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만명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낳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전, 실제 일어난 지진의 강도 보다 높은 내구성으로 원전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보조 발전기가 해수면 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돼 정상 작동을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쓰나미 보다 높은 방어벽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사고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면 피해를 최소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만든 시스템은 이런 사건·사고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적절한 대비책을 내놓지 못한다. 후쿠시마 사태 뿐 아니다.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트린 9·11 테러, 2007~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 2010년 중동 민주화 운동, 올해의 유로존 위기 등 우리는 많은 사건을 미리 알지 못했다. 일반적인 사람의 사고 범위를 넘어서 발생하는 사건. 과학계에서는 이것을 `극단적 사건(X-events)`이라고 한다.
복잡계와 시스템 이론의 세계적 전문가 존 카스티 박사는 지난 달 우리나라에서 열린 `X-events:한국적 맥락에서의 정책 함의` 국제미래심포지엄에서 “극단적 사건은 시스템에 있는 복잡성 때문에 일어난다”고 발표했다. 하나의 큰 시스템을 이루는 작은 시스템 사이의 복잡한 정도가 차이가 날 때 이를 견디다 못해 엑스이벤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엑스이벤트도 다양하다. 북한과 충돌, 경제위기 등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만약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된다면 어떨까. 윤정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원은 한국의 X-events 사례 연구를 통해 인터넷 단절이란 엑스이벤트의 원인과 영향, 대응책을 분석한 바 있다.
윤 연구원의 연구결과는 엑스이벤트 원인으로 4가지를 언급했다. △인터넷 침해(사이버테러, 트래픽효과) △자연재해(지진 등 물리적 충격으로 인한 기간 시설망 파괴 △정전(인터넷 시스템 운용 중단) △인적사고(전원차단, 화재) 등이다.
그러나 인터넷 단절이란 사건으로 주식시장 거래 중단, 교통 물류 시스템 중단, 주요 포털·공공 사이트 마비, 병원 환자 관리 시스템 중단이라는 파급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순히 1차 피해일 뿐이다. 2차, 3차 피해로 확대되면 금융시장 파괴, 물류 산업 붕괴, 공공 행정망 마비, 의료·보건 환경 악화 등 수십, 수백까지 악영향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예측됐다.
과거에 여러 번 반복됐던 일에 대해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경우 다양한 수학 모델이나 통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 영역(X-event regime)안에 있는 사건은 다르다. 기존 자료가 없을뿐더러 파급효과를 가늠할 경험과 방법,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대응이 어렵다.
그렇다면 엑스이벤트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존 카스티 박사는 “기존 사건 경험이나 정보가 더 이상 소용이 없어 극단적 사건 발생을 미리 예측·평가하는 새로운 프레임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극단적 사건의 파급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사고와 방법론의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측하지 못했던 극단적 사건의 예측. 엑스이벤트 예측은 알지 못하는 미래를 보는 새로운 방법이 요구된다. 미래학 분야에서 제기된 여러 미래 예측 방법론 중 특히 어려운 엑스이벤트 예측은 사건이 일어나는 바탕이 되는 시스템의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핀란드는 2년 전부터 엑스이벤트에 관해 연구해 왔다. 노키아 본사의 해외 이전, 유로존의 금융 위기 사례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에서는 엑스이벤트와 같은 극단적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전략을 모색했다. 레나 일몰라 IIASA 선임연구위원은 “시스템 다양성을 높여가면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며 “실패를 낳을 수 있는 시도를 적극 감행하는 민첩성과 새로운 시스템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세기 주요 엑스이벤트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