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는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서비스·콘텐츠·상호작용 등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휴대폰을 매개로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가 통합됩니다. 이것이 퀄컴의 비전입니다.”
지난 30년간 한국 IT 산업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공을 거둔 글로벌 기술 기업을 찾으라면 1순위가 바로 `퀄컴`일 것이다. 1985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직원 6명으로 출발한 회사가 이제는 매출 18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것도 제조기반 없이 통신과 반도체 기술로 이룬 성과다. 퀄컴은 한국 IT산업과 동반 성장한 동시에 미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기술` 기반 기업이다. 역사를 반추하는 거울이면서 롤 모델인 셈이다. 그래서 퀄컴의 비전은 한국 IT산업에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
전자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퀄컴 성장의 핵심 동력과 미래를 진단하고자, 지난 12일 방한한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단독 인터뷰했다.
“첫째는 혁신(Innovation), 둘째는 실행(Execution), 그리고 집중(Focus)이 지금의 퀄컴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에서 폴 제이콥스 회장은 퀄컴의 성장 동력을 세 가지로 꼽았다. 끊임없는 혁신에 대한 의지, 실행능력, 그리고 핵심 역량에 집중한 파트너십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 퀄컴이 이룬 성공은 퀄컴에게도 값진 의미다. 제이콥스 회장은 한국 여러 파트너들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 글로벌 통신 산업의 새로운 장을 일궈낼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 IT산업의 경쟁력으로는 무엇보다 한국 기업의 자세를 꼽았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퀄컴이 초창기 단말기 사업을 펼칠 당시 일이다. 자신이 고객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가면, 한국 경쟁사들은 거의 20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그 중 하나를 골라 잡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강점을 찾아 집중하고 이를 발전시키며, 다시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이 한국 기업들”이라며 그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제이콥스 회장은 우리나라 IT 산업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 IT 산업의 기둥이 될 대학생들을 매년 정례적으로 만나, 아이디어를 듣고 직접 조언을 해준다. 제이콥스 회장이 직접 학생들과 만나는 정례 모임은 한국 학생들의 퀄컴 본사 방문 프로그램인 `IT 투어`가 유일하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자신감`에 매료됐다고 한다. 4년전 만났던 학생이 퀄컴의 직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의 핵심은 폰이다. 휴대폰을 매개로 실제 세계의 모든 사물과 환경은 가상 세계와 통합될 수 있는 시대, 커뮤니케이션·서비스·콘텐츠가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 시대. 이것이 퀄컴이 보는 미래다. 제이콥스 회장이 바라보는 퀄컴과 IT산업의 미래에 대한 일문일답을 싣는다.
-퀄컴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퀄컴의 핵심 역량은 혁신이다. 퀄컴은 어떤 기술이 실현될지 가늠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힘써왔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해내는 능력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퀄컴은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모든 일을 홀로 짊어지기보다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퀄컴도 초창기에는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시도했지만 곧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다른 것은 해당 분야 최고 파트너들과 제휴를 통해서 일궈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혁신과 실행, 파트너십에 대해 예를 든다면?
▲데이터 폭증이라는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기존과는 다른 네트워크 구축 및 전개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이 같은 신개념 네트워크 전개 방식은 향후 5년간 퀄컴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을 퀄컴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들과 협력한다. 퀄컴이 네트워크 수용량을 현재의 약 10배에서 12배 정도 개선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때였다. 퀄컴의 파트너인 `도코모`는 향후 1000배 가량의 네트워크 용량 증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퀄컴은 이로 인해 1000배 가량 망 용량을 증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여러 기술 발전 성과를 얻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직면한 요구사항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후 향후 5년에 걸쳐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자문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퀄컴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나?
▲두 가지 트렌드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우선 네트워크 측면에서 소형셀(small cell)이 더욱 밀집된 형태로 구축될 것이다. 즉, 개인이 직접 소형 기지국을 구축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다. 콘텐츠도 네트워크의 가장자리까지 보급될 것이라 예상한다.
한편, 기기 측면에서 보면 휴대폰이 통신과 엔터테인먼트, 컴퓨터 기능 등을 모두 통합해 생활의 중심에 자리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퀄컴의 비전이다.
향후 10년에 대한 비전은 휴대폰에서 더 나아가 주변 모든 사물과 환경에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융합, 연결되는 것이다. 휴대폰은 그 중심에서 주변을 감지하고 상호작용 및 통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퀄컴은 반도체 외 분야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미라솔이나 미디어플로 등의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업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성이 있다. 퀄컴이 리스크를 안고 도전했던 사업은 총 4가지다. 미라솔과 미디어플로가 그 중 2가지이며 세 번째는 LTE였다. 아다시피, 이전까지 퀄컴은 CDMA 사업에 주력했다. LTE는 CDMA와 전혀 다른 기술이지만 결국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바로 스냅드래곤이다. 퀄컴은 이전까지만 해도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기술 혁신을 통해 퀄컴은 LTE와 스냅드래곤에서는 매우 큰 성공을 거뒀다. 미디어플로에서는 기대 만큼 선전하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AT&T에 10억 달러 이상의 이윤을 남기며 주파수를 매각했다. 사업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성과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미라솔 디스플레이에 대해 화면 색상이나 밝기를 좀 더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퀄컴은 화면 밝기, 저전력, 반사 기술 등 여러 연구 작업을 지금도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늘 그렇듯이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퀄컴 CEO가 직접 한국 학생들을 만나는 `퀄컴 IT 투어`는 매우 인상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는지?
▲한국 학생들에게 항상 놀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충만한 자신감이다. 신문에서나 봤을 법한 CEO를 만나도 스스럼이 없다. 재미난 사진을 함께 찍자고 제의하는가 하면, 사인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
상당히 많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도 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들을 살펴보면 이미 산업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상당히 밀접해 있거나, 근접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헬스케어를 주제로 발표한 경우가 있었는데, 퀄컴의 사업과 매우 흡사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례도 있었다. 다만 아직 학생들이다 보니 업계 관련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다. 이런 공백에 대해서는 내가 특정 기술이나 추세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등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내년 반도체 시장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모바일 시장에서 꾸준히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시 경제적 측면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다소 영향을 미쳐, 모바일 시장도 일부 하향 전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년 대비 여전히 모바일 시장은 건실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휴대폰 및 스마트폰 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신문 창간 30주년을 맞아 독자들에게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퀄컴과 한국과의 협력 관계는 퀄컴의 설립 초창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한국의 IT산업은 퀄컴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자신문은 IT와 관련된 소식을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전파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게 된 점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사진=윤성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