등 하나하나가 규제의 대상이었다. 여러 조건부 의무를 떠안고 오늘의 SK브로드밴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규제 환경도 달라졌고 스마트 빅뱅 등 통신시장도 많이 바뀌었다.

김 부회장은 “두 회사가 ‘가상의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각자 경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