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vs 스타크래프트, 비교가 가능해?

인간에 대한 정의들 중에 인간은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그와 연관해 이 글에서는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앞으로는 약칭 ‘스타크’라 부르기로 함)를 비교해 보자.

<고기를 낚던 세월을 낚던 인간에게 유희는 삶이다>
<고기를 낚던 세월을 낚던 인간에게 유희는 삶이다>

바둑에서 인생을 배운다면, 네트워크 게임에서는 인생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테크닉을 배운다. 사람 人, 사이 間. 인간(人間)이란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어쨌든 서로 갈마들고 보듬으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유희로써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면, 그 또한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될 것이다.

혹자는 바둑을 고급문화, 스타크를 저급문화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양자를 놓고 볼 때, 거시적인 안목인 전략과 지역적인 안목인 전술이 모두 요구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으면 어떨까?

<바둑만 고급문화라고 말하면 시대착오다>
<바둑만 고급문화라고 말하면 시대착오다>

스타크에 등장하는 각각의 종족과 유닛은 서로 다른 특성과 기능이 있는 반면에, 바둑은 바둑알 하나하나에 그 나름의 특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타크는 다수의 인원이 공통되는 공간에서 즐길 수 있지만, 바둑은 1:1 게임밖에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스타크는 다양한 캐릭터로 종족 간 상관관계의 특징을 이용하는 반면, 바둑은 돌 하나로 승부를 낸다는 점들, 스타크는 다양한 지형과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즐기지만 바둑은 단 하나의 공간에서 게임이 진행된다는 비교들, 스타크는 일을 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바둑은 한정적인 돌을 가지고 사용한다는 외관상의 차이점들, 스타크는 실시간 반응속도가 빠르면서 사용자의 정신을 집중시키는데, 바둑은 상대방이 다음 수를 두려고 생각하는 동안에 정작 자신은 정지해 있는 듯한, 그래서 긴장감이 희박하고 약간은 따분한 느낌을 받는다는 등의 의견들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타크는 우리가 미래가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스타크는 우리가 미래가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의 반응 후에 다시 대처하는 턴 방식의 바둑이 스타크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동적인 놀이와 추상적인 원리가 네모난 반상 위에 실현되는 너무나 정적인 놀이는, 사실 비교 자체가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타크는 전략전술의 머리싸움과 더불어 손가락 운동에 의한 조건반사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반해, 바둑은 무조건 머리싸움인 것으로 보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둑이 반드시 1:1 게임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도림(道林)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19줄바둑의 생성 근거일 것이다. 바둑은 처음부터 19줄로 구성되지 않았을 것이며 네모난 반상 위의 무한한 원리에 의해 9줄, 13줄, 17줄, 19줄로 발전되어 왔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현재의 바둑은 19X19이라는 경우의 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엄청난 내용이 산출될 것이다.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보다 많다고 하니, 두어지는 바둑의 내용이 어느 것 하나 똑같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 세계에서 체스의 최고수라는 러시아인이 슈퍼컴퓨터의 경우의 수를 산출하는 능력에 뒤져 1승 2패로 패했다고 하지만, 바둑에 있어서는 현재까지도 컴퓨터가 인간을 절대로 따라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을 바둑으로 이긴다면, 그 때에는 21줄의 바둑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바둑이라는 게임은 난해하고, 수많은 묘수들이 존재하는 어렵고도 재미있는 게임이다.

<바둑을 좋아한 개로왕은 도림의 꾀에 의해 결국 죽고 말았다>
<바둑을 좋아한 개로왕은 도림의 꾀에 의해 결국 죽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도 간간히 두고 있긴 하지만, ‘연기(連棋) 바둑’이라고 여러 사람이 두 팀으로 갈라 서로 편을 먹고 치루는 바둑도 있는데, ‘Pair바둑’, ‘편바둑’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갑(2급), 을(11급), 병(4급), 정(7급) 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연기바둑에서는 하나의 바둑판과 한 쌍(흑과 백)의 바둑돌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갑과 을이 한 편이 되고 병과 정이 한 편으로 된다. 다른 조합도 가능하겠지만, 기력의 차이를 고려해 보면 아무래도 위의 조합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착점의 순서는 ‘갑→병→을→정→갑→병→을→정→갑→병’ 식으로 두게 된다. 하지만 연기바둑에서는 같은 편이라도 마무리 계가가 시작될 때까지는 바둑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할 수 없다. 즉, 갑은 한 편인 을에게 훈수라든지 어떠한 힌트를 주는 행동이나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갑이 최고수(高手)로서 을이 두 차례에 훈수를 하게 되면, 갑에 비하여 하수(下手)인 병과 정은 둘이서 아무리 열심히 수읽기를 하더라도 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연기바둑에서는 바둑의 내용에 대하여 같은 편이라도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에는 반칙패를 당하게 된다. 같은 편을 하게 된 대국자들은 오로지 같은 편이 두는 바둑돌의 착점에 의해서만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상대방의 심중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치밀한 심리전과 상대방의 바둑스타일, 기력의 고려 등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출중한 실력도 포함되겠지만 같은 편을 하게 된 사람과의 전략과 전술, 구상이 얼마나 일치하면서 서로간의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잘 이루어지는가 하는 이심전심의 조화라 하겠다.

이렇게 바둑의 원론적인 내용에 쌍방 간의 심리와 기략까지도 고려하게 되는 연기바둑은 1명이 두는 바둑에 비하여 그 깊이와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뒤처지는 놀이지만 돌출되는 변수들에 대하여도 생각해야 하고 상대방의 심중을 읽으려는 노력도 배가되므로 다이나믹하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연기바둑과 전쟁의 전략전술이 비유되는 이유는 팀(Team)이기 때문이다>
<연기바둑과 전쟁의 전략전술이 비유되는 이유는 팀(Team)이기 때문이다>

스타크 또한 각각의 종족들의 특징과 기능이 모두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재미가 바둑에 뒤지지 않는다. 스타크는 정해진 스토리대로 전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둑보다 세분화된 지도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IPX(네트워크 플레이)와 베틀넷이라는 전용망으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둑보다 우월하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 박진감은 바둑과 비교되지 않는다. 그리고 귀를 민감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사운드가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몰입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바둑이나 스타크가 단순한 ‘집 만들기’에만 전념하거나 방어에만 주력하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낭패를 보기 쉽다. 대세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귀를 첫째로 하는 것은 바둑과 스타크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변으로 세력을 확장, 결국 중앙을 장악하는 것이 순서다. 빠르게 결정짓는 경우(특히 스타크에서의 초반 러시)도 있지만 어쨌거나 게임의 진행 순서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사고가 담긴 철학적 게임 바둑은 2차원적 평면 놀이가 아니다>
<동양의 사고가 담긴 철학적 게임 바둑은 2차원적 평면 놀이가 아니다>

삶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공격은 최대의 수비라고 했다. 두텁게 지으면 집이 없고, 넓게 지으면 엷어지는 것이 바둑과 스타크의 원리. 역시나 인간이 창출해 낸 게임들은 인간 자체가 살아가는 삶의 양태를 흡사 그림처럼 카피한 듯 느껴지는 것이 지나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스타크와 바둑은 공통점도 있지만 본질적인 많은 차이도 있다.

바둑은 동양인의 본질 직관적인 사유에 기초한 게임이다. 동양적 사고방식의 특징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본질 직관적인 의사소통에 의한 감정이입이라는 점에 있다. 이에 반해 스타크는 서양 문명의 기술적·과학적 자부심이 표현되어 있다. 그렇기에 바둑은 마지막 한 수까지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스타크는 한번 기울어진 전세를 회복하기에는 보다 많은 합리적인 과정과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 외에도 스타크와 바둑은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지만 한 가지 새겨야 할 것이 있다. 이겼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경우가 있고 지더라도 칭찬 받는 경우가 있다는 점. 이 사실은 삶 속에 녹아 있는 진리일 것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 잉태된 네트워크 게임과 인간의 역사와 숨 쉬면서 계승되어 온 놀이는 서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 네 삶 속에서 그 나름의 질서와 논리를 찾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한국인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현시대에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는 세계인의 관심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한국인의 모습이 결승전에서 중계되는 것은 당연시 될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Korea, 한국이 지구본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세계인들이 이제는 다방면에서 한국을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풍류(風流)를 즐길 줄 아는 한민족이 신명(神明)이 절로 나서인지 바둑과 스타크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