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융합이라는 화두 아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근·현대 문화와 산업의 시작을 알렸던 르네상스와 증기기관에서 촉발된 산업혁명이 몇 세기의 장벽을 넘어 한꺼번에 일어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해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을 일으켰던 산업혁명에 14세기 문화·예술뿐 아니라 정치·과학 등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법의 시도와 다양한 실험을 가져왔던 르네상스의 오버랩이다.
이번 변화는 새로운 것들에 의한 것이 아닌 기존 산업이나 기술 간 결합뿐 아니라 문화, 예술까지 결합해 산업, 개인, 사회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융합에 기반하고 있다.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과 르네상스(Renaissance)가 가져온 변화보다 더 큰 물결의 변화를 가져올 `산업 르네상스(Industrial Renaissance)` 시대의 도래다. 이런 시대의 물결에 우리 산업도 급격한 변화가 시작됐다.
`1+1=2`가 아닌 `1+1=무한대`도 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일명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변신이다. 이런 변신은 자동차, 조선, 항공, 의료, 제약, 국방, 섬유·의류, 건설, 에너지, 로봇, 철강, 농업 등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다.
그 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산업이 선진국의 앞선 기술을 받아들여 가격과 뛰어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왔다면 이제는 이런 기반하에 앞선 IT기술과 한국적 창의력을 융합해 새로운 형태의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시점이다.
이런 변화에 융합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대비 2010년 IT융합 관련 기업의 IT융합 관련 매출, 연구개발(R&D) 투자, 인력만도 각각 49%, 72%, 18% 성장했다. 전통산업인 자동차, 부품, 조선 등에서 다양한 IT융합 인재 채용이 크게 늘었다.
인력뿐 아니라 지자체, 연구소 및 기업의 융합 관련 조직 및 기능확대도 많다. 부산 IT융합부품연구소, 대구 나노융합실용화센터 등 지자체는 물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고려대 융합소프트웨어전문대학원 등 대학까지 동참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이나 한국산업기술시험원 IT융합검증센터, ETRI의 융합기술연구부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융복합연구부문, 한국전기연구원 의료IT융합연구본부, KISDI 미래융합연구실 등 연구기관의 융합 관련 조직 신설도 이어진다.
현대중공업도 사내 신기술기획과를 융합기술과로 확대 개편을 통해 조선-IT융합 전담조직의 규모를 키워가고 있으며 LG CNS는 건설, 환경·에너지, 교통산업과 IT서비스를 융합하는 컨버전스 시대를 이끌 신사업 전담 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통한 국내 성공경험과 혁신적 제품의 본격적인 세계 시장진출도 이뤄지고 있다.
교통카드시스템, 모바일결제시스템, 금융시스템 등 국내 레퍼런스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해외시장 진출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융합산업의 발전과 함께 여전히 우리경제의 주력인 전통산업이 융합을 통해 그 경쟁력도 크게 높이고 있다. 대표 사례가 조선산업의 변신이다. 융합기술은 우리 조선산업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해 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융합산업 준비는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우리나라 주력산업 융합화는 그 진전도 측면에서 선진국의 46%, 융합성과는 50%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우리나라 융합기술 수준을 선진국 대비 50~80%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내 융합산업의 시장 규모와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을 분석해 다양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한다.
IT융합은 기술수준도 높고 시장 규모도 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를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나노와 바이오는 산업 규모는 크지만 사용기술 수준은 미흡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또 차세대 로봇과 RFID/USN은 산업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에 산업 성장을 위한 지원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전통 주력산업에 대한 IT 등 각종 첨단기술의 융합은 피할 수 없는 대세고,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이런 융합트랜드에 맞춰 `융합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 조성에 한창이다. 먼저 작년 10월 총 7장 39개 조문으로 구성된 산업융합촉진법을 시행했다.
그동안 융합을 통해 새로운 제품이 개발돼도 기존 법·제도에 가로막혀 적시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법 시행으로 과거 칸막이식 산업 틀에 제한됐던 법·제도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도록 정비, 융합 신산업에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지원 정책 등 폭넓은 내용을 담았다. 중소·중견기업의 산업 융합사업에 대한 자금, 판로 등 포괄적인 지원 근거도 포함됐다.
이달 초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주력산업의 융합가속화 등을 담은 `IT융합 확산전략`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전략에서 정부는 자동차, 조선·해양플랜트, 섬유, 국방·항공, 에너지 등 경제적 파급력이 큰 5대 산업을 포함한 10개 분야의 중점 육성 방안을 담아냈다.
산업융합 촉진을 위한 기반조성 작업도 분주하다.
방송·통신 분야는 지난 3월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방송통신융합센터가 문을 열고 글로벌 표준 방송통신테스트베드 기지 역할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방송사업자 소유·경영 규제개선, 신규 방송사업자 시장 진입(종합편성채널, 중기전용 홈쇼핑) 등을 통해 미디어 시장 선진화 기반을 조성해 가고 있다.
콘텐츠 분야는 3차원(3D) 융합산업 육성을 위해 2016년까지 1230억원을 투입해 매년 5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3D관련 학과 및 전문 과정을 신설할 계획이다.
에너지 분야도 지능형전력망 구축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 및 제1차 지능형 전력망 기본계획이 연이어 발표됐다. 의료기기도 지경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공동으로 의료기기산업육성방안을 수립해 의료기기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산업융합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도 활발하다. IT+의료산업 모델로 통신사나 IT연구기관과 대형 병원 협력 모델도 다양하다. 지난 3월 KT와 연세대의료원은 의료·ICT 융합사업 전문 합작사인 `후 헬스케어`를 설립했다. SK텔레콤과 서울대병원은 지난 1월 융합형 헬스케어 전문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출범시켰다. ETRI와 분당서울대병원은 IT-바이오 의료기술 융합연구를 위한 협정을 지난 3월 체결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산업이 단일·유사영역 융합에서 이종, 다종 간 융합으로 점차 발전하며 산업발전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주력산업의 성장정체, 소비자 요구의 다양화, 기술 개방성 확대로 `산업융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를 모든 산업정책에 반영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가 산업을 주관하는 지식경제부 홍석우 장관이 “융합은 시대 흐름이자 미래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외 전문기관들에 따르면 국내 융합시장은 2008년 18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약 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융합 신시장 창출인력도 2008년 168만명에서 2018년 360만명으로 증가가 예상된다. 딜로이트컨설팅은 융합 신산업분야 세계 시장은 2008년 733억달러 규모에서 2018년 4613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산업융합 촉진을 위한 관계 부처별 주요 정책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