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39] 케이블TV 본방송, 다매체 다채널 시대 개막 <1995년 3월>

케이블TV는 1995년 3월 1일 `뉴미디어의 총아`라는 기대를 받으며 개국했다. 48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9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24개 채널로 방송을 시작했다. 21세기 정보사회를 주도해 갈 뉴미디어 산업의 중추적 하부구조로서 다매체, 다채널의 케이블TV가 첫 선을 보인 것이다.

[100대 사건_039] 케이블TV 본방송, 다매체 다채널 시대 개막 <1995년 3월>

1995년 3월 케이블TV 개국 당시 케이블협회에서 발간한 잡지
1995년 3월 케이블TV 개국 당시 케이블협회에서 발간한 잡지

케이블TV는 다양한 전문 채널 제공, 지역 채널 운영 등으로 방송의 다양성 원칙을 구현했다. 더불어 지상파 난시청 해소로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 보장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국내 최초의 유료방송 시장 개척과 초고속 인터넷 강국의 촉매제가 됐으며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로 방송·통신 융합을 이끌었다.

케이블TV 개국으로 사람들은 영화를 비롯해 보도·여성·교양·교육·음악·오락·스포츠 등 모두 13개 분야, 21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마음대로 골라가며 볼 수 있게 됐다. 또 1995년 10월부터 문화예술·만화·바둑·홈쇼핑 채널이 추가됐다.

1995년 1월 5일 시험방송에 이어 3월 1일 본방송이 개국되기까지 그동안 공보처와 종합유선방송위원회(위원장 유혁인),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회장 김재기) 등 관련 정부기관, 단체, 종합유선방송국 사업자(SO)와 프로그램 공급자(PP), 전송망사업자(NO)는 전송망구축 미비와 컨버터 공급지연 등으로 과연 국민에게 약속한 개국일정에 맞춰 케이블TV 방송을 실시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했다.

시험방송 개시 초기에는 인력과 프로그램 확보 미비로 인한 걱정이 주였다. 전송망구축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컨버터 공급물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가 확산되자 케이블TV 점검반을 구성했다. 이들은 차질 없는 개국을 위해 분야별 점검에 들어갔다. 종합유선방송협회 역시 그동안의 추진 실적을 점검하고 향후과제를 정리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 그 당시 전국은 총 115개 종합유선방송구역으로 나뉘었다. 원래 216개 구역이었으나 수원 장안, 팔달구와 권선구가 통합됐다. 정부는 이 가운데 2차로 52개 지역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1994년 1월 50개 구역의 방송국 운영자를 선정했다.

2004년 3월 4일 '제9주년 케이블TV의 날' 기념식에 주요 귀빈들이 모여서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경목 전 케이블TV협회 회장, 박성득 전자신문사 사장, 신용섭 정통부 국장, 오지철 차관, 노성대 방송위원회위원장, 유삼렬 케이블TV협회 회장.
2004년 3월 4일 '제9주년 케이블TV의 날' 기념식에 주요 귀빈들이 모여서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경목 전 케이블TV협회 회장, 박성득 전자신문사 사장, 신용섭 정통부 국장, 오지철 차관, 노성대 방송위원회위원장, 유삼렬 케이블TV협회 회장.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가입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프로그램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대부분 분야별로 복수사업자가 선정됐다. 1차로 허가받은 12개 분야 21개 채널은 3월 1일 본방송에 들어가고, 추가로 선정된 홈쇼핑, 만화, 바둑, 문화예술, 기독교 등 5개 분야 6개 채널은 10월 1일 방송에 들어갔다.

케이블TV 업계는 본방송 개국 이후 두 달간 컨버터 없이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최종 결정했다. 구내전송선로가 연결된 43만9000여 가구 중 가입자 컨버터가 보급된 10만여 가구와, 케이블TV를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수상기(케이블 레디 TV)를 보유하고 있는 20만여 가구 등 총 30만여 가구가 케이블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케이블TV는 초기 준비 부족과 정책 혼선으로 표류하기도 했다. `IMF 한파`를 맞아 좌초 위기에 놓이는 등 평탄하지 않은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방송 시작 얼마 후 부푼 전망과 달리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적지 않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초기의 막대한 투자비용과 누적되는 적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96년 말 제일방송(JBS)이 홈쇼핑채널인 삼구쇼핑으로 넘어갔다. 이는 PP 구조조정의 신호탄이었다.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부도 위기에 내몰린 곳이 속출했다. 진로그룹의 부실 경영으로 새그린TV가 29개 PP 가운데 처음으로 부도를 맞았다. 1998년 3월 다솜방송이 부도를 낸 데 이어 기독교TV도 부도를 맞았다. 동아그룹의 동아TV도 10월 방송을 일시 중단했다. 캐치원(삼성), 현대방송(현대), DCN(대우) 등 대기업도 줄줄이 시장을 떠났다.

미디어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시장경제원리가 도입됐다. 그래서 2001년 정부가 PP를 등록제로 전환해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가 등장했다.

출범 당시 `무조건 큰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소문이 많았던 케이블TV는 초기 준비부족, 정책혼선에다 IMF 등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동안 1500만에 달하는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국민에게 가장 친숙한 방송 매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0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5년에는 디지털케이블을 상용화했고 인터넷전화(VoIP), 알뜰폰(MVNO)까지 영역을 넓혔다.

게다가 케이블TV는 난시청 지역을 해소했다는 큰 업적을 남겼다. 이제 케이블 업계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케이블협회는 2015년 말까지 디지털전환을 100% 완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껏 케이블업계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약 4조원의 투자를 했다. 향후 3조원의 투자를 더 할 예정이다.

유세준 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유세준 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 유세준 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케이블이라는 광장이 없었다면 한류 붐도 없었습니다. 케이블 채널이 생기면서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지요.”

유세준 전 케이블TV방송협회장은 케이블 개국 이후 음악방송이 생기면서 가수들의 광장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그는 케이블에는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비판을 반박했다. 유 회장은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는 한정적이었지만 케이블 음악방송은 24시간 열려 있어 케이팝(K-pop)이 뜰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공보처 차관 당시 케이블 출범을 담당했다. 유 회장은 문화공보부 매체국장, 공보처 기획관리실장, 공보처 차관을 거쳤고 케이블TV허가 심사평가위원과 위성방송 데이콤 컨소시엄(DSM) 사장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씨앤앰(C&M)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케이블이 출범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표현됐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케이블 출범 당시 사람들은 케이블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민간 커뮤니티 등에서 케이블방송 스터디가 꾸려지는 것도 공개적으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케이블 방송을 제대로 아는 이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케이블TV는 난시청 해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케이블TV 개국 이후 케이블 가입자 수가 어마어마했죠. 그 당시 전체 가구 수의 대부분을 커버했습니다”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케이블TV 개국 당시 업계는 케이블TV의 30여개 채널로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너무 성급한 기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채널이 정착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케이블 한 달 가격을 계속 낮출 수밖에 없어 지속적인 투자가 힘들었다는 점이 제일 안타까웠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한 달 요금과 중계유선방송(RO)의 가격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이유였다고 꼬집었다. RO는 케이블TV 추진과정에서 시설미비와 사업자의 영세성 등을 이유로 주체적인 참여가 배제돼 케이블TV 서비스 개시 이후 저절로 소멸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저렴한 가격과 별다른 운영비용이 들지 않는 구조 등을 무기로 오히려 가입자 수를 확대해 나갔다.

“그 당시 SO의 한 달 평균요금이 1만5000원이지만 RO는 몇 천원만 내면 됐습니다. 이 둘을 합치는 과정에서 RO 가입자들은 내던 가격을 계속 내고 싶어 했고 결국 통합과정에서 저가로 형성됐습니다. 이 가격이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유 회장은 이 저가가 결국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Program Provider)에 지속적인 투자를 막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케이블TV가 출범한 지 올해 17년이 지났지만 요금은 비슷하다. 유 회장은 “유료방송시장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양질의 서비스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가격을 갑자기 올리면 시청자들이 싫어합니다. 유료방송이 크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한 거죠. 수익을 내기 위해서 광고, 홈쇼핑 등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현재 구조가 생겼습니다.”

유 회장은 이런 구조에서는 생산적인 시장이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강제로 요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요금제를 다양화하고 정부도 유료방송시장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표] 케이블TV 가입자수 추이(단위: 만가구)

(출처: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