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8일 앞둔 1997년 12월 10일.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소프트웨어 종합박람회인 `소프트 엑스포 97`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종합전시장에서 개막됐다. 정부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21세기 소프트웨어 강국 건설`이었다.
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정경제부 장관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 정해주 통상산업부 장관(현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이사장), 홍두표 KBS 사장(현 중앙일보 방송담당 회장), 김상영 전자신문 사장(회장 역임), 김택호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현대정보기술 사장 역임, 현 프리씨이오 회장), 박상희 중소기업중앙회장(16대 국회의원 역임)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늘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며 첫 번째 `소프트 엑스포`를 개최하게 된 것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창의력 있는 고급 두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키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인 산업구조 조정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적극 육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면서 “그동안 정부는 정보사회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정보화 촉진과 정보산업 육성, 그리고 초고속정보통신 기반 구축을 21세기 국가핵심과제로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우리는 전전자교환기와 반도체 등을 자체 개발함으로써 정보통신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대역에 합류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드웨어 분야의 눈부신 성과에 비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은 아직 미흡한 수준에 있다”며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를 위해 “정부는 소프트웨어 업체의 기술개발 지원 자금을 늘리고, 산업체를 중심으로 국책연구소나 대학이 공동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며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정부는 산업체·학교·연구소의 창의적 인력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보육센터 설치를 확대하고, 각종 정보·인력·자금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21세기 정보산업의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면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21세기 고도 정보사회를 실현하는 주역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육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은 이에 앞서 경과보고를 통해 “이 소프트 엑스포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정보화시대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국민적 결의를 다지고 우리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범국민적 행사”라며 “이 행사는 전야제와 개막식, 전시회, 콘퍼런스, 폐막 및 부대행사로 구성해 우리나라 최초로 소프트웨어 분야의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종합박람회”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이 행사를 계기로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으며 소프트웨어 분야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계속 개발돼 IMF 환경에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과 내빈들은 테이프커팅에 이어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업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전시회장 화제의 인물은 단연 멀티미디어 저작도구인 `칵테일 97`을 개발한 이상협 화이트미디어 사장이었다. 당시 18세. 그는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창립했다. 그는 첫해 신소프트웨어상품상 대상을 받아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 그는 차를 타고 다닐 때도 노트북을 켜놓고 프로그램을 짤 정도로 컴퓨터와 살다시피 했고 그로 인해 고3 신학기 때 전교 5등이던 성적이 반에서 40등으로 떨어져 그의 아버지가 컴퓨터와 각종 수상트로피를 부순 적도 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이 사장의 시연과 제품설명을 듣고 “열 여덟 살이라는 나이에 경쟁이 심한 분야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갖게 해줘서 정말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고 이 사장을 격려했다. 이 사장은 “이 제품을 수출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며 “앞으로 인터넷 소프트웨어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1998년 8월 말 회사이름을 칵테일로 변경했다. 그는 그해 `나이도 몰라요 학벌도 몰라요`라는 책(김영사)을 펴냈다.
그는 수상경력을 인정받아 KAIST 1998년도 특례입학 자격을 받아 놓았다.
김 대통령은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인 `소프트맥스` 전시장에 들러 여성기업인인 정영원 사장으로부터 프랑스 등 해외로 수출되는 게임 소프트웨어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열린 정부관`도 방문, 교육부 홈페이지와 초·중학교 종합정보관리시스템을 통해 학생의 성적표를 온라인으로 조회하는 과정을 둘러보고 관계자에게 교육정보화에 더욱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엑스포 전시장은 9만2400㎡의 면적에 제1전시관과 2전시관으로 운영했다.
1관은 비즈니스 솔루션을 중심으로 구성했고 각 기업들이 신제품을 선보이는 부스와 함께 중소업체들을 위한 무료 부스를 마련했다. 특히 중소 소프트웨어업체의 창업, 자금조달, 인력관리 등 기업운영 관련사항과 마케팅문제를 현장에서 무료 상담해줄 마케팅서비스센터와 상품화 가능성이 높은 국책기술의 민간기업 이전을 지원해줄 국책기술이전관을 운영했다.
제2전시관에는 교육 및 게임 관련업체들을 위한 에듀테인먼트관, 미래정보화사회의 모습을 담은 가상현실, 컴퓨터그래픽, 영화·음악 등 멀티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들이 소개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관과 정부부처의 정보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열린 정부관 등으로 운영했다. 정통부는 전시회와 병행해 9일부터 12일까지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학계, 업계, 연구기관의 분야별 전문그룹 중심으로 구성된 학술위원회가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하는 콘퍼런스도 개최했다.
이 행사는 6일간의 운영을 끝내고 12월 14일 성대한 막을 내렸다. 200여개 업체가 참여했고 5만여명이 관람했다.
이 행사는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대학, 연구소, 기업이 하나가 되어 통합적인 지원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 제공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했다.
이 행사는 그해 5월 27일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정보화추진 확대회의에서 강봉균 정통부 장관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대책`을 보고한 후 본격 추진됐다.
강 장관은 이날 김 대통령에게 △소프트웨어 산업규모 확대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지원 △우수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 △중소 소프트웨어 자금지원 △소프트웨어산업 해외진출 등 5개 육성대책을 보고했다. 이 육성안에 12월에 소프트 엑스포를 개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정통부는 이에 따라 6월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책임 하에 사무국을 설치했다. 사무국장은 김호 정보통신진흥과장(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이 맡고 행정실무는 조을래 서기관(현 안양우체국장)이 담당했다.
김호 과장의 말.
“당시 정통부는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육성대책을 강구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범정부적인 소프트 엑스포 행사를 개최한 것입니다. 이단형 박사(현 국가정보화전략위원,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장)가 여러 가지로 자문을 해 주셨습니다.”
이 박사는 그동안 의료보험 전산시스템, 금융실명제 전산시스템, 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 대전엑스포 전산시스템 등을 개발한 국내 소프트웨어 분야의 산증인이었다.
조을래 서기관의 증언.
“처음 하는 대규모 행사라서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개막 보름 전부터는 아예 여의도 행사장에 가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12월 여의도는 바람이 세게 불고 무척 추워 관계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관계로 경호실에서 나와 대통령 동선부터 모든 걸 점검했습니다. 대통령 참석 여부는 청와대에 오래 근무한 정 실장께서 처리하셨어요.”
조 서기관은 대통령 연설문도 초안을 잡아 제출했다. 몇 차례 수정을 거쳤지만 핵심은 연설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 전시회 행사 실무는 송영수 한국멀티미디어진흥센터 산업총괄부장(현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연구위원)이 책임을 맡아 진행했다. 그는 부스설치와 참가업체 유치 등 모든 일을 총괄했다. 그는 ETRI와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등 관련기관에서 10명 이내의 인력을 지원받아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당시 언론사 등에서 주최하는 유사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참가업체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정통부에서 산하 단체 기관장 회의를 열어 성공적 개최를 위한 독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통부는 그해 8월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처음 강 장관은 이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관계자 회의에서 장관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했다.
조직위원은 정홍식 정통부 실장을 비롯해 총무처, 재경원, 통상산업부, 과기처 등 유관기관 1급과 주요 업체 대표, 산하 기관장, 언론사 대표 등 40여명으로 구성했다.
정부는 행사참가자들에게 사전등록을 실시했고 이들에 대해서는 입장료를 면제했다. 이들은 인터넷 또는 팩스를 이용해 등록했다.
소프트 엑스포는 이후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2008년 정보통신부가 폐지되면서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의 포부는 11년 만에 종언을 고했다. 대신 2008년부터 매년 5월에 월드IT쇼가 열리고 있다. 주인 없는 행사는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