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78] 정통부 해체, 방통위 출범 <2008년 2월>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위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500만표 앞선 압도적 승리였다. 10년 만에 보수정당이 다시 권력을 잡는 순간이었다. 이 당선자는 기업 CEO 출신답게 시장경제 체제에 철저하며 실적과 능력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경제 대통령`을 표방했다.

2008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실질적인 후속조치에 착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2008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실질적인 후속조치에 착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인수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는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선임했다. 헌정사상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인수위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업무 이양과 함께 정부 조직개편 작업을 시작했다.

이 당선자는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기존 18개 부처를 12~15개로 통폐합하겠다고 했다. 정보통신부도 방송위원회와 통합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5년간 IPTV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을 놓고 정통부와 방송위원회가 빚은 갈등을 돌이켜 볼 때 통합부처 출범 가능성은 높았다.

이 당선자도 선거 운동기간 동안 “정통부와 문화관광부, 방송위원회뿐 아니라 전 부처에 분산된 기능을 한쪽으로 합치는 쪽으로 기구를 조정하겠다”고 말해 온 만큼 정통부의 매머드화가 예상됐다.

◇철저히 빗나간 `장외의 예상`=그러나 인수위 분위기는 달랐다. 과거 로봇 정책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등 업무영역을 두고 정통부와 갈등을 벌인 다른 부처들이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통부의 업무를 해체해 각 부처로 이관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었다.

2008년 1월 5일 인수위원회의 정보통신부 업무보고는 정보통신부 해체가 기정사실이 됐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정통부가 IT 코리아의 주도 역할을 했지만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제 정통부가 21세기 새로운 시대적 환경을 맞이해서 어떤 역할을 모색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이제는 융합의 시대다. 정통부가 홀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더 많고 방향 설정도 잘해야 한다”면서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IT839가 얼마만큼 효율이 있었는지도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통부 해체를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정통부 업무보고 후 정통부 해체 반대 성명이 이어졌다. 벤처기업협회, 통신사업자연합회,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한국정보과학회 등이 성명서를 내고 정통부의 역할 축소 또는 폐지안은 방통융합이 급속히 진전되는 등 컨버전스화하고 있는 산업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수위는 이러한 반발에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통폐합이 지레 짐작되는 정부부처가 산하단체를 동원해 신문광고를 내거나 조직적 로비를 하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 인수위원은 “역대 정부가 왜 정부조직 개편을 제대로 못했는지 실감한다”고 지적하고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공무원의 이런 행태에 영향을 받지도 좌우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2월을 마지막으로 정보통신부 현판은 역사속 유물이 됐다.
2008년 2월을 마지막으로 정보통신부 현판은 역사속 유물이 됐다.

◇정통부, 결국 출범 1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2008년 1월 16일 인수위는 중앙행정조직을 축소하는 내용의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통부는 방송위원회와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게 됐지만 주요 기능은 지경부, 행안부, 문화부 등으로 분산됐다. 1994년 체신부에서 정통부로 옷을 갈아입은 지 14년 만에 정통부는 문을 닫았다.

정통부 역할에 대한 논란은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불거진 일이었다. 그러나 정통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는 `IT 코리아`라는 위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그런 변화의 중심에 정통부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우위를 차지하며 해체 고비를 넘겼다.

실제로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강국이 되는 데 정통부 공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IMF 위기를 거친 후 닷컴 붐과 함께 경제 활성화의 핵심산업으로 IT가 자리하면서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 육성하는 역할을 맡아 수행한 공도 있다. 문제는 정통부 역할과 성과가 올라갈수록 타 부처로부터 견제가 심해졌다는 점이다. 정통부가 산업 일반에 IT를 접목하면서 타 부처와 업무가 충돌하거나 힘 겨루기 양상이 전개되면서 `공공의 적`이 됐다.

당시 인수위는 “로봇산업만 해도 산자·과기·정통부가 경쟁을 벌였다. 그동안 이런 식의 업무 중첩으로 빚어졌던 비효율, 부처 간 갈등 등을 해소하기 위해 기능별로 통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식경제부의 경우 과학기술부의 산업기술관련 연구개발(R&D)과 정통부의 정보통신 산업육성 업무 등이 한 부서로 통합되면, 산업 융합화에 따른 새로운 산업 및 제품 출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인수위는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인수위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짧은 시간 내에 밀어붙이기식 추진을 하면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지 못해 초래된 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당시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에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정부조직 개편과 달리 이번에는 의견 수렴 과정이 전무했다”며 “의견 수렴 절차를 시간낭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걸고 준비하는 혜안을 갖추는 시간으로 봤을 때 이번 정부 절차는 부족함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출범 뒤 폐해 곧 드러나…뒤늦은 후회=정통부 해체 부작용이 드러나는 데는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통부에 집중됐던 기능을 4개 부처로 분산하고 융합 등을 추진했으나 주무부처 혹은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기업의 불만이 폭증하고 총체적 국가 ICT의 미래를 구상하지 못하는 절름발이식 정책으로 일관했다.

방송통신 정책 분야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더딘 속도다. 선제적으로 정책을 이끌지 못하고 사후조치에 급급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방송통신 분야를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 합의제 구조에서 찾는다. 모든 의결 안건은 상임위원 전원 합의를 원칙으로 하되 이견이 있는 안건은 다수결로 결정된다. 규제위원회로서는 바람직한 모델이지만 옛 정통부가 가지고 있던 기능마저 위원회 합의제 틀 안에서 이뤄지다 보니 정책 집행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분산형 거버넌스는 우선 조정 기능 부재를 낳았다. 방송통신 규제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산업 진흥은 지식경제부, 공공정보화와 정보보호는 행정안전부, 콘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나뉜 결과, 업무 중복 사례가 속출했다.

방통위와 지식경제부는 방송·통신 장비 관할로 대립각을 세웠다. 두 부처는 스마트폰산업 활성화를 두고도 충돌했다. 지경부와 행안부는 소프트웨어 규제 개선에서 부딪혔고, 문화부는 방통위와 방송 콘텐츠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을 둘러싼 네 부처의 갈등은 조정 부재를 가장 잘 보여준다. 방통위가 기금을 조성하지만 사용은 네 부처가 함께한다. 지난 2008년 지경부가 기금으로 사업계획을 짤 때 방통위와 문화부가 반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터진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당시도 마찬가지다. 국가행정망 보호와 보안 정책은 행안부, 민간망 보호는 방통위, 보안산업 육성은 지경부로 흩어져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피해조사 결과 발표도 제각각 이뤄졌고 정보보호진흥원은 같은 보고를 세 번씩 반복했다.

기업의 설비투자를 독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규모를 키우는 선순환 정책을 담당했던 담당 부처가 해체된 데 따른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정통부 해체에 대한 반성이 쏟아져 나왔다. 현 정부의 정부 조직 체계를 확정한 인사들도 당초 정책 의도와는 달리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2010년 4월 “현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IT 시너지 효과도, 경쟁력도 안 나오고 있다”며 “정보통신과 콘텐츠, 원천기술 등을 총괄한 통합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시지탄이었다. 2007년 세계 3위였던 우리나라 ICT 국가경쟁력은 2011년 19위로 추락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