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X(8)-TDX사업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에 서정욱 박사
1983년 2월 26일.
전자통신개발추진실무위원장인 오명 체신부 차관(체신부, 건설교통부, 과기부총리 역임, 현 웅진에너지 폴리실리콘 회장, KAIST 이사장)은 체신부 회의실에서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체신부, 과학기술처 실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조직 신설을 결정했다.
전자교환기 개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에 TDX사업단과 품질보증단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에 TDX개발단을 설치하는 내용이었다.
연구소에는 이미 시분할교환기 개발단이 설치돼 양승택 박사(ETRI원장, ICU 총장, 정통부 장관 역임, 현 IST컨소시엄 대표)가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통신공사 TDX사업단은 생산업체 제품을 구매하고 현장에 설치 운용하는 전 과정을 관리하며 품질보증단은 생산업체 제품 품질을 보증하고 인증하는 업무를 맡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런 구상은 오명 차관의 아이디어였다.
오명 차관의 회고.
“나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포병용 컴퓨터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어 개발 이후 실용화까지 거쳐야 할 여러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산업계는 품질보증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군용부품은 굴렸을 때, 떨어뜨렸을 때, 더울 때, 추울 때,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성능 변화 등 무척 까다로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나는 TDX도 이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발 이후의 오류를 막을 수 있고 국산 제품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깰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자서전 `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에서)
그해 6월 체신부는 한국통신전기공사에 TDX사업단을 설치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체신부의 이런 지시에 한국전기통신공사의 내부 반응은 억지 춘향이었다.
당시 한국통신 고위 간부 L씨의 증언.
“한국통신에서는 기존 상용제품 중에서 품질 좋고 값싼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면 되는데 왜 우리가 240억원이란 돈을 부담하면서까지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외국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술진이 전자교환기 개발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도 있었어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교환기 개발비를 부담하게 된 것은 체신부가 1982년 1월 1일 공사로 독립시키면서 `전기통신사업자는 연구개발비로 연간 매출액의 3%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만든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통신공사 측은 연구비 출연에 비협조적이었다. 이런 비협조는 체신부가 한국통신공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해소됐다.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 양승택 단장은 최순달 장관과 오명 차관에게 시행령 개정안에 `연구소 연구비도 출연한다`는 내용을 넣어 달라고 건의했다.
양 단장의 증언.
“안을 만들어 오라고 해 연구비의 출연 또는 출자한다는 조항아래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연구비도 출연하다는 조항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도 장관 결재 시 그런 내용이 빠져 있어 최 장관이 고용갑 과장(부산체신청장 역임)에게 지시해 그 조항을 넣었다. 1983년 말 시행령이 공포돼 1984년부터는 안정적인 연구비를 출연해 연구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오명 차관의 계속된 회고록 증언.
“연구소가 개발한 제품이 현장에서 말썽 없이 사용되려면 엄격한 품질보증과 시험 평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구매 활용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일을 맡아줄 사람이 바로 사업단장이다. 이 역할은 남에게 욕먹은 일이다. 간섭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일찍부터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장(ADD)을 지낸 서정욱 박사(과기부 차관, 과기부 장관 역임)였다.”
서 박사는 1957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텍사스 A&M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70년 귀국해 ADD 창설에 참여했다. 군전자통신 연구개발 책임을 맡아 첫 국산 분대용 무전기(KPRC-6)를 개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ADD에서 13년간 일하면서 부장과 본부장, 진해 해군연구소장을 거쳐 소장까지 역임했다.
그가 ADD에 근무할 당시 있었던 일화 하나.
1972년 7월 7일 오전. 그가 개발한 최초의 국산 K-PRC6를 가지고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오원철 대통령 경제수석의 전화를 받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청와대로 오지 말고 그 곳에 무전기를 켜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카랑카랑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ADD 나오시오.”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예, ADD 서정욱입니다.”
“잘 들리는 군. 수고가 많았소.”
“감사합니다.”
“애로 사항이 있으면 말하시오.”
“무전기는 정식사업이 아니어서 연구원과 연구비가 없습니다.”
서 박사 건의로 무전기 개발은 ADD 정식 과제로 채택됐다. 20평에 불과하던 연구실은 건물 한 층을 다 쓰게 됐다. 인력과 장비 등 통신전기 연구개발 기능도 확충됐다. 서 박사는 무전기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국방과학상을 받았다.
서 박사는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는 스타일이었다. 일에 관한 한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 박사가 ADD에서 개발한 장비들은 완벽한 성능을 발휘했다. 서 박사는 연구개발 업무 외에 시험평가, 품질보증 등에 새 제도를 외국에서 도입해 직접 실행해 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오 차관의 증언.
“이런 이유로 나는 그를 꼭 모셔 오리라 마음먹었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이 아닌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 나에게 TDX개발은 꼭 성공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이를 위해서는 그가 꼭 필요했다. 나는 그에게 부탁했다. TDX사업단장을 꼭 맡아 주십시오. 단군 이래 가장 큰 R&D과제이고 국가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사업입니다. 사명감 있는 기술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할 겁니다. 서 박사님이 진정한 엔지니어라면 꼭 맡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당시 서 박사는 13년간 몸담았던 ADD를 떠나 1983년 봄 학기부터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서정욱 박사의 기억.
“그해 여름, 오명 차관과 경상현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체신부 차관, 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이 각각 만나자고 해 점심을 먹었다. 전전자교환기 개발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조언을 청했다.”
그해 10월 서 박사는 한국전기통신공사 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러자 연구소에서 TDX관련 자료를 잔득 보내왔다. 보고서와 실물을 대조해 보니 일치하지 않았다.
서 박사의 증언.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다. TDX사업은 연구개발과 사업평가, 품질보증, 생산, 운용, 보전 등에서 내가 ADD에서 관리하던 사업보다 복잡하고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관과 차관이 연구소를 번갈아 가서 개발을 독려하니 전시장만 화려해 지고 보고서만 쌓였다.”
그해 10월 14일 전두환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했다.
체신부 장관에는 김성진 전 ADD소장이 발탁됐다. 김 장관은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로 4년 내 수석을 차지한 수재였다. 미 플로리다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아 육사 교수를 지낸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안기부 1, 2차장과 ADD소장을 지냈다. 체신부 장관을 지낸 후 과기처 장관과 한국전산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5년 작고했다.
전 대통령도 동기생인 그를 항상 높이 평가했다.
전 대통령이 육사 졸업 15년 뒤 열린 동창회에서 그를 보고 “자네를 따라 잡는데 꼭 15년이 걸렸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해 12월.
이우재 사장(체신부 장관 역임)이 서 박사에게 만나자고 했다. 이 사장은 육군 통신차감을 지낸 터라 서 박사와 잘 아는 사이였다. 평소 말수가 적은 이 사장은 서 박사에게 단도직입으로 핵심을 말했다.
“나하고 같이 일해요. 월급은 형편없어요.”
이 사장은 아무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일하자는 말만 했다.
서정욱 박사의 회고.
“그게 내 마음을 움직였어요. 만약 이 사장이 조건을 내세웠으면 거절했을 겁니다. 처음엔 인사권과 재정권을 다 주고 사무실은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마련해 주겠다고 했어요. 나는 월급은 얼마 안 되도 좋으니 사장직속으로 개발단과 품질보증단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사무실도 통신공사에 두자고 했어요. 고독한 싸움의 시작이었어요.”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 이 일을 처리했던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의 말.
“김성진 장관이 저에게 개인적인 부탁이라며 서 박사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잘해 주도록 조치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급으로 예우하고 TDX사업단장과 품질보증단장을 겸하도록 했어요.”
최근에 알려진 새로운 사실 하나.
5공 정부 고위층으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던 한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전자교환기 개발과 관련해 서 박사를 직접 거명했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
“전자교환기 개발이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 엄청난 예산까지 다 지원해 줬는데. 뭐가 문제요. 방법을 서정욱 박사한테 물어봐요. 서 박사가 안 된다고 하면 중단하시오.”
1984년 1월 13일.
한국전기통신공사는 TDX사업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에 서정욱 박사를 임명했다. TDX개발 판도를 바꿀 독한 시어머니가 등장한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서 단장의 행보는 엄격하고 밤낮이 따로 없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