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중에 정보통신기술산업의 비중은 전자산업의 발전 속에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경쟁을 바탕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내는 현실에서도 무언가 부족한 내공이 드러나는 것은 전방위적으로 연관되는 콘텐츠 생태계 부실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최신 하드웨어와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촘촘한 네트워크 세상이 도래했지만 그것을 밑받침하는 콘텐츠 산업의 발전은 더디게 움직인다. 국내에서 성공한 산업 특성을 보면 빠른 판단과 과정을 통해 초기 정착 시기를 단축하면서 수직적인 경쟁과 과점 형태로 시장을 재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특성은 빠른 시기에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룬 순기능으로 인정받았다. 과도한 속도 경쟁의 미덕은 혁신에 맞는 성과로 돌아왔으며 한 세대의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그 이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한 때다.
대한민국의 TV수상기 산업은 세계에서 경쟁력 1위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TV수상기가 세계 안방을 찾아가고 HDTV는 물론 3D와 스마트TV까지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TV프로그램은 그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전자 산업의 기틀 속에 TV수상기 산업과 TV프로그램 제작 노하우를 적극 공유하고 반영한 일본의 소니와 공영방송사 NHK의 노력이나 마쓰시타와 민영 방송사들의 사례는 결코 우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기술력이나 프로그램 노하우의 영향을 오랜 시간 받았고 문화적 할인이 적은 인접국가의 입장에서 TV수상기와 TV프로그램의 경쟁력 격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다.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마켓에서 가장 많은 TV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는 영국이 정작 일본 시장에서 수입량을 늘리는 현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경쟁력의 차이를 보여준다.
초창기 미국에서 TV수상기를 만들던 GE가 방송사 NBC를 통해 비누회사 피엔지의 협찬을 받아 제작한 드라마가 오늘날 연속극의 시초가 된 `소프 오페라`라는 사실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텔레비전의 역사에서 TV수상기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았던 이러한 드라마의 발전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웨비소드 개발로 이어졌고 모바일을 활용한 모비소드가 등장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급격하게 성장 위주로 발전해 온 국내 산업적 관행으로 본다면 더디게 발전하고 성과도 미진한 콘텐츠 산업 육성은 요원하게 보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마켓에서 검증된 플레이어들을 통해 공급 받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핵심 기술을 제외한 일반적인 기술은 너무 빨리 표준화와 모방이 이루어지고 앞서가는 것만으로는 기존 기술력을 유지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콘텐츠와 생태계에 있다. 콘텐츠의 개발력이 쌓이면 느리지만 점증적으로 그 핵심역량은 지식 재산권의 형식으로 축적되고 하드웨어와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생성해 나갈 것이다.
TV3.0 시대는 모바일 스마트 시대라고 했다. 차기 정부가 구상하는 ICT 산업의 근간으로 혹자는 하드웨어와 디바이스, 네트워크와 콘텐츠를 언급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기술을 접속하는 융합 기조다. 각각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면들을 연결시켜 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흐름은 콘텐츠와 생태계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증대시켜 ICT 산업의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기존에 쌓아 온 역량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몇 년간 투자한 양방향 프로그램들은 한국형 융합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큰 자산이다.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마켓에서 대한민국의 기술과 콘텐츠 경쟁력을 융합의 이름으로 선보일 수 있는 대표 상품이 될 것이다.
홍진기 콘텐츠랩 대표 jinkihong@contentla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