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대는 제대로 혁신을 교육한다.” 핀란드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알토 벤처 프로그램(알토AVP)을 총지휘하는 마르쿠 마울라 경영학과 교수는 알토대에서 가르치는 혁신이 교과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무와 결합된 진짜 혁신이라고 진지하게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알토 벤처 프로그램을 도입한 인물이다.
◇농장에서 세계적 혁신 클러스터로, `알토대의 극적 반전`
6월 말 여름방학 기간에 방문한 알토대는 텅 빈 곳이었다. 핀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수도 헬싱키 바로 옆 지방인 에스포(Espoo)에 자리한 오타니에미(Otaniemi) 지역에 알토대가 있다. 지금은 오타니에미 혁신 클러스터가 된 곳이다. 60여년전만 해도 농장에 불과했던 오타니에미 지역은 1949년 핀란드 정부가 매입한 후 헬싱키공과대학(TKK)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핀란드의 핵심 연구단지로 부상한다. 이 후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소(VTT), 국립기술개발청(TEKES)이 들어선 것은 물론 노키아 본사와 에릭슨·마이크로소프트·코네 등 세계적 기업이 둥지를 틀면서 명실상부 세계적인 연구단지로 거듭난다.
2010년에는 헬싱키공과대학과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TaiK), 헬싱키 경제대학(HSE) 3개 학교가 알토대학교로 통합한다. 2만여 명의 학생을 보유해 헬싱키 대에 이어 핀란드 제2대학의 위치를 차지하는 알토대는 디자인과 비즈니스, 과학기술 세 분야 인재들이 교류할 수 있어 최고의 창업 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방학에도 그칠 줄 모르는 `창업 열기`
텅빈 줄로만 알았던 알토대는 `벤처 개러지(Venture Garage)`에 들어서자 창업 열기로 가득했다. 방학인데도 집에 가지 않고 스타트업 창업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동서양 각국 학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막 강연이 끝난 세미나실에서는 십여명의 학생이 강연자 주위에 몰려 추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알토대는 스타트업 창업에 관한한 기초부터 최종 창업까지 모든 단계의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알토 디자인 팩토리`에서는 학생과 기업인, 교수 등이 강의와 실습을 통해 창업거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데 주력한다. 쓸 만한 아이디어가 모이면 보내지는 곳이 위에서 언급한 벤처 개러지다. 벤처 개러지는 말 그대로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세미나실과 강연장을 갖추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스타트업 창업에 몰두하도록 돕는다. 이 건물을 운영하는 것이 `알토 기업가정신 동아리(알토ES)`다. 학생 자치조직인 알토ES는 선진 창업활동을 배우고 성공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한다.
예전에는 여기서 바로 테크노폴리스 등 전문기관을 통한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주로 이론으로 이뤄진 교육만으로는 곧바로 창업을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도입된 것이 `알토 벤처 프로그램(AVP)`이다.
석사과정으로 개설된 AVP는 롤 모델을 제공해주고 투자받는 법을 알려주는 등 실무교육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를 모아놓고 학생들이 실제 투자를 유치하는 `벤처창업 코스`도 통과해야 한다. AVP창설에도 깊이 관여한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미국 스탠퍼드대 기업가정신 교수와 인연으로 2013년까지 `스탠퍼드 기술벤처 프로그램(STVP)`을 운영하기로 했다. 마울라 교수는 “알토대도 20년 이상 기업가정신을 가르쳐온 역사가 있다”면서 “그러나 실무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AVP를 만들게 됐다. 이것이 혁신적이고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뢰와 협력이 알토대 정신
알토대가 배출한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업체 중 하나가 `슈퍼셀(Supercell)`이다. 슈퍼셀은 핀란드에서 앵그리버드를 제작하는 로비오에 비견되는 비중 있는 게임회사다. 2010년 헬싱키에 문을 연 이 업체는 불과 2년여만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어느 운용체계(OS)나 브라우저에서나 게임이 가능한 사이트 `건샤인넷`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해 페이스북이나 그루폰 등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액셀 파트너스로부터 12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 회사 창업자인 일카 파나넨(Ilkka Paananen)은 알토대 출신으로 AVP에 적극 참여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마울라 교수는 “핀란드인이어서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처럼 좋은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강연자로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유럽식 경제 모델의 핵심 성공 요소가 상호신뢰를 통한 협력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에 있다는 말은 알토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한 모든 건물 입구에는 옷이나 개인소지품을 열쇠 없이 두고다니는 사물함이 있었다. 벤처 개러지에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음식물을 공유하는 공동 냉장고가 있었다.
핀란드 등 북유럽 3국 사회적 자본 지수는 7.78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져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핀란드는 전체 139개국 중 7위를 차지했다. 현지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자원이 없을 때는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만이 살 길”이라며 핀란드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강한 신뢰와 협력의 정신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