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재 기업들이 한국 전자재료 시장에서 고수익을 올린다는 것도 이제 옛말이다. 분야별로 차이야 있겠지만 그동안 소수 기업이 한국 시장을 과점해 왔다면 조만간 많은 회사가 몰려 들어 차세대 전자재료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한 글로벌 전자재료 기업 한국 지사장은 최근 `생존` 경쟁을 염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 침체 속에 우리나라가 세계 전자 소재 시장의 사실상 유일한 수요국이 되면서 글로벌 소재 기업들의 혈투가 벌어질 분위기다. 국내에 생산시설과 연구센터를 속속 설립하는 등 한국행도 활발하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소재 기업들은 최근 한국의 차세대 전자재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다우케미컬·JSR마이크로 등 이미 생산 시설을 갖춘 기업은 종합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시장에 밀착 대응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전문기업인 일본 TOK는 1500억원을 투입해 송도에 생산시설과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접착제와 솔더링 재료 전문 독일 헨켈테크놀로지스는 디스플레이 접착제 관련 연구센터를 조만간 한국에 세우기로 했다.
이들이 생산시설과 함께 연구센터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은 차세대 전자 시장의 주도권이 우리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공략 분야는 첨단 모바일기기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이다. 한국 전자 산업이 세계 최대 수요처인 셈이다. 미개척지인 차세대 전자 시장에서 해외 기업이 소재를 먼저 개발해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 전자 업계와 공동 개발이나 협력이 최우선 과제다. 이 점이 글로벌 기업들을 하나 둘 한국으로 불러들인다. 특히 일본 대지진과 전력난은 일본 소재 기업들이 한국에 전력투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글로벌 소재 기업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먼저 진을 친 기업들과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각자 특화 영역이 있지만 차세대 전자재료 시장은 무주공산이다. 다우케미컬·TOK·신에쓰·스미토모·동진쎄미켐·머크·금호석유화학·도레이첨단소재·우베코산 등 국내외 기업의 전면전이 일어날 전망이다.
시장 초기 단계인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소재 시장은 이미 10여개 기업이 선점경쟁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LG화학·다우케미컬·두산·SFC·덕산하이메탈 등이 점유했지만, 글로벌 소재 기업들이 한국 기업이나 연구소와 제휴를 맺고 시장에 진입할 태세다. 제일모직·이데미쓰·스미토모·호도가야·SKC·솔베이·바스프 등이 국내 AM OLED 패널 업체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전자재료 양산 준비 단계에 접어들었거나 진출을 발표했다.
토종 소재 기업들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LCD 편광필름이나 반도체 식각액 등 우리 기업이 성과를 내는 분야도 있지만, 차세대 기술 개발 역량은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차세대 전자 소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에 연구시설까지 들여오는 것”이라며 “제조업의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구축하려면 국내 소재 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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