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인 1997년 미국 네바다 주의 `블랙록` 사막. 이날 이곳에선 인류 최초의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지상에서 음속보다 빨리 달렸다.` 제트기 엔진 두 개를 개조해 만든 자동차 `트러스트 SSC(슈퍼소닉카)`로 처음으로 지상에서 음속을 넘어선 시속 1228㎞를 찍었다. 소리는 한 시간에 약 1224㎞를 간다.
![리처드 보일(왼쪽)과 앤드 그린.](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10/18/343613_20121018161556_319_0002.jpg)
`소리보다 빠르고 싶은` 인간의 무모한 도전은 하늘에선 이미 1976년 운항을 시작한(1993년 종료) 콩코드 여객기로 실현됐다. 하지만 지면과 마찰이 불가피한 지상에선 여전히 실험단계다. 실험을 계속해나가는 괴짜 실험가가 있다. 영국 국적의 사업가이기도 한 리처드 노블이다.
◇1997년 음속(시속 1224㎞)돌파, 2014년에는 시속 1600㎞ 도전
지난 3일, 영국 콘월 공군기지에는 전투기가 이착륙할 때나 들리던 굉음이 울려 퍼졌다. 2014년 첫 주행을 앞두고 있는 `블러드하운드 SSC`의 첫 번째 엔진테스트가 이뤄지면서 나온 소리다. 연구 책임자는 여전히 15년 전 1228㎞를 주파했던 노블이다. 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획했던 대로 엔진 노즐에서 화염이 안정적으로 분출됐고 원하는 출력을 얻었다”고 밝혔다.
블러드하운드 SSC는 길이 13.47m, 최고 높이 3m, 무게 6.4톤의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크기로 따지면 자동차라기보다는 초대형 버스에 가깝다. 하지만 엔진 구조는 버스와 거리가 멀고, 사실상 `전투기`급이다. 자동차에는 유럽 일부 국가의 전략 전투기인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탑재된 롤스로이TM `EJ200 제트엔진`과 함께 길이 4m, 직경 45.7㎝, 중량 450㎏급 `팰컨 로켓엔진`도 달았다.
차체 디자인은 매끈한 유선형이다. 노블 팀의 디자이너 대니얼 조브는 “연필에서 본떴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를 잘 진행 중으로 설계대로 개발된다면 음속의 속도로 `안전하게` 달릴 수 있을 겁니다. 연필 모양 디자인은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줄입니다.”
차량 뒷부분은 항공우주제작사 햄프슨 인더스트리가 맡아서 만들고, 앞부분 제작 기업은 비밀이다.
노블 팀은 이 무시무시한 괴물로 시속 1600㎞를 주파한다는 목표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의 거리를 15분 만에 주파하는 속도다. 운전은 역시 트러스트 SSC를 운전했던 앤디 그린이 맡는다. 공기역학 전문인 과학자 론 에이레스도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블의 도전에 함께하고 있다.
◇가능한가 & 필요한가
인간이 자동차를 몰아 음속으로 달리는 것에는 두 가지 의문이 붙는다. 보편적 환경에서 `가능할까`와 `필요할까`다.
우선 그것이 가능한지 문제다. 음속으로 사물이 움직일 때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이 `소닉 붐`이라고 불리는 폭발음이다. 사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 공기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생기는 압력차로 여러 개의 공기 파동이 뭉친다.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뭉쳤던 파동이 흩어지며 강한 충격파를 만들어낸다. 차체는 전투기나 우주선에 쓰였던 소재를 갖다 붙이면 해결되지만 주위의 사람이나 일반 건물이 견딜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운전자도 문제다. 음속을 돌파하는 차를 몰 때 운전자가 받는 힘은 지구 중력의 2.5배에 이른다. 이를 견뎌내기 위해선 고도의 훈련과 각종 안전장비가 필요하다. 동승자도 마찬가지다. 트러스트 SSC를 몰았던 앤디 그린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다.
그 다음은 정말 필요한 속도냐는 것. 그 답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인류에게 필요 없는 기술`이라고 못 박는 건 위험해 보인다. 자동차의 속도가 진화한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실용화된 첫 자동차인 영국 트레비식의 4륜 증기 자동차는 최고 시속 13㎞, 최초의 본격적 대량생산 자동차인 미국의 `T형 포드`는 시속 40㎞ 정도였다.
1990년대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자동차 속도는 요즘 `좀 비싼` 차는 쉽게 낼 수 있는 시속 200㎞에도 못 미친다. 추리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에는 “이봐 왓슨! 이 기차가 얼마의 속도로 달리는지 계산할 수 있나… 전봇대 사이의 거리로 계산해보니 시속 60㎞야. 굉장해”라는 구절이 나온다. 둘 다 코웃음칠 만한 속도 감각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노블의 무모한 도전은 미래에는 무모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달리는 기계의 진화와 함께 인간 역시 빠른 속도에 적응해나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블러드하운드 SSC라는 인류 자동차 과학의 결정체는 아이들에게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STEM) 영감을 북돋기 위한 프로젝트에도 사용된다. `블러드하운드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150만 명의 초중고 학생이 SSC와 관련한 수업 교재를 이용하고 있다.
자동차나 기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블러드하운드 SSC에 궁금증이 하나 생길 만하다.
음속을 돌파할 때는 제트엔진이나 로켓엔진을 쓰지만 차고지에서 주행 서킷으로 갈 때는 현재의 일반적인 속도를 내야 하는데 그때도 제트엔진과 로켓엔진을 이용할까. 그렇지 않다. 일반 속도로 운행할 때와 제트엔진·로켓엔진을 점화할 때 쓰이는 엔진이 따로 탑재돼 있다. 그런데 그 엔진이 최대 출력 750마력이 넘는 `F1 머신`용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자동차다. 2014년이 기대된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