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업계가 추산한 국내 정수기 시장 규모는 1조 4,000억 원에 이른다. 비싼 정수기를 일시불 또는 할부로 구입하던 것에서 벗어나 월 이용료를 내고 빌려쓰는 렌탈 방식이 도입된 이후 급속하게 시장이 커진 것이다. 단순히 물을 걸러내기만 하던 정수기에서 벗어나 냉·온수를 받아 마실 수 있고 얼음까지 나오는 정수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수기가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물질을 걸러내는 가전제품인 만큼 과대광고나 과장광고도 많다. 렌탈 계약때문에 생기는 분쟁도 많다. 인터넷 상 광고는 어떨까. 한국소비자원(www.kca.go.kr)이 지난 2011년 발표한 판매 1만대당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많았던 한일월드(6.1건)와 제일아쿠아(2.5건)의 광고를 확인해 보았다.
◇ ‘중금속도 걸러낸다?’ 증명서가 없다 = 먼저 한일월드(www.hanilworld.co.kr) 웹사이트에서 정수기 제품정보를 보면 ‘필터 부분에서 녹, 흙, 먼지 등의 이물질과 잔류염소, 농약성분, 중금속 등을 걸러낼 수 있다’는 설명문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환경수도연구원의 살균력 검사결과만 찾아볼 수 있고 농약성분·중금속과 관련된 시험결과나 성적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광고 페이지 하단에 보이는 ‘물마크’ 뿐이다. 이 마크는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www.kwpic.or.kr)이 정부에 승인받은 검사항목에 합격한 제품에만 발급한다. 이 중 의무항목은 냄새, 맛, 탁도, 색도, 일반세균 등 5가지다. 의무항목 이외에 각종 화학물질이나 중금속을 걸러낼 수 있는 제품은 검사필증 하단의 ‘특수정수성능’에 관련항목을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제품이 의무항목 검사만 통과했는지, 혹은 특수정수성능 검사만 통과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기준에 일치해서 인증을 받았다’는 동떨어진 답변만 들었다. 결국 정수성능 관련 증명은 실제 제품을 구입하거나 렌털한 뒤 제품에 붙어 있는 인증마크를 확인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물론 ‘물마크’를 받은 제품은 냄새, 맛, 탁도, 색도, 일반세균 등 5가지 의무항목을 걸러낼 수 있다.
◇ 렌탈 관련 사항 표기가 없다 =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372소비자상담전화에 접수된 정수기 관련 상담건수는 총 2,673건이다. 이 중 정수기 대여(렌탈)와 관련된 상담은 누수, 이물질 등 정수기 품질 관련 상담건수(736건)보다 3배 가까이 많은 1,937건이나 된다. 특히 정수기 대여 계약후 중도 해지할 경우 내야 하는 위약금에 대한 분쟁도 만만찮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1년이 넘는 의무사용기간 도중에 소비자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실제로 내야 하는 임대비용의 10%만 내면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또 정수기 안에서 이물질·악취가 발생하는 등 수질 이상이 발생하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렌탈 계약 전 이런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잔여기간 임대료의 50%까지 내라는 업체도 있다. 제일아쿠아(cheilaqua.co.kr)는 이 두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먼저 쇼핑몰에서 소개하는 한 제품 옆에는 ‘3년약정시 월 19,900원’이라는 문구와 초기 설치비용만 적혀 있다. 만약 이 제품을 3년 약정으로 임대해 쓰다가 2년을 남기고 임대 계약을 해지하면 4만 7,760원의 위약금이 발생한다. 하지만 중도 해지시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제품의 주의사항 안내도 문제다. 위약금은 잔여기간 임대료의 10%만 내도록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주의사항에는 ‘위약금은 잔여의무사용기간 렌탈료의 50%입니다’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다. 위의 경우처럼 제품을 1년만 쓰는 경우 4만 7,760원을 내야한다. 하지만 회사측 말만 믿으면 무려 6배에 가까운 23만 8,800원을 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정수기 렌탈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경우 위약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필터 미교환이나 청소 미비 등 관리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업자에게 적극적인 처리를 요구하되,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한국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금지급이나 사은품 등 특약은 구두가 아니라 계약서 상에 문서로 남겨 놓아야 분쟁이 생겼을 때 해결이 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