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주기가 상호 보완 관계를 보이면서 성장했다. 반도체 산업이 위축되면 디스플레이 산업이 호황으로 수요를 촉발했다. 반대로 디스플레이 산업이 어려울 땐 반도체 산업 경기가 살아나 최악의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그러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동반 추락한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 4·5년 전이다. 아무리 좋게 전망하려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을 정도로 심각했다. 급기야 한 대기업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협력사 관계자 회의에서 심각한 말을 꺼냈다. 요지는 `시절이 좋든 힘들든 함께 가야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내년이나 내후년에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는 것이었다.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은 서서히 살아났고 지금은 변형된 경기 주기를 타고 있다.
지금 태양광 시장이 딱 그런 상황이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태양광 시장이 위기에 빠진 원인은 극심한 공급과잉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와 달리 기술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태양광 시장에 뛰어든 중국의 자금을 무기로 한 무차별 투자가 화근이었다. 태양광 시장은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유망 시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뛰는 수요`에 `나는 공급`이 시장을 추락하게 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물량은 10GW 수준인데 공급량은 40GW를 넘을 정도로 공급이 많았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세계 1위 태양광 기업이었던 독일 큐셀이 침몰했고 결국 한화 품속에 안겼다. 미국 기업도 줄줄이 파산했고 뒤늦게 뛰어든 국내 기업도 쓴맛을 톡톡히 봤다. 중소기업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곳이 셀 수 없고 대기업은 막대한 투자에 발목이 잡혀 목하 고뇌에 빠졌다.
태양광 시장은 하루아침에 나아질 것 같지 않다. 1㎏당 폴리실리콘 가격은 2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고 더 낮아질 태세다. 폴리실리콘 가격이 낮으니 공급과잉이 심한 패널 가격도 동반 추락했다.
죽을 맛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태양광 산업도 살아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가격이 낮아졌다는 것은 에너지 생산 원가가 화석연료와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다(그리드패리티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이미 일부 국가는 그리드패리티를 달성했고 다른 국가도 그리드패리티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또 본질적으로 태양광 수요가 없어서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공급과잉 때문이다. 선발주자였던 독일·미국 기업이 무너지고 무차별 물량 공세를 하던 중국 기업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태양광 시장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얼마나 끈기를 가지고 견뎌내는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일 년은 버텨야 한다.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태양광 시장에 볕이 드는 그 순간까지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으로 견뎌야 한다. 태양광 시장은 반드시 살아날 것이고 수요 역시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