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가습기 항균부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한 것은 지나친 기업 규제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고시 개정안을 공포·시행했지만 개정안 작업 시 항균부품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복지부 측이 외부에서 별도 해석을 요청한 뒤에야 부랴부랴 해당 내용 파악에 들어갈 만큼 졸속 처리됐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가습기 업계는 항균부품을 의약외품으로 포함한다는 복지부 측의 통보를 받은 뒤 제품 생산·유통·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이후 항균부품의 무해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위해성을 입증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측은 “이슈가 된 유기계열의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항균부품은 금속이온이 주성분이기 때문에 은나노 성분이 쉽게 용출되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다”며 “1994년부터 20여년간 항균부품이 사용됐지만 이에 따른 폐 손상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식약청 허가를 받은 뒤 부품을 탑재하면 된다`는 주장만 고수했다. 임세희 의약품정책과 사무관은 “업체들이 비용·시간 부담 때문에 허가를 받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며 “부품을 빼고 생산하거나 허가를 받고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역학조사를 한 것은 감염병 대상이고 사안이 시급해 진행한 것”이라며 “일차적으로 제조사가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며 항균부품까지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하기는 무리”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가습기 항균부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대조된다. 미국 일본 등은 국내 기업이 수출하는 가습기 내에 탑재된 항균부품을 별도 가습기 살균제로 간주하고 않는다. 되레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항균부품만 별도 수입한 뒤 이를 탑재한 가습기를 제작해 역수출하는 기업도 있다.
항균부품의 무해성을 입증해 제품에 장착하려면 별도의 식약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소요 기간은 최장 약 3년, 허가 비용은 한 모델당 약 15억원에 이른다. 향후 3년간 제품 생산을 중단해야 하므로 중소기업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개정 고시안을 시행한 후 지금까지 허가신청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복지부가 고시를 재개정할 의사가 없고 식약청은 허가받지 않은 제품 판매 단속을 강화해 중소 가습기 업체들은 사업을 중단하다시피 한 상태다.
논란이 길어지자 가습기 제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항균부품을 제거한 가습기와 에어워셔를 생산하기로 잠정 결정한 상황이다. 하지만 항균부품이 없으면 유해 박테리아나 미생물이 쉽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실제로 항균부품이 없는 가습기에서 슈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아시네토박토 바우마니 균이 검출된 사례가 있고 오염된 물로 인한 감염 사례가 다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한 가습기 제조사 관계자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민 안심용으로 빠르게 고시 개정만 추진하려 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며 “과잉 규제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문제가 지속되자 지난 9월부터 지식경제부가 나서 보건복지부 및 식약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전자산업과 측은 “현 항균부품 관리 체계를 의약외품이 아닌 공산품 관리 기준에 적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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