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한국표준형 원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3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원전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최대 화두는 건설기술 자립이었으며 이는 한국표준형 원전건설을 의미했다. 표준화를 통한 반복건설로 안전성과 경제성을 지속하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최대 역점 추진방향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표준화사업은 영광 3·4호기 건설을 첫 시험대로 삼았다. 우선 기술자립을 위해 국내업체 주도형으로 사업을 실시했으며 한국표준형 원전의 기본 모델은 미국 컨버스천엔지니어링이 개발한 팔로버디원전의 시스템80 노형으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외국 선진업체를 하도급으로 끌어들여 기술자립을 시도했다. 플랜트 종합설계에서는 한국전력기술이 S&L의 기술을 도입해 기술자립에 착수했으며 원자로 계통 설계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컨버스천엔지니어링의 기술을 도입해 기술을 축적했다. 한국중공업(현재의 두산중공업)이 컨버스천엔지니어링의 기술을 도입해 원자로 설비 및 터빈과 발전기를 제작했고 핵연료의 성형가공 등 원전연료 설계에서는 한전원자력연료와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컨버스천엔지니어링 및 지멘스 기술을 도입해 기술자립에 나섰다. 그리고 1995년 3월 31일 드디어 95% 기술자립의 영광 3호기가 탄생했다.
◇우리 손으로 한국표준형 원전 건설=한국표준형 원전이란 자체기술로 개발된 원전으로서 원자로형은 가압경수로이고 전기출력 100만㎾급을 표준으로 삼아 안전성과 운영 편의성을 갖춘 노형이다. 여기에는 해외 수출도 포함돼 있다.
국내업체 주도 순수 한국표준형 원전사업은 울진 3·4호기 때 실현됐다. 이때 명칭은 KSNP(Korea Standard Nuclear Plant, 한국표준형 원전)이었다.
1988년 정부는 장기전원개발계획에서 울진 3·4호기를 계획했으며 첫 한국표준형 원전건설을 위한 사업계획은 1990년 7월 19일 제225차 원자력위원회에서 확정됐다.
이후 국내업체 주도의 완전한 기술자립체제를 구축했다. 주기기 공급은 한국중공업, 종합설계는 한국전력기술, 핵연료공급은 한전원자력연료, 시공은 동아건설 체제를 구축했으며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울진 3·4호기의 원자로 핵심계통의 완전 독자 설계에 참여했다. 영광 3·4호기 때 핵심 분야 기술자립에 기여했던 미국 컨버스천엔지니어링, 제너럴일렉트릭, S&L은 기술 및 설계자문을 맡았다.
1992년 5월 27일 착공해 1998년 8월 11일 준공한 울진 3호기가 본격 가동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원자력 역사에서 한국표준형 원전의 새 장을 열었다. 이후 제2, 제3의 한국표준형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영광 5·6호기 및 울진 5·6호기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반복건설 의한 설비개선으로 한국표준원전의 완성형 OPR1000을 개발하고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적용했다.
◇신형경수로 APR1400 개발=1980년대 말 우리나라는 영광 3·4호기를 통해 기술자립과 한국표준형 원전 건설이라는 사명 아래 복제기술 확보에 매진했다. 이런 가운데 원자력계에서는 10년 이후를 염두에 둔 독자기술 확보를 위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특히 국제적인 신형원전 개발추세와 전력수요 등을 감안, 원전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대용량 원전개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1992년 6월, 정부 종합과학심의회에서는 차세대원자로 기술개발사업을 국가선도 기술개발사업으로 확정했다. 그해 12월 차세대원자로 기술개발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국가적 역량집결을 위해 기술개발 주관 및 기술개발추진위원회 구성, 운영은 산업자원부가 맡았다. 과제 평가 등 종합관리 및 인허가 관련 규제요건 등 안전규제 기술개발지원은 과학기술부가 주관했다. 또 국내 원전 기술자립 기반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역할분담에 따라 관련 산학연이 공동 참여하는 기술개발사업단을 구성·추진했다.
기술개발사업 총괄은 한국전력이 맡았으며, 한국원자력연구소와 신형로연구센터가 핵심기술연구를, 한국전력기술이 플랜트 종합설계 및 핵증기공급계통 설계를, 한전원자력연료는 초기노심 및 연료집합체 설계를, 두산중공업은 주기기 제작 검토 및 기기설계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인, 허가 검토 및 안전규제요건 개발을 각각 수행했다.
2002년 비로소 우리의 독자기술로 완성한 140만㎾급 용량의 신형원전이 개발됐다. 그해 5월 7일 과학기술부로부터 국내 순수 개발모델이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함으로써 10년 만에 차세대원자로 기술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10년 동안 연 인원 2000여명의 국내 산업계·학계·연구기관의 기술인력이 참여했으며, 총 2340억여원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2003년 5월에는 특허청 출원을 통해 공식 상표로 등록함으로써 차세대 신형원전의 명칭이 정해졌다. 영문명 Advanced Power Reactor 1400, 영문 약칭 APR1400, 한글 명칭 신형경수로1400으로 명명됨으로써 그 탄생을 온 세상에 알렸다.
APR1400의 주요 설계 특성을 살펴보면 우선, 사고저항성 및 안전설비 신뢰도를 향상시켰다. 비상사고 때나 이상 상태 발생 때에도 원자로가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갖도록 설계됐다. 기존 원자로도 설계여유를 가지고 있지만 안전장치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동시에 추구했다. 원전이 매우 복잡한 설비로 구성된 것은 발전을 위한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설비가 추가되기 때문이었다. 설비 추가로 안전성은 달성할 수 있지만, 경제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APR1400은 기존의 설비추가 개념을 넘어 아예 설계방식을 재검토하는 설비 단순화·표준화·모듈화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한국 원전 수출의 미래 `Nu-Tech`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원자력발전기술 개발사업`계획을 수립, 2012년까지 원전 거대시장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Nu-Tech 2012`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5% 미흡한 원전기술 자립도를 2012년 100% 달성해 원전의 `기술독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2012년 말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출모델인 `APR1400` 원자로보다 경제성과 안전성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150만㎾급 국산 대형 원자로인 `APR+`의 표준설계 기술개발을 완료한다. APR+는 APR1400보다 경제성과 안전성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유 원천기술을 적용한 토종 노형이다. 용량도 APR1400보다 10만㎾가 많다. 우리나라는 오는 2022년께 독자 노형인 APR+의 첫 상업 운전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추가로 짓기로 한 10여기의 신규 원전에도 APR+가 적용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고유 원자로인 APR+의 개발은 전 분야의 설계기술 자립을 의미한다. 정부와 한수원 등은 APR+ 노형 개발을 위해 현재 미확보 핵심기술인 원전설계핵심코드, 핵심 원전계측제어시스템, 원자로냉각재펌프 등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원전 설계핵심코드는 올해까지 국산 소유권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외국 프로그램에 의존해 원전 해외수출 제약요인으로 작용해 왔지만, 기술개발이 완료로 수출 장애요인을 완전히 제거, 본격 수출전선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자체 설계핵심코드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원자로냉각재펌프(RCP)는 원자로냉각재인 물을 강제 순환시켜 원자로에 장전된 핵연료에서 발생된 열을 증기발생기(Steam Generator)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부품으로, 이 역시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각각 RCP 설계, 제작 및 핵심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세부 1과제와 RCP 시험설비 구축 및 시험을 실시하는 세부 2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RCP 국산화가 성공하면 2개 호기 기준으로 약 135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은 이미 개발이 완료돼 지난해 말부터 검증작업에 착수, 오는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신울진 1, 2호기에 우선 적용될 전망이다. MMIS는 원전상태감시 및 제어, 보호 등을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호기당 10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