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줄 때가 된 것 같은데 통 안 바뀌는 차가 있는가 하면, 그대로 팔아도 될 것 같은데 벌써 바뀌어 나오는 차가 있다. 신형 포드 토러스는 후자에 해당한다. 올해 초부터 미국 판매에 돌입한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거의 1년 전이었던 2011 뉴욕모터쇼에서 미리 공개됐던 탓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많이 팔리는 차는 바꿀 여력이 생기고, 바꿀 필요도 생긴다. 토러스는1985년 첫 모델이 출시된 이래 지난 해까지 900 만 대 이상이 판매된 포드의 상징이다. 최근 영화 `맨인블랙3`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던 바로 그 차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실내외가 크게 바뀐 것은 물론, 화제에 오르기에 충분한 다운사이징을 실천했다. 차체 길이 5미터가 넘는 거구의 차체에 2.0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2.0 에코부스트’ 버전을 추가한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마이포드 터치’의 첨단 계기판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작부, 그리고 2.0 에코부스트의 조합은 먼저 출시된 익스플로러의 골자이기도 하지만, 토러스의 경우에는 풀 체인지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외관은 단단한 근육질을 연상시키는 선을 적절히 배치해 큰 차체가 늘어지거나 허술하게 보이지 않도록 했던 기존 모델의 장점이 대체로 그대로 이어졌다. ‘원-포드’ 전략에 따라 유럽 포드와 동일한 패밀리룩으로 대폭 수정된 얼굴 부분도 견고한 인상만큼은 그대로이다.괜히 건드렸다가 이전만 못한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토러스는 만족도가 높다. 다만, 새 패밀리룩의 특징 중 하나인 육각형 그릴은 포드뿐 아니라 여러 메이커들의 카드라는 점이 신경 쓰인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기존 모델에서 볼 수 없었던 액티브 그릴셔터와 측면 주차 센서를 적용한 것이 눈에 띈다. 액티브 그릴셔터는 엔진룸에 공급되는 공기의 양을 자동조절하고 공기역학 성능을 높인다. 앞범퍼의 측면 센서는 자동 주차 조향 보조 기능과 관계된 부분이다. 형상이 약간 바뀌긴 했지만, 범퍼의 양쪽 끝 안개등 자리에 LED램프가 적용된 것은 여전하다.
뒷모습은 테일램프에 LED를 도입하면서 가로선이 강조된 그래픽을 적용해 차 폭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쪽으로 몰렸던 배기구를 기존의 고성능 SHO 모델처럼 양쪽으로 하나씩 뽑아 더욱 스포티하게 보인다.
19인치 휠은 기존의 3.5 모델에 들어가던 것과 같은 디자인인데 크롬 도금만 삭제됐다. 도어 손잡이에 버튼 모양의 윤곽이 새겨진 것도 눈길을 끈다. 끝이 뾰족한 재래식 시동키가 이미지를 갉아먹었던 구형과 달리 이번에는 익스플로러의 것과 동일한 스마트키가 적용되었다. 도어손잡이 안쪽 면에 센서가 있어 손을 감아 쥐기만 해도 도어록이 해제되고, 큼지막한 버튼 형상의 윤곽을 터치하면 문이 잠긴다. 차체 크기에 비해 얄팍한 느낌을 주는 새 시동키는 손에 쥐었을때 편안한 느낌이 들도록 버튼들이 배치된 면이 살짝 오목하게 패인 형상이다. 원격 시동 기능도 제공한다.
당연히 운전석의 키를 꽂아 돌리던 자리에는 시동버튼이 배치됐다. 센터콘솔과 눕다시피 연결된 센터페시아나 T자 형상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도어트림이나 시트 형상은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계기판과 운전대, 센터페시아의 조작부가 완전히 달라졌다. 중앙의 원형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디지털 화면을 배치한 계기판은 스티어링휠의 양손 엄지로 조작할 수 있는 십자 버튼을 통해 다양한 정보 표시와 조작 기능을 제공한다. 오디오 유닛과 에어컨 조작부가 통합된 센터페시아에는 물리적으로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사실상 없다. 상단의 대형 화면도 ‘터치’지만 나머지 거의 모든 조작부도 ‘터치’ 방식으로 조작한다. 비상등 버튼, 볼륨 조절 다이얼 등 극히 일부만 예외다. 포드의 ‘마이포드 터치’ 시스템이다.
이외에도 차 값 대비 놀라운 사양들을 대거 제공한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오토 하이빔, 액티브 파크 어시스트(자동 주차 조향 보조), 앞좌석 냉방 및 마사지 시트, 운전대 열선 등이 달려있다. 운전석은 예전처럼 페달들의 위치를 전동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전대 위치까지 전동조절 할 수 있다. 차에 타고 내릴 때 운전대와 시트가 모두 움직이는 이지 액세스 기능도 편리하다.
특유의 패키지는 여전하다. 토러스의 차체 크기는 5,153 x 1,935 x 1,541(mm)로, 현대 에쿠스의5,160 x 1,900 x 1,495(mm)와 비교할 만 하다. 특히 지붕이 높은 것이 특징적이며, 앞바퀴굴림인만큼 휠베이스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앞뒤 좌석 모두 높이 앉은 느낌을 주고, 이로 인해 보기보다 머리 공간 여유는 적은 편이다. 뒷좌석은 등받이를 좀더 눕히고 싶다거나 바닥을 평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등의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반적인 구성은 나쁘지 않다. 믿음직한 분위기의 넉넉한 공간에 시트 열선과 송풍구, 조명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독서등, 뒷유리 전동 블라인드를 제공한다. 앞뒤 모두 도어가 바닥부분까지 열리기 때문에 타고 내릴 때 발을 딛기가 편한 것도 자랑이다.
트렁크 덮개는 글로브박스 옆의 버튼이나 리모컨, 그리고 뒷범퍼 번호판 위에 숨겨진 버튼으로 열수 있다. 뒷좌석 공간으로 뚝 떼어가고 싶은 정도로 넓고 깊다. 바닥 아래에는 요즘 보기 드문 풀사이즈의 스페어타이어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도 추가 수납공간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본 적재용량만으로도 이미 골프백 다섯 개를 충분히 넣을 수 있다고 하니 쓰임새의 문제일 뿐이다. 골프백은 모르겠지만 20인치 휠의 자전거는 핸들바를 접는 것만으로 여유롭게 집어넣을 수 있었다. 부족하다면 분할되는 등받이를 접어 뒷좌석 공간까지 적재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스키스루 기능은 없다.
가레트 브랜드로 유명한 하니웰터보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올해 북미 시장의 터보 탑재 차량 판매 대수는 2011년보다 45% 증가한 32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승용차의 경우 61%의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 이는 엔진 배기량과 연료소모를 줄이면서도 기존 성능은 유지할 수 있는 다운사이징 수단으로 터보차저가 각광받는데 따른 것이며, 수년 전부터 직분사와터보를 결합한 ‘에코부스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포드를 주축으로 볼 수 있다.
토러스에 탑재된 2.0리터 직렬 4기통 에코부스트의 경우, 종전의 V6에 비할 수 있는 243마력의 최고출력과 37.3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고 있다. 3,000r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등, 넓은 회전 영역에서 지속적인 가속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변속기는 6단 자동이며, 3.5에서 볼 수 있었던 운전대 패들 기능은 삭제됐다. T자 형상이었던 레버는 일자에 가깝게 변형되었고 레버 왼편에 수동조작을 위한 +/-버튼을 배치하고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수동조작을 해야 하는 이 구성은 대체로 어색하기 마련인데, 토러스의 경우에는 팔걸이와 레버의 위치상 조작이 꽤 자연스럽다. 단, 레버를 S까지 옮겨야 수동 조작이 가능한 것이 함정이다. D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2.0으로도 충분하다!’라는 느낌이 확실했던 익스플로러와 달리 토러스의 움직임은 다소 굼뜨다. 가속페달은 저속에서의 초기 응답이 빠르지만 스트로크가 길게 느껴진다. 가속이 더딘 것 같으면서도 꾸준히 속도를 더해가는 것을 보면, 힘 부족 보다는 부드러운 반응에 초점을 맞춘 설정 탓으로 보인다. 엔진 소리도 그르렁거리는 익스플로러의 그것에 비해 얌전을 떤다. 가속페달을 급하게 뗄 때만 꺽꺽거리는 흡기계통의 소리가 약하게 들릴 뿐이다. 툴툴거리는 변속기만 업그레이드돼도 만족도는 훨씬 높아질 것 같다. 감속 후 재 가속 할 때가 특히 더디게 느껴진다. 부웅~ 하면서 엔진이 힘을 모으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잠시 후 가속이 시작될 쯤에는 변속기가 기어를 낮추느라 시간을 잡아먹는다.
노면이 좋은 곳에서는 대형차에 걸 맞는 정숙성을 보여준다. 그래픽으로 표현되는 회전계의 눈금이 넓어 어림잡은 것이긴 하지만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600rpm정도다. 노면이 균일하지 않은 포장도로에서는 충격 흡수음이 들리는 편이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승차감은 부드럽고 완충 폭이 넓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차체는 출렁거리고 코너에서는 뒤뚱거려야 정상인데, 거칠게 밀어붙여도 앞머리가 의외로 쉽게 돌아간다. 3.5대비 앞부분이 가벼워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토크 벡터링 컨트롤(Torque Vectoring Control)과 커브 컨트롤(Curve Control)의 역할이 커 보인다. 효율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전동식 스티어링은 별다른 이질감이 없다. 타이어는 굿이어 이글 RS-A, 255/45 R19 사이즈를 끼웠다. 급 출발 때 비명 소리가 요란한 것은 익스플로러와 마찬가지이다.
포드의 뉴 토러스 2.0 에코부스트의 공인연비는 10.4km/L이고, 150km 남짓 주행한 이번 시승에서는 7.3km/L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가격은 한시적 개별소비세 인하를 반영해 SEL모델 3,775만원, LIMITED 모델(시승차) 4,345만원이다. 포드코리아는 이 차가 국산차에서 수입차로 이동하는 30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수입차의 개인 구매 고객 중 30대의 비중은 40대를 넘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의 ‘권토중래’를 말하고 있는 포드코리아의 실적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글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